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富國된 아일랜드, 그 시작은 정치개혁이었다 [박병원 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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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원 안민정책포럼 이사장·한국비영리조직평가원 이사장
국제통화기금(IMF)에 의하면 올해 아일랜드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구매력평가지수(PPP) 기준 14만5000달러로 룩셈부르크의 14만3000달러를 넘어서 세계 1위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때 종주국이던 영국(5만7000달러)의 두 배가 넘는다.
1846~1851년 감자 대흉작으로 100만 명이 굶어 죽고 그 이후 계속된 인구 유출로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든 나라(현재 512만 명), 1980년대까지 ‘유럽의 가난한 노파’로 불리던 나라가 2000년대 들어 켈트족의 호랑이(Celtic Tiger)로 환골탈태한 것은 정치개혁에서 시작됐다.
보호무역주의를 고수하면서 고실업, 고금리, 고세율, 경제 침체, 끝없는 인구 유출이 계속되던 상황에서 1987년 제1야당 게일당의 대표 앨런 듀크스가 “정부 여당이 올바른 방향으로 간다면 핵심 사항에 반대하지 않겠다. 정부의 정책이 길에서 이탈하거나 함정에 빠지지 않게만 하겠다”는 연설로 돌파구를 열었다. 집권 포일당 찰스 호이 총리의 개혁에 협조하기로 한 것이다.
개혁 초점은 처음부터 외국인 투자 유치에 맞춰졌다. 투자개발청(IDA)은 투자 규모와 일자리 창출, 기술 및 연구개발(R&D), 지역 균형 발전 기여도 등에 따라 차등 지원하는 유연한 투자 유치 정책을 폈다. 인텔과 IBM의 투자를 10년을 매달려 성사시키는 등 집요한 모습도 보여줬다. 특히 미국의 정보기술(IT), 소프트웨어(SW), 제약, 의료기기 등 고부가가치 산업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을 집중했다. 감자 기근 이후 미국으로 이민 간 아일랜드 후예 4000만 명이 많은 도움이 됐다고 한다.
그 결과 아일랜드는 세계 20대 제약업체 중 19곳을 유치하고, 애플과 인텔,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메타 등 세계적 IT·SW 업체의 유럽본부를 유치해 유럽 소프트웨어 시장의 60%를 점유하기에 이르렀다. 외국인 투자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수출의 80%, GDP의 25%를 오르내리고 있다.
가장 상징적인 일은 시간당 최저임금의 삭감과 동결이다. 2000년 4월 5.58유로로 시작해서 2007년 7월 8.65유로까지 올라간 시간당 최저임금은 2016년 1월 9.15유로가 될 때까지 8년 반 동안 동결됐다. 2011년에는 6개월간 7.65유로로 떨어뜨리기도 했다. 이런 노동유연성은 실업률이 1980년 20% 수준에서 2007년 4%로 급락한 것과 가파른 소득 수준 향상으로 보상됐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도 과감한 임금 조정이 있었다. 임금은 2017년에야 2008년 수준을 회복했지만 그 대가로 고용은 유럽의 그 어떤 나라보다 빨리 회복됐다. 실업률은 2016년 유럽연합(EU) 평균을 밑돌았고 2018년에는 5% 수준으로 낮아졌다.
2010년 국제통화기금(IMF)에서 850억유로의 구제금융을 받았을 때의 결연한 대처도 인상적이다. 공무원 10% 감축, 공무원 임금 14% 삭감, 사회보장지출 8% 축소, 경상지출 17% 감축, 자본지출 63% 축소 등 재정건전화 조치와 사회연대협약 개정안 철회, 기업의 자율협약에 의한 노동개혁 등은 강한 정치적 리더십과 현명한 노조 없이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세금 깎아주기 경쟁에서 뒤처진 나라들의 견제로 아일랜드도 2021년부터 15%의 최저한세를 적용하고 아일랜드에 일정 기간, 일정 규모 이상의 사업장을 둬야 한다는 제한을 두게 됐다. 이 조치는 이미 진출한 기업들이 사업장 규모를 키울 수밖에 없게 했다. 법인세 세입이 2017년 80억유로에서 2022년 226억유로로 182%나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이렇게 늘어난 재원 대부분은 인프라 투자와 세금 감면 확대 등 추가 투자 유치를 위해서 쓰이고 있다.
