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제주문화] (65)"자연·사람이 만들어낸 걸작" 제주 전통의복 갈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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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사람의 자존심이자 긍지…후대에 물려줄 소중한 유산"
전통·기능성 뛰어난 갈옷, 제주도민 70% 문화재 지정해야
[※ 편집자 주 = 제주에는 섬이라는 지리적 여건으로 생성된 독특한 문화가 많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 세대가 바뀌고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제주만의 독특한 문화가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할 수 있지만, 문화와 함께 제주의 정체성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안타깝고 불안합니다.
근대화 과정에서 후진적이고 변방의 문화에 불과하다며 천대받았던 제주문화. 하지만 지금 우리는 그 속에서 피폐해진 정신을 치유하고 환경과 더불어 공존하는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습니다.
제주문화가 재조명받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다시'라는 우리말은 '하던 것을 되풀이해서'란 뜻 외에 '방법이나 방향을 고쳐서 새로이' 또는 '하다가 그친 것을 계속해서'란 뜻을 담고 있습니다.
다시! 제주문화를 돌아보고 새롭게 계승해 나가야 할 때입니다.
연합뉴스는 이번 기획 연재를 통해 제주문화가 우리 삶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고 계승해 나갈 방법을 고민합니다.
] 적갈색 또는 흑갈색으로 고급스러운 빛깔을 자아내는 갈옷.
가끔 멋스럽게 디자인된 갈옷을 보면 꽤 대중