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이사회가 4일 차기 대표 후보로 김영섭 전 LG CNS 사장을 확정했다. KT 직원이 서울 광화문 본사 정문으로 들어가고 있다.   /강은구 기자
KT 이사회가 4일 차기 대표 후보로 김영섭 전 LG CNS 사장을 확정했다. KT 직원이 서울 광화문 본사 정문으로 들어가고 있다. /강은구 기자
김영섭 전 LG CNS 사장이 우여곡절 끝에 KT의 차기 대표로 내정됐지만 앞에 놓인 길은 가시밭길이다. 일단 조직 정상화가 급선무다. KT 최고경영자(CEO) 자리는 지난 3월 구현모 대표가 사임하고 박종욱 경영기획부문장(사장)이 직무대행을 맡으면서 반년 가까이 비어 있었다. 작년 11월부터 차기 대표 선임을 둘러싼 논란이 시작된 점을 감안하면 10개월가량 정상적인 경영이 이뤄지지 않았다. 정기 인사와 조직개편, 대규모 투자 및 인수합병(M&A) 등 기업의 주요 결정이 ‘올 스톱’ 상태였다. 정부가 최근 통신시장 경쟁 촉진 방안을 내놓으면서 통신사를 압박하고 있고 경쟁사들이 인공지능(AI)과 로봇, 메타버스, 도심항공교통(UAM) 등 신규 사업 분야에서 발 빠르게 움직이는 등 외부 상황도 녹록지 않다.

'글로벌 KT' 재시동…디지털·AI로 내수 통신기업 한계 넘는다
김 후보는 1959년생으로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1984년 럭키금성상사에 입사했다. LG 회장실 감사팀과 LG상사 미국법인 관리부장 등을 거쳐 LG CNS와 LG유플러스에서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지냈다. 2015년부터 7년간 LG CNS CEO로 재직하며 실적 개선을 이끌었다.

특히 LG CNS에서 ‘기술 역량 레벨 평가제도’를 도입해 연공 서열보다 기술 역량 중심의 인재 발탁 제도를 안착시켰다. 실적이 나오지 않는 태양광 사업과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사업을 정리하는 등 과감한 면모도 보였다. ‘구조조정 전문가’로도 불리는 만큼 그가 KT의 체질 개선에 박차를 가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성균관대 유학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하는 등 한학에도 조예가 깊다.

업계에선 디지털 전환(DX) 사업 전문가인 김 후보가 KT가 추진해온 ‘DX 전문 기업’의 비전을 이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KT의 올해 1분기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통신 매출은 2조3800억원으로 2019년과 비교해 3.5% 늘어나는 데 그쳤지만 같은 기간 DX 영역은 27.9% 성장했다.

김 후보는 최종 면접에서 “내수라는 한계가 있는 통신시장보다는 인공지능(AI) 기술을 기반으로 글로벌 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방향으로 KT를 바꿔가겠다”는 취지로 말해 이사회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AI는 KT가 그리고 있는 DX 사업의 핵심이다. KT는 초거대 AI ‘믿음(MIDEUM)’을 오는 10월께 출시할 계획이다. 오픈AI의 챗GPT와 구글의 바드 같은 일반 이용자 대상 AI 서비스 대신 기업용 AI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기업의 데이터를 학습시켜 제조, 유통, 콘텐츠 등 각 분야의 기업이 활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KT는 이를 위해 AI 반도체 등 인프라부터 고객에게 제공하는 AI 기반 서비스까지 전 과정을 아우르는 ‘AI 풀 스택’ 전략을 추진 중이다. 클라우드 사업을 분사하고, AI 반도체 스타트업 리벨리온과 AI 인프라 소프트웨어 기업 모레에 투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KT 관계자는 “믿음은 AI 풀 스택 전략을 실행하기 위한 마지막 퍼즐 조각과 같다”며 “AI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DX 전문 기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가 부양은 숙제다. KT의 주가는 작년 8월 10일 3만9300원까지 오르며 9년 만에 시가총액이 10조원을 돌파했다. 하지만 경영 공백이 이어지면서 3만원 밑으로 떨어지는 등 좀처럼 반등의 계기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이날 종가는 3만750원이었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