인구 감소, 국가 소멸의 위기를 맞은, 젊은이들을 위한 좋은 일자리 창출이 절체절명의 과제인 우리나라가 외국인 투자 유치에 소홀한 것은 이해할 수가 없다. 최근 외국인 투자는 연 300억달러 수준인데 우리 기업의 해외 투자는 1000억달러대다. 일자리가 세 배나 유출되고 있다. 올해는 미국의 제재로 중국에 갈 투자의 일부가 우리나라로 와서 실적이 개선되고 있다지만 대세는 그대로다. 홍콩을 떠난 투자가 가는 곳을 보면 우리나라 투자매력도의 현주소를 알 수 있다.
제조업의 고용 창출이 한계에 이른 상황에서 고급 서비스업의 외국인 투자 유치는 더 절실하다. 경쟁력을 키우려면 경쟁 노출이 필수적이다. 제조업은 수입개방이 그 수단이지만 서비스업은 외국인 투자 유치가 핵심이다. 제조업의 경쟁력은 최신 기계 도입으로 이전되지만 고급 서비스업의 경쟁력은 사람과 브랜드에 체화돼 있기 때문에 투자 유치에 의해서만 이전된다. 서비스업에서 외투 유치가 훨씬 더 절실한 이유다. 아일랜드가 제약·바이오, 정보기술(IT)·소프트웨어(SW), 금융 등을, 싱가포르가 물류, 금융을 중심으로 한 외투 유치로 세계 1, 2위를 다투는 부국을 만들어 낸 것을 본받아야 한다.
과감한 세금 감면은 기본이지만 법인세율을 아일랜드나 싱가포르처럼 12.5%, 17%로 낮추는 것은 우리나라같이 이미 커져버린 나라에는 어렵다. 그러나 외국인 투자에 대한 세 감면은 외투 금액이 해외 투자와 맞먹을 때까지 확대해야 한다. 경쟁국에는 없는 상속세 증여세 등은 없애 나가고, 양도소득세도 다른 소득과 같은 수준의 과세로 만족해야 한다. 세금을 징벌, 분풀이용으로 쓰지 말아야 한다.
교육부가 전체를 틀어쥐고 하나의 잣대로 규제하는 한 교육개혁은 불가능하다. 나라 단위로 하나의 의사결정을 하는 것은 작은 문제를 모아서 해결할 수 없는 큰 문제로 만드는 길이다. 교육부를 없애고 대학 자치와 지방 자치로 교육 부문 경쟁을 활성화해야 고급 인력 양성이 가능해진다. 다른 분야 재원을 줄여 교육에 투자하고, 우수 인재 공급으로 투자 유치와 경제 활성화에 성공하는 지방자치단체가 하나라도 나오게 해야 변화가 시작된다.
이미 좋은 일자리와 노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현행 노동법이 주는 철밥통을 포기하게 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다른 노동자가 다른 선택을 원할 때 그것이라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변화의 싹을 틔우는 현실적인 방법이다. 예컨대 최저임금 차등화 중 지역별 연령별 차등화는 노동자가 원하는 것이고, 주 52시간 근로제는 투잡을 뛰는 노동자는 원하는 바가 아니다. 호봉제 폐지, 연봉제 및 직무급제 도입으로 요약되는 임금체계의 유연화도 기득권을 포기하라고 하면 어렵다. 새로운 임금체계를 신입사원부터 적용하면서 기취업자도 원하면 갈아탈 수 있게 하면 반대를 최소화할 수 있지 않을까.
기업들이 아버지 세대에 초과근무수당을 더해 1.5배의 임금을 줘 가면서 세계 최장 수준의 근로를 시키면서 정상임금만 주면 되는 자신들을 고용하지 않는 이유가 노동 수요가 줄어도 해고를 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걸 청년들이 알면 ‘우리는 철밥통이 아니라도 좋으니 취업을 원한다’고 할 것이다.
미취업 청년과 실직자부터 비정규직, 자영업자, 중소기업 근로자,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의 보호를 받는 최상위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입장이 다르고 원하는 것도 다르다. 하나의 노동법제, 하나의 취업규칙이 노동시장 경직성의 원천이다.
새로운 토지의 공급원인 농지와 임야가 전용규제에 묶여 있어 우리는 늘 가용 토지 공급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식량 안보는 달러를 벌어들이는 능력에 달려 있다. 쌀은 연년세세 공급 과잉, 가격 폭락의 위험에 직면해 있다. 연로한 농민들은 ‘탈농’을 간절히 원하는데 식량 안보를 내세워 농지 전용을 막고 있다. 임야는 보전가치가 높은 곳은 대개 도로도 전기도 수도도 없어서 규제를 안 해도 전용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보전 가치가 떨어지는 곳을 중심으로 가용 토지 공급을 조금만 늘려도 만악의 뿌리인 고지가를 떨어뜨릴 수 있다.
