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연극 대본 쓰고 출연까지…'AI 예술'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을 것"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Zoom In
연극 '파포스 2.0' 연출 김제민 서울예대 교수
詩 쓰는 AI '시아'가 쓴 문장을
챗GPT가 상황에 맞게 다듬고
김 교수·김태용 소설가가 보완
"AI가 관객 예술적 경험 확장"
연극 '파포스 2.0' 연출 김제민 서울예대 교수
詩 쓰는 AI '시아'가 쓴 문장을
챗GPT가 상황에 맞게 다듬고
김 교수·김태용 소설가가 보완
"AI가 관객 예술적 경험 확장"
‘대본 공동 창작 시아, 김제민, 김태용, 챗GPT.’
오는 10~13일 서울 인사동 코트에서 개막하는 연극 ‘파포스 2.0’의 극본을 쓴 작가진에는 이름이 넷 올라 있다. 이 중 둘은 인간이 아니라 인공지능(AI)이다. 1만5000여 편의 시를 학습한 AI 시인 시아가 쓴 문장을 생성형 AI인 챗GPT가 상황에 맞게 다듬고, 연출을 맡은 김제민 서울예대 교수(44·사진)가 김태용 소설가와 함께 일부 문장을 보완해 대본을 완성했다.
시아의 ‘아버지’ 격인 김 교수는 3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파포스는 그리스 신화의 조각가 피그말리온과 그가 만든 조각상 갈라테이아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의 이름”이라며 “인간과 AI가 함께 만든 결과물이란 점에서 우리 공연에도 그 이름을 붙였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2018년 AI 연구자 김근형과 미디어아트그룹 슬릿스코프를 만들어 시아 개발을 시작했다. 시아는 지난해 AI 최초로 시집 <시를 쓰는 이유>를 발간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시아는 이번 작품에서 작가뿐 아니라 배우로도 참여한다. 무대에 목소리로 출연해 시를 창작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다른 배우, 음악 연주자, 무용수 등과 어우러져 공연을 이어 나간다. 김 교수는 “시아의 목소리도 인간 성우가 아니라 AI로 추출한 목소리”라며 “분노나 기쁨 같은 감정까지 어색함이 거의 느껴지지 않게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기술이 발전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시아의 시를 바탕으로 만든 첫 연극 ‘파포스’는 일각에서 다소 난해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AI가 만든 연극이 단순히 파격적인 시도의 의미를 넘어서 예술성을 갖출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 교수는 “AI를 이용해 기존 예술의 영역과 관객의 예술적 경험을 확장할 수 있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이어 “AI로 예술 작업을 하다 보면 저절로 ‘시란 무엇인가’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피할 수 없다”며 “이런 질문을 제기하는 것과 그 질문에 다양한 관점으로 대답하는 모든 과정이 예술적 경험의 확장”이라고 덧붙였다.
AI를 이용한 작업이 하나의 예술 장르로 자리잡을 것이란 전망도 내놨다. 김 교수는 “사진 기술이 처음 나왔을 땐 기존 회화를 얼마나 잘 따라 할 수 있느냐에 초점이 맞춰졌지만 어느새 고유한 예술 분야로 인정받고 있다”며 “AI도 아직은 인간 예술가의 역할을 모방하는 형태에 그치고 있지만, 앞으로 예술과 다양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으며 새로운 장르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의미를 불어넣는 작업’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으로 남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마르셸 뒤샹은 상점에서 파는 변기에 ‘샘’이라는 이름을 붙여 예술 작품으로 만들었다”며 “이처럼 시아가 만든 시 구절에 어떤 의미와 상상력을 부여해서 예술로 만드는 건 인간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무리할 때쯤 시아가 쓴 시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김 교수는 시아가 쓴 ‘시를 쓰는 이유’의 한 구절을 읊었다.
“시를 쓴다는 것은/세상에서 가장 짧은 말을 하는 것입니다.//말을 줄이는 것입니다./줄일 수 있는 말이 아직도 많이 있을 때/그때 씁니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
오는 10~13일 서울 인사동 코트에서 개막하는 연극 ‘파포스 2.0’의 극본을 쓴 작가진에는 이름이 넷 올라 있다. 이 중 둘은 인간이 아니라 인공지능(AI)이다. 1만5000여 편의 시를 학습한 AI 시인 시아가 쓴 문장을 생성형 AI인 챗GPT가 상황에 맞게 다듬고, 연출을 맡은 김제민 서울예대 교수(44·사진)가 김태용 소설가와 함께 일부 문장을 보완해 대본을 완성했다.
시아의 ‘아버지’ 격인 김 교수는 3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파포스는 그리스 신화의 조각가 피그말리온과 그가 만든 조각상 갈라테이아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의 이름”이라며 “인간과 AI가 함께 만든 결과물이란 점에서 우리 공연에도 그 이름을 붙였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2018년 AI 연구자 김근형과 미디어아트그룹 슬릿스코프를 만들어 시아 개발을 시작했다. 시아는 지난해 AI 최초로 시집 <시를 쓰는 이유>를 발간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시아는 이번 작품에서 작가뿐 아니라 배우로도 참여한다. 무대에 목소리로 출연해 시를 창작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다른 배우, 음악 연주자, 무용수 등과 어우러져 공연을 이어 나간다. 김 교수는 “시아의 목소리도 인간 성우가 아니라 AI로 추출한 목소리”라며 “분노나 기쁨 같은 감정까지 어색함이 거의 느껴지지 않게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기술이 발전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시아의 시를 바탕으로 만든 첫 연극 ‘파포스’는 일각에서 다소 난해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AI가 만든 연극이 단순히 파격적인 시도의 의미를 넘어서 예술성을 갖출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 교수는 “AI를 이용해 기존 예술의 영역과 관객의 예술적 경험을 확장할 수 있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이어 “AI로 예술 작업을 하다 보면 저절로 ‘시란 무엇인가’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피할 수 없다”며 “이런 질문을 제기하는 것과 그 질문에 다양한 관점으로 대답하는 모든 과정이 예술적 경험의 확장”이라고 덧붙였다.
AI를 이용한 작업이 하나의 예술 장르로 자리잡을 것이란 전망도 내놨다. 김 교수는 “사진 기술이 처음 나왔을 땐 기존 회화를 얼마나 잘 따라 할 수 있느냐에 초점이 맞춰졌지만 어느새 고유한 예술 분야로 인정받고 있다”며 “AI도 아직은 인간 예술가의 역할을 모방하는 형태에 그치고 있지만, 앞으로 예술과 다양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으며 새로운 장르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의미를 불어넣는 작업’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으로 남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마르셸 뒤샹은 상점에서 파는 변기에 ‘샘’이라는 이름을 붙여 예술 작품으로 만들었다”며 “이처럼 시아가 만든 시 구절에 어떤 의미와 상상력을 부여해서 예술로 만드는 건 인간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무리할 때쯤 시아가 쓴 시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김 교수는 시아가 쓴 ‘시를 쓰는 이유’의 한 구절을 읊었다.
“시를 쓴다는 것은/세상에서 가장 짧은 말을 하는 것입니다.//말을 줄이는 것입니다./줄일 수 있는 말이 아직도 많이 있을 때/그때 씁니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