대통령실이 배기량을 기준으로 한 자동차 재산 가치 산정 방식을 바꾸는 방안을 추진한다. 배기량이 없는 전기차가 크게 늘었는데 가격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배기량을 잣대로 자동차세나 복지급여를 매기는 것은 형평성 차원에서 문제가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대통령실은 1일 “오는 21일까지 3주간 ‘배기량 중심 자동차 재산 기준 개선’ 방안에 대한 4차 국민참여토론을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자동차세는 배기량에 따라 영업용은 ㏄당 18~24원, 비영업용은 80~200원을 부과하고 있다. 배기량이 없는 전기차나 수소차는 ‘그 밖의 승용차’로 분류해 10만원 정액을 부과한다.

이에 따라 배기량이 낮지만 고가인 수입차나 전기차 소유자가 배기량이 높지만 저가인 내연기관 차량 소유자보다 세금을 적게 내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예컨대 판매가격이 1억3000만원에 이르는 테슬라 모델S 전기차 소유자는 매년 지방교육세를 포함해 13만원의 자동차세를 낸다. 반면 배기량 3500cc의 제네시스(판매가 6000만원) 소유자는 연간 세 부담액이 90만원에 이른다.

국민토론 제안자는 “자동차세의 취지를 재산 가치와 환경 오염, 도로 사용 등을 감안한 세금으로 이해한다면 차량가액과 운행거리에 따라 부과하는 방안이 합리적”이라며 “환경오염을 생각해 전기·수소차의 자동차세를 감면하더라도 차량가액에 따른 차등 부과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자동차 배기량은 기초생활보장급여 등 약자 복지 수급자 선정을 위한 기준으로도 쓰인다. 기초생활급여 수급자 선정을 위한 가구 소득 인정액 산정 시 배기량 기준은 1600㏄ 미만(생계·의료급여 기준)이다. 대통령실은 “다자녀 가정의 아버지가 대형차를 렌트해 사용하다가 수급 자격이 박탈되거나 사별한 남편이 물려준 중형 중고차를 팔고 다시 소형 중고차를 구매하는 등의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배기량 기준은 자동차의 재산 가치, 환경 오염 등을 고루 반영할 수 있고, 갑자기 세제를 바꾸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외국과의 조약에 어긋날 수 있다는 반론도 소개했다. 한·미 FTA 협정문에는 ‘배기량 기준에 기초한 새로운 조세를 채택하거나 기존 조세를 수정할 수 없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국민참여토론은 대통령실 홈페이지에 마련된 ‘국민 제안’ 코너를 통해 접수된 제안 중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인정된 주제에 대해 온라인 토론 방식으로 시행된다. 대통령실은 오는 21일까지 3주간 토론을 통해 취합한 의견을 바탕으로 관계부처에 개선을 권고할 예정이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