여기서도 자치가 해법이다. 농지와 임야 전용허가권을 전적으로 지자체에 넘겨서 지자체가 가용 토지를 선제 확보하고 투자 유치 경쟁 수단으로 쓸 수 있게 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해법이다.
임대철 기자
1846~1851년 감자 대흉작으로 100만 명이 굶어 죽고 그 이후 계속된 인구 유출로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든 나라(현재 512만 명), 1980년대까지 ‘유럽의 가난한 노파’로 불리던 나라가 2000년대 들어 켈트족의 호랑이(Celtic Tiger)로 환골탈태한 것은 정치개혁에서 시작됐다.
보호무역주의를 고수하면서 고실업, 고금리, 고세율, 경제 침체, 끝없는 인구 유출이 계속되던 상황에서 1987년 제1야당 게일당의 대표 앨런 듀크스가 “정부 여당이 올바른 방향으로 간다면 핵심 사항에 반대하지 않겠다. 정부의 정책이 길에서 이탈하거나 함정에 빠지지 않게만 하겠다”는 연설로 돌파구를 열었다. 집권 포일당 찰스 호이 총리의 개혁에 협조하기로 한 것이다.
개혁 초점은 처음부터 외국인 투자 유치에 맞춰졌다. 투자개발청(IDA)은 투자 규모와 일자리 창출, 기술 및 연구개발(R&D), 지역 균형 발전 기여도 등에 따라 차등 지원하는 유연한 투자 유치 정책을 폈다. 인텔과 IBM의 투자를 10년을 매달려 성사시키는 등 집요한 모습도 보여줬다. 특히 미국의 정보기술(IT), 소프트웨어(SW), 제약, 의료기기 등 고부가가치 산업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을 집중했다. 감자 기근 이후 미국으로 이민 간 아일랜드 후예 4000만 명이 많은 도움이 됐다고 한다.
그 결과 아일랜드는 세계 20대 제약업체 중 19곳을 유치하고, 애플과 인텔,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메타 등 세계적 IT·SW 업체의 유럽본부를 유치해 유럽 소프트웨어 시장의 60%를 점유하기에 이르렀다. 외국인 투자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수출의 80%, GDP의 25%를 오르내리고 있다.
"외자 유치 사활 건 아일랜드, 법인세 깎고 최저임금 속도 조절"
고부가가치 산업 투자 유치의 핵심은 고급 인력의 공급이다. 아일랜드는 1960년 대학생이 2만 명도 안 되는 나라였다. 하지만 1995년 11만 명을 넘었고 대졸 인구가 48%로 유럽 최고 수준이 됐다. 과학 전공자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아졌다. ‘우수한 인력을 싼값에 쓸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 외국인 투자가 몰려들게 한 것이다.고급 인력 양성과 노동시장 유연성
더 중요한 것은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다. 1987년 10월 제1야당과 최대 노조 대표가 공동 제안해 이뤄진 사회연대협약은 ‘일자리가 먼저, 임금은 그다음’이라는 원칙을 확립했다. 이 협약은 3년마다 갱신하다가 2016년 10년간 유효한 7차 협약을 맺었다. 20%를 웃돌던 임금 상승률은 2.5%로 안정됐고 매년 200건을 오르내리던 노사분규는 1988년 이후 연 50건 미만으로 떨어졌다. ‘파업천국’에서 고용유연성이 미국 영국 뉴질랜드 캐나다에 이어 세계 5위이고, 기업의 80%에 노조가 없는 나라가 됐다.가장 상징적인 일은 시간당 최저임금의 삭감과 동결이다. 2000년 4월 5.58유로로 시작해서 2007년 7월 8.65유로까지 올라간 시간당 최저임금은 2016년 1월 9.15유로가 될 때까지 8년 반 동안 동결됐다. 2011년에는 6개월간 7.65유로로 떨어뜨리기도 했다. 이런 노동유연성은 실업률이 1980년 20% 수준에서 2007년 4%로 급락한 것과 가파른 소득 수준 향상으로 보상됐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도 과감한 임금 조정이 있었다. 임금은 2017년에야 2008년 수준을 회복했지만 그 대가로 고용은 유럽의 그 어떤 나라보다 빨리 회복됐다. 실업률은 2016년 유럽연합(EU) 평균을 밑돌았고 2018년에는 5% 수준으로 낮아졌다.
