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화학자가 쓴 '한 권으로 이해하는 독과 약의 과학'
니코틴은 독 강도 순위서 18위…청산가리보다 강력
사극에 나오는 은수저, 독살 막는 데 효과 있었을까
원자번호 33번 비소(아비산)는 독극물로 유명한 원소다.

맛도, 냄새도 없고 소량만 복용하면 증상이 나타나지 않지만, 누적량이 한계치를 넘으면 목숨을 앗아간다.

그래서 예로부터 암살에 주로 사용됐다.

비소가 독약으로 유행하자 궁중이나 세도가에선 은수저를 이용해 독살을 막았다.

비소에 불순물 형태로 섞인 황과 반응하면 은수저가 검게 변하기 때문이었다.

독살에 대비하기 위해 조선왕조에선 기미상궁이 은수저를, 서양 귀족 가문에선 은식기를 썼다.

그러나 비소에는 황이 매우 적게 들어있었다.

게다가 비소를 독으로 활용할 때는 들키지 않기 위해 극소량을, 그것도 꾸준히 사용해야만 했다.

극소량의 비소 속에 담긴 깨알 같은 황으로는 은수저를 검게 하기 어려웠다.

암살에 성공하려면 지난한 노력이 필요했지만, 초반에 의심을 사지만 않는다면 또한 성공 확률도 상당했다.

사극에 나오는 은수저, 독살 막는 데 효과 있었을까
역사상 수많은 사람이 비소의 희생양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청나라 말 개혁 군주였던 광서제는 시름시름 앓다가 사망했는데, 사후 독살설이 제기됐다.

독살설에 대한 과학적 근거도 쌓여가고 있다.

광서제의 유체를 대상으로 화학 검사를 실시한 결과, 두개골 비소 함유량이 정상 수준의 1천~2천배가 넘었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나폴레옹도 위암이 아니라 비소로 암살당했다는 설이 전해진다.

그러나 이처럼 악명을 떨치던 '암살자' 비소도 시간의 흐름과 함께 역사의 뒤꼍으로 사라졌다.

과학 기술의 발달로 비소로 암살을 꾀하면 범행이 쉽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비소는 "어리석은 자의 독"이라 불리며 암살 세계에서 영원히 퇴출당했다.

비소의 자리를 꿰찬 건 '폴로늄'이었다.

노벨상 수상자 퀴리 부인이 발견해 고국 폴란드의 이름을 딴 원소로 자연계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폴로늄은 원자로에서 원자핵반응을 일으켜야 만들어 낼 수 있다.

사극에 나오는 은수저, 독살 막는 데 효과 있었을까
2006년 런던에서 의문의 독살을 당한 전(前) 러시아 정보요원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가 폴로늄의 대표적인 희생자다.

런던의 한 스시 바에서 누군가가 리트비넨코가 먹던 초밥에 폴로늄 가루를 뿌렸고, 며칠 뒤 그는 방사성 피폭으로 사망했다.

신경작용제도 암살에 쓰인다.

김정남은 2017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화학무기이자 독극물인 VX 신경작용제 공격을 받고 숨졌다.

일본 나고야공업대 명예교수인 사이토 가쓰히로가 쓴 '한 권으로 이해하는 독과 약의 과학'(시그마북스)은 식물·동물·광물 등 수많은 천연물에 들어 있는 독성분을 조명한 책이다.

저자는 독극물이 어떻게 작용해서 사람의 건강을 해치고, 수명을 단축하는지, 그리고 이런 독을 약으로 이용할 수 있는지를 살펴본다.

책에는 '독의 강도 순위'도 담겨 있는데, 담배에 함유된 니코틴이 18위라는 점이 충격적이다.

청산가리(19위)보다 강력하다.

가장 강력한 독은 보틀리누스균에서 추출한 보툴리눔 독소다.

아주까리에서 채취한 '라이신'(3위)보다 독성이 3천배나 강하다고 한다.

정한뉘 옮김. 316쪽.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