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여친이 내 계정으로 넷플릭스 몰래 봤는데 어쩌죠?" [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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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혁 로이어드컴퍼니 대표 기고
챗GPT시대의 변호사는 어떤 모습일까
"소비자 만나는 접점을 최대한 늘려야"
네트워크 구축 위한 제도 정비도 필요
챗GPT시대의 변호사는 어떤 모습일까
"소비자 만나는 접점을 최대한 늘려야"
네트워크 구축 위한 제도 정비도 필요
헤어진 연인이 내 명의 OTT 계정을 몰래 이용한 것을 알게됐다면? 요가 학원에 수강료 1년치를 선결제 했는데 환불받을 방법은? 지금까지는 이런 생활 속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변호사와 상담한다는 생각을 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챗지피티(챗GPT)가 언제 출시되었고, 그 확장속도나 파급력이 어떠했는지는 익히 알려져 있어 여기서 더 언급하는 것은 재미없는 일이 될 것 같다. 다만 컴퓨터가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법률서비스계에 어떤 의미인지 살펴보고, 우리 사회가 이에 어떻게 효과적으로 대처할 지 고민하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리걸테크 스타트업 로이어드컴퍼니를 창업한 손수혁 대표는 챗GPT시대엔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단순히 법률지식을 파는 법률가는 지위를 위협받겠지만, 소비자의 고민을 공유하고 이를 대신 처리하는 지위로서의 법률가는 부상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손 대표가 AI의 발전이 법률서비스 업계에 미칠 영향에 대한 기고를 한경 긱스(Geeks)에 공유해왔습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컴퓨터의 인간 언어 정복은 요원해 보였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는 구글 번역기만 해도 오류가 많아 그 결과물을 현실에서 그대로 사용하기 어려운 수준이었기 때문에 그와 같은 생각은 더욱 힘을 받았다.
이에 어떠한 업종이던 컴퓨터로 하여금 사람의 일을 대신 수행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관련 업종의 언어를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도록 데이터베이스화 해야 했다. 필자의 팀이 제작한 형사재판 인공지능(알법AI)의 경우를 예를 들면, ‘A는 2023. 3. 2. 22시경 서울 강남구 소재 식당에서 B의 동의 없이 손으로 B의 허리를 쓰다듬어 B를 추행하였다’는 판결문의 문구에 대해 ‘①장소: 식당, ②사용 신체: 손, ③행동: 쓰다듬기, ④피해 신체: 허리’와 같은 방식으로 개개의 판결문 마다 사람의 수작업이 필요한 데이터수집 행위가 필요했던 것이다. 서비스 이용자 또한 마찬가지로 본인의 사건을 컴퓨터가 인식할 수 있는 방법으로 설문에 응해야 최종적으로 컴퓨터가 계산한 형량의 값을 확인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챗지피티는 이러한 예상을 완전히 뒤집었다. 인간의 언어를 초보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넘어 고급의 작문을 수행하는 이 인공지능은 일론 머스크가 ‘무서울 정도로 좋다’고 언급한 트위터와 함께 세계인의 컴퓨터를 순식간에 장악했다.
이제 컴퓨터의 인간 언어 정복이 가능한지에 대해서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의심은커녕 인간의 언어로 요청만 한다면 컴퓨터는 글, 영상, 이미지, 코드 등 어떠한 형태로도 순식간에 답변을 해 주는 서비스들도 일부 상용화 되었거나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는 것도 모두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컴퓨터가 인간 언어를 이해했다는 것은 법률서비스계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살펴봐야 할 것 같다.
먼저 법률가와 소비자 간에 ‘법률지식’에 대한 경계는 상당 부분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재판의 결과를 예상하는 인공지능을 예를 들어 보겠다. 재판의 결과를 궁금해하는 것은 모든 법률 소비자들이 갖는 공통점이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 언어를 이해하는 컴퓨터에게 법원은 완벽한 데이터공급자이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가장 정제된 형태로 ‘언어화’하고 있고 또 본연의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챗지피티 등장 이전에는 법원의 판결문을 컴퓨터가 이해하도록 데이터베이스화 하는데 막대한 자본과 노동력이 들어갔다. 한 건당 천 원의 수수료가 발생하는 법원의 판결문 비용은 물론이고 판결문을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하기 위한 프로그램 제작 비용, 그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데이터베이스를 수집하는 인건비를 감안하면 한 가지 법률 주제(예를 들어 ‘사기’, ‘음주운전’ 등)의 인공지능 제작을 위해서는 최소 수 천만 원의 비용과 6개월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필자의 팀이 2021년 음주운전 사건에 대한 인공지능을 만들 때 경험한 것이기도 하다. 출처: unsplash
불과 2년이 지난 지금은 이야기가 다르다. 일단 판결문만 확보한다면 챗지피티든 메타의 라마든 그 외 매일 같이 쏟아지는 오픈 LLM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컴퓨터가 스스로 이해하여 그에 걸맞은 인공지능을 제작해줄 수 있다. 단 며칠만에.