2010년 국제통화기금(IMF)에서 850억유로의 구제금융을 받았을 때의 결연한 대처도 인상적이다. 공무원 10% 감축, 공무원 임금 14% 삭감, 사회보장지출 8% 축소, 경상지출 17% 감축, 자본지출 63% 축소 등 재정건전화 조치와 사회연대협약 개정안 철회, 기업의 자율협약에 의한 노동개혁 등은 강한 정치적 리더십과 현명한 노조 없이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과감한 세율 인하의 효과
한때 50%에 이르던 법인세율은 2003년 12.5%로 낮아졌다. 소득세 최고세율도 65%에서 42%로 조정됐다. 지식재산권 관련 수익은 최대 50%까지 감면해 실효세율을 6.25%로 낮췄고, 연구개발 비용은 25%를 세액공제해 줌으로써 연구개발 비중이 큰 제약사들에 결정적으로 유리해졌다. 수출의 60%가 의약품인 나라는 이렇게 만들어졌다.세금 깎아주기 경쟁에서 뒤처진 나라들의 견제로 아일랜드도 2021년부터 15%의 최저한세를 적용하고 아일랜드에 일정 기간, 일정 규모 이상의 사업장을 둬야 한다는 제한을 두게 됐다. 이 조치는 이미 진출한 기업들이 사업장 규모를 키울 수밖에 없게 했다. 법인세 세입이 2017년 80억유로에서 2022년 226억유로로 182%나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이렇게 늘어난 재원 대부분은 인프라 투자와 세금 감면 확대 등 추가 투자 유치를 위해서 쓰이고 있다.
브렉시트로 금융허브 된 더블린
영국의 브렉시트도 아일랜드에 기회가 됐다. 브렉시트는 많은 기업이 영국을 떠나게 했다. 세계적인 금융회사들이 유럽 본부를 더 이상 런던에 둘 수 없게 됐다. EU 국가 중 하나에서 금융업 인가를 받으면 다른 EU 국가에서 자유롭게 영업할 수 있는 금융패스포트 제도를 적용받기 어려워져서다. 자산운용사를 중심으로 런던을 떠난 금융회사의 30%가 더블린으로 유럽 본부와 주요 시설을 옮겼다. 영어 상용, 감독체제의 유사성 등이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세계적 금융회사를 유치해서 한국을 동북아시아의 국제금융 중심지로 만들어 보겠다고 선언한 지 20년이 되도록 홍콩을 탈출하는 금융사조차 하나 유치하지 못하는 우리의 처지와 너무 대조적이다.인구 감소, 국가 소멸의 위기를 맞은, 젊은이들을 위한 좋은 일자리 창출이 절체절명의 과제인 우리나라가 외국인 투자 유치에 소홀한 것은 이해할 수가 없다. 최근 외국인 투자는 연 300억달러 수준인데 우리 기업의 해외 투자는 1000억달러대다. 일자리가 세 배나 유출되고 있다. 올해는 미국의 제재로 중국에 갈 투자의 일부가 우리나라로 와서 실적이 개선되고 있다지만 대세는 그대로다. 홍콩을 떠난 투자가 가는 곳을 보면 우리나라 투자매력도의 현주소를 알 수 있다.
제조업의 고용 창출이 한계에 이른 상황에서 고급 서비스업의 외국인 투자 유치는 더 절실하다. 경쟁력을 키우려면 경쟁 노출이 필수적이다. 제조업은 수입개방이 그 수단이지만 서비스업은 외국인 투자 유치가 핵심이다. 제조업의 경쟁력은 최신 기계 도입으로 이전되지만 고급 서비스업의 경쟁력은 사람과 브랜드에 체화돼 있기 때문에 투자 유치에 의해서만 이전된다. 서비스업에서 외투 유치가 훨씬 더 절실한 이유다. 아일랜드가 제약·바이오, 정보기술(IT)·소프트웨어(SW), 금융 등을, 싱가포르가 물류, 금융을 중심으로 한 외투 유치로 세계 1, 2위를 다투는 부국을 만들어 낸 것을 본받아야 한다.
