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에겐 러 시민권 강요…거부하면 의료·복지 제한
러 점령지의 비극…"수용소 우크라인 43%, 성폭력·고문당해"
러시아 점령지 내 수용소에 구금된 우크라이나인의 절반가량이 성폭력을 포함한 고문에 시달리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고 미국 CNN 방송이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국·영국·유럽연합(EU)이 우크라이나 내 전쟁 범죄 조사를 지원하기 위해 설립한 잔혹범죄자문단(ACA)의 기동사법팀(MJT)은 이날 보고서에서 우크라이나 헤르손 지역에 있는 러시아 수용소에서 우크라이나인에 대한 고문이 만연하다고 밝혔다.

헤르손에 있는 것으로 확인된 35개 이상의 수용소에서 발생한 320건의 사례를 분석한 결과, 희생자의 최소 43%가 성폭행 등 고문을 당했다고 언급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남성과 여성 수용자 모두 이러한 고문에 노출됐으며, 군인은 고문받을 가능성이 더 컸다고 설명했다.

희생자 중 최소 36명은 심문 과정에서 전기 고문을 받았고 성기에 대한 전기 고문도 자주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성기 훼손 위협을 받거나 강간 장면을 목격하도록 강요받는 경우도 있었다.

질식, 물고문, 심각한 구타 등도 수용소의 러시아 관리들이 우크라이나인들에게 행한 흔한 고문 방식이었다고 보고서는 덧붙였다.

전쟁범죄 증거 수집·분석 등 기동사법팀 활동으로 우크라이나 검찰총장실을 지원하는 국제 법률회사 '글로벌 라이츠 컴플라이언스'(GRC)의 안나 미키텐코는 특히 남성 수용자들이 성고문을 자주 당해 불임에 이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인의 정체성을 파괴하려고 이런 고문을 하는 것"이라며 "일부 고문 관행은 대량학살로 간주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량학살은 입증하기 어려운 범죄"라며 증거 확보를 위해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키텐코는 "이번 보고서는 일부 사례를 토대로 한 초기 분석일 뿐"이라며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 점령지에 고문이 더 만연해 있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러 점령지의 비극…"수용소 우크라인 43%, 성폭력·고문당해"
러시아가 점령지 내 우크라이나인에게 러시아 시민권을 받도록 강요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미국 예일대 인문학연구소는 미 국무부가 지원하는 전쟁범죄 증거확보 프로그램 '분쟁관측소' 활동으로 이날 발간한 보고서에서 루한스크, 도네츠크, 헤르손, 자포리자 등 러시아 점령지에서 러시아 시민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러시아 여권 신청을 간소화하는 한편, 러시아 여권 발급을 거부하는 경우에는 각종 의료·복지 서비스를 제한하고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 시민권이 있는 주민만 특정 의약품과 의료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고, 18개월간 최소 8천591루블(약 12만원)씩 제공하는 자녀 양육 지원 혜택도 받을 수 있다.

러시아 시민권을 거부하는 주민들은 운전면허 발급이나 차량등록이 불가능해지고, 폭력이나 협박에 시달리기도 한다.

지난 4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점령지 주민들이 2024년 7월 1일까지 러시아 시민권을 수락 또는 거부할지 결정하도록 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러시아가 이 지역을 병합한 이후에 이주한 주민들은 2024년 1월 1일까지 결정해야 한다.

이 기한 내 러시아 시민권을 받지 않은 주민은 외국인이나 무국적자로 간주, 구금되거나 추방될 수 있다.

너새니얼 레이먼드 예일대 인문학연구소장은 이러한 러시아의 행태가 우크라이나의 국가 정체성을 지우려는 '고전적인 전쟁범죄'라면서 이번 조사 결과가 우크라이나 검찰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예일대 인문학연구소는 우크라이나 어린이 강제 이송 등 러시아의 전쟁범죄 행위를 조사해왔고, 이러한 연구는 지난 3월 ICC가 푸틴 대통령에 대한 체포 영장을 발부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미하일 미슈스틴 러시아 총리는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5월까지 점령지 주민 약 150만명이 러시아 여권을 받았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