따라서 법원의 판단을 예상하는 인공지능은 누군가의 의지가 있거나 시장의 수요가 확인되는 시점이라면 언제든지 출현할 수 있다.
필자의 팀이 제작한 알법AI의 경우 성추행, 음주운전, 사기 사건을 주제로 제작되었다. 각각 전국의 제1심 판결문 약 1만 건을 기초 데이터로 삼았고, 범죄별로 차이가 있으나 판결문 하나당 30 내지 70가지의 주제(예를 들어 음주수치, 주행거리, 전과, 차종 같은 변수)의 데이터베이스로 변환하였다. 이런 방식으로 얻은 결과가 실제 결과 대비 92점의 정확도를 보였다는 점에서, 변환 과정 없이 언어 자체를 이해하는 모델의 경우 그 정확도와 신뢰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결국 단순히 법률지식을 파는 지위로서의 법률가는 그 지위를 위협받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 소비자로부터 고민을 공유하고 이를 대신 처리하는 지위로서의 법률가는 굳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변호사와 상담을 하거나, 소송을 의뢰하는 소비자들은 단지 법을 몰라서 변호사를 찾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필자는 수년 전 이용자가 설문을 입력하면 소장, 고소장과 같은 법률문서를 자동으로 완성해주는 프로그램을 서비스한 적이 있다. 당시 상품으로 ‘문서출력’과 ‘문서출력 및 변호사상담’ 두 가지를 내었는데, 후자의 비용은 전자에 비해 약 10배가량 높았다. 우리 팀은 문서의 정확도와 가격에 비추어 단순 문서출력 상품의 수요가 압도적일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서비스 결과 변호사 상담이 추가된 상품의 수요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소비자들은 단지 법률지식이 적용된 문서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한 것이다. 필자는 이 경험에서 사람들이 법률가로부터 구매하는 것은 법률지식 외 다양한 인간적인 요소가 있다는 점을 배웠다.
그리고 이 점은 어떠한 인공지능이라도 당분간 넘을 수 없는 요소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좋든 싫든 소위 법률 인공지능은 어느 순간 우리 생활 속에 들어올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 특히 법률서비스업계는 이 현상에 어떻게 대비해야 할 수 있을까?
법률가가 소비자와 만나는 접점을 최대한 늘리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더욱 다양하고 세부적인 영역에서 법률가와 소비자가 자주 만나고, 이를 바탕으로 네트워크가 구축된다면 그 네트워크는 하나의 인공지능으로는 넘을 수 없는 소위 지적인 힘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조금 더 쉽게 표현하면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그것이 개인에게 의문이나 불안을 남긴다면 언제든지 법률가와 대화할 수 있는 시스템이 형성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필자의 팀이 운영 중인 변호사 연결 서비스 ‘알법’ 후기에는 ‘이런 것도 변호사 상담이 가능한지 몰랐다’는 내용이 의외로 많다. 지금까지는 헤어진 연인이 본인 명의 OTT 계정을 몰래 이용한 것을 알게 되었다든가, 배달앱에서 발생한 악성 리뷰라도 주변인들에게 하소연을 할지 언정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변호사와 상담한다는 생각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네트워크 시스템의 형성은 법률지식 측면에서 인공지능에 대응한다는 측면 외에도 우리 사회 개인이 처한 문제를 직접 해결하는 데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감소시킬 것이며, 무엇보다 다수 소비자의 법률시장 유입은 법률비용의 감소를 유도할 수 있다.
‘국민에게 법률의 문턱이 높다’는, 이제는 인이 박힌 진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규제혁신과 관련 제도 정비는 법률가와 소비자가 만나는 접점을 확대하기 위한 다양한 사회적 시도를 가속화할 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법률지식을 다루는 인공지능의 출현은 기술이 아니라 누군가의 의지에 달려있다. 그리고 현재 인공지능 개발 현황을 살펴보면 그 주체가 대한민국에 소재하지 않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따라서 그 전에 소비자-변호사 네트워크를 구축하려면 관련 업계에서 여러가지 시행착오를 반복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의 정비가 필요하다. 지금의 변호사법은 인공지능이나 네트워크를 상상도 하지 못할 때 만들어진 규정이고 입법 취지 또한 마찬가지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땅히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신경 쓰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손수혁 로이어드컴퍼니 대표(변호사) △2022년 소비자의 법률 상품 신청 서비스 ‘알법’ 개발 리드
△2021년 AI 사건분석 서비스 ‘로이어드’ 개발 리드
△2020년 ‘복대리’ 플랫폼 개발 리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