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의 세상엔 큰 국가보다 작은 국가가 유리하다” [책마을]
“미래에는 더 작고, 더 기민하며, 더 통합적인 사회가 유리할 것이다.”

<너무 작아서 실패할 수 없는 국가>는 이런 대담한 주장을 편다. 인구도 땅도 작고, 변변한 천연자원도 없는 작은 국가들의 앞날이 큰 국가들보다 밝다는 것이다.

책을 쓴 R. 제임스 브라이딩은 스위스계 미국인이다. 스위스 로잔 국제경영개발원(IMD)과 미국 하버드케네디스쿨을 졸업했다. 투자 부티크 네이선스캐피털을 세워 운영하는 한편 이코노미스트, 파이낸셜타임스,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의 언론에 글을 써왔다. 금융과 언론이란 두 배경 덕분인지 저자의 글은 간결하고 쉽게 읽힌다. 그러면서도 깊이 있는 분석을 놓치지 않는다.

옛날엔 큰 나라일수록 유리했던 게 사실이다. 많은 인구는 노동력과 군사력 외에도 납세와 같은 1인당 비용 측면에서도 유리했다. 국토가 넓으면 천연자원이 풍부한 경우가 많아 산업 성장의 원동력이 됐다. 큰 내수 시장은 안정적인 수요를 제공했다.

많은 강국이 정복 전쟁을 벌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규모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오히려 불안정성이 커진다. 멀리 떨어진 영토를 통치하고 지키기가 힘들어지고, 사회 통합도 요원해진다. 그래서 폴 케네디 예일대 교수는 <강대국의 흥망>에서 강대국들이 기본적으로 불안정하다고 주장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보편화된 자유롭고 공정한 국제무역은 이런 판도를 바꿨다. 천연자원이 없는 나라도, 내수시장이 작은 나라도 무역으로 얼마든지 부유해질 수 있다.

저자는 그 밖에도 작은 나라가 갖는 이점이 많다고 주장한다. 작은 나라는 항상 외부의 위협과 충격에 민감하다. 그래서 더 열심히 노력하고 혁신한다. 세계혁신지수,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 세계경쟁력지수 등에 스위스, 네덜란드, 이스라엘, 싱가포르, 덴마크 같은 나라가 상위에 포진한 이유다.

작은 나라는 사회 통합에도 유리하다. 인구 구성이 대체로 균질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대체로 이민은 유익하다”면서도 “사회통합 유지비용은 이민자 증가에 따라 대폭 증가하며, 사회적 신뢰와 이질성 사이에는 상반 관계가 존재한다”고 했다.

물론 작은 나라라고 다 전망이 밝은 것 아니다. 그는 핀란드, 싱가포르, 아일랜드, 덴마크, 이스라엘, 호주 등을 모범 사례로 꼽는다. 책의 후반부는 이들 국가에서 각각 어떤 점을 배울 수 있는지에 대한 사례 탐구로 이루어져 있다.

핀란드에서 특별히 더 배울 만한 점은 ‘교육’이다.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늘 상위권에 있는 핀란드는 사실 교육에 많은 돈을 쓰지 않는다. 핀란드의 초등학생 1인당 교육비는 다른 주요 국가들보다 30% 적다. 교실은 1950년대 분위기가 난다. 디지털 화이트보드 따윈 없다. 다른 선진국보다 1~2년 늦은 7세에 학교에 입학하며, 연간 수업 시간도 짧다.

대신 ‘시험을 위한 공부’가 아닌 ‘배움의 즐거움을 위한 공부’를 시킨다. 이는 단순 암기 능력이 아닌 개념 이해를 묻는 PISA의 평가 목적과도 맞아 PISA 성적이 좋게 나오는 이유가 된다. 핀란드에선 교사가 존경받은 직업이다. 초등학교 교사가 되려면 치열한 선발 과정을 거쳐야 하며, 대게 최고 수준의 대학 석사 학위를 갖고 있다.

싱가포르는 ‘의료’다. 모든 국민에게 적절하고 합리적인 가격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국가가 강하게 개입하는데, 그렇다고 거저 주는 건 아니다. 어떤 치료든 환자가 일정 부분을 부담해야 한다. 의료비 억제를 위한 각종 인센티브도 동반한다. 그 결과 의료비 지출액의 3분의 2는 민간이, 나머지 3분의 1은 공공이 낸다. 저자는 “싱가포르 모델은 미국보다 훨씬 더 민영화된 시스템”이라고 평가한다.

책은 미국 등 큰 나라만이 정답은 아니며, 작은 나라에서도 배울 점이 많다고 말한다. 저자의 관점이 다 맞는다고는 할 수 없지만 시야를 넓혀주는 책임에는 틀림없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