과감한 세금 감면은 기본이지만 법인세율을 아일랜드나 싱가포르처럼 12.5%, 17%로 낮추는 것은 우리나라같이 이미 커져버린 나라에는 어렵다. 그러나 외국인 투자에 대한 세 감면은 외투 금액이 해외 투자와 맞먹을 때까지 확대해야 한다. 경쟁국에는 없는 상속세 증여세 등은 없애 나가고, 양도소득세도 다른 소득과 같은 수준의 과세로 만족해야 한다. 세금을 징벌, 분풀이용으로 쓰지 말아야 한다.
풍부한 고급 인력 공급이 기본조건
졸업해도 취직이 안 되는 학과의 정원은 넘쳐나는데 고급 인력 공급이 부족한 분야의 입학 정원을 늘리기 어려운 나라, 초·중등 교육은 돈이 넘쳐나도 대학 등록금은 15년째 동결돼 있는 나라, 사교육에 퍼붓는 돈을 공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해 동원할 수 없는 나라에서 ‘우수한’ 인력 공급을 운운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은 가장 기본적 필요조건이다.교육부가 전체를 틀어쥐고 하나의 잣대로 규제하는 한 교육개혁은 불가능하다. 나라 단위로 하나의 의사결정을 하는 것은 작은 문제를 모아서 해결할 수 없는 큰 문제로 만드는 길이다. 교육부를 없애고 대학 자치와 지방 자치로 교육 부문 경쟁을 활성화해야 고급 인력 양성이 가능해진다. 다른 분야 재원을 줄여 교육에 투자하고, 우수 인재 공급으로 투자 유치와 경제 활성화에 성공하는 지방자치단체가 하나라도 나오게 해야 변화가 시작된다.
노동시장 지금보다 유연하게
아일랜드 싱가포르처럼 노동운동이 필요 없을 정도로 임금이 빠르게 올라가는 세상을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온 국민이 깨닫게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걸린다. 지금 당장 가능한 노동시장 유연화 방안을 찾아 실천에 옮겨야 한다.이미 좋은 일자리와 노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현행 노동법이 주는 철밥통을 포기하게 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다른 노동자가 다른 선택을 원할 때 그것이라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변화의 싹을 틔우는 현실적인 방법이다. 예컨대 최저임금 차등화 중 지역별 연령별 차등화는 노동자가 원하는 것이고, 주 52시간 근로제는 투잡을 뛰는 노동자는 원하는 바가 아니다. 호봉제 폐지, 연봉제 및 직무급제 도입으로 요약되는 임금체계의 유연화도 기득권을 포기하라고 하면 어렵다. 새로운 임금체계를 신입사원부터 적용하면서 기취업자도 원하면 갈아탈 수 있게 하면 반대를 최소화할 수 있지 않을까.
기업들이 아버지 세대에 초과근무수당을 더해 1.5배의 임금을 줘 가면서 세계 최장 수준의 근로를 시키면서 정상임금만 주면 되는 자신들을 고용하지 않는 이유가 노동 수요가 줄어도 해고를 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걸 청년들이 알면 ‘우리는 철밥통이 아니라도 좋으니 취업을 원한다’고 할 것이다.
미취업 청년과 실직자부터 비정규직, 자영업자, 중소기업 근로자,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의 보호를 받는 최상위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입장이 다르고 원하는 것도 다르다. 하나의 노동법제, 하나의 취업규칙이 노동시장 경직성의 원천이다.
땅값이라도 싸게 만들어야
노동 다음가는 투자 유치 수단이 토지다. 우리는 10만㎢의 국토에 5155만 인구가 사는 과밀국가라서 땅값이 터무니없이 비싸고 집값도 세계적으로 높다. 이래서는 투자 유치가 안 된다.새로운 토지의 공급원인 농지와 임야가 전용규제에 묶여 있어 우리는 늘 가용 토지 공급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식량 안보는 달러를 벌어들이는 능력에 달려 있다. 쌀은 연년세세 공급 과잉, 가격 폭락의 위험에 직면해 있다. 연로한 농민들은 ‘탈농’을 간절히 원하는데 식량 안보를 내세워 농지 전용을 막고 있다. 임야는 보전가치가 높은 곳은 대개 도로도 전기도 수도도 없어서 규제를 안 해도 전용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보전 가치가 떨어지는 곳을 중심으로 가용 토지 공급을 조금만 늘려도 만악의 뿌리인 고지가를 떨어뜨릴 수 있다.
여기서도 자치가 해법이다. 농지와 임야 전용허가권을 전적으로 지자체에 넘겨서 지자체가 가용 토지를 선제 확보하고 투자 유치 경쟁 수단으로 쓸 수 있게 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해법이다.
임대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