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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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신용평가사 피치가 재정악화를 이유로 미국의 신용등급을 약 30년만에 최상위 등급인 ‘AAA’에서 ‘AA+’로 강등했다. 전 세계적으로 유례 없는 저출산·고령화로 정부·민간 부채가 빠르게 늘고 있는 한국 역시 남의 일이 아니란 분석이 나온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등 관계 기관은 2일 시장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미국 신용등급 강등에 따른 시장 영향을 점검했다. 피치가 1일(현지시간) 1994년 이후 처음으로 미국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하면서 국내외 금융시장이 출렁이자 대응에 나선 것이다.

이날 회의에서 정부는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이 주식, 채권과 환율시장의 변동성을 다소 높일 순 있지만 금융시장이 충격에 휩싸일 정도의 악재는 아니라고 진단했다. 방기선 기획재정부 1차관은 “아직 시장에선 지난 2011년 S&P의 미국 등급 하향보다 영향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며 “하지만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심화하며 국내외 시장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시장의 불안감을 진화하고 나섰지만 시장 일각에선 고령화에 따른 복지 지출 증가로 재정 건전성이 빠르게 악화되고 있는 한국 역시 신평사들의 ‘타겟(목표)’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피치는 2012년 9월부터 현재까지 한국의 신용등급을 위에서 4번째인 ‘AA-’로 유지하고 있다. 무디스와 스탠다드앤푸어스(S&P)는 한국에 각각 위에서 3번째로 높은 등급인 ‘Aa2’와 ‘AA’를 부여했다. 등급 전망은 세 신평사 모두 ‘안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신평사들은 한국의 경제 상황을 대체로 긍정적으로 보곤 있지만 부채 문제에 대해선 꾸준히 우려의 목소리를 내왔다. 무디스는 지난 5월 한국의 신용등급을 유지하면서도 “한국의 저출생·고령화에 따른 인구통계적 압력이 생산성 향상과 투자에 부담을 주고 재정적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피치 역시 지난 3월 “금융시스템 전반에 대한 리스크는 예상하지 않는다”면서도 한국은 국내총생산(GDP)대비 가계부채 비중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이며 변동금리 비중이 80%에 달한다”는 우려 섞인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재정준칙 도입과 건전 재정 기조로의 전환 등 신평사로부터 좋은 점수를 받았던 요인들도 실제론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있다. 경기침체에 따른 세수 악화로 지난 5월말 기준 국가채무는 1088조7000억원을 기록하며 정부의 올해 전망치(1100조3000억원)에 근접했다.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3% 이내에서 관리하도록 하는 재정준칙은 여야 정쟁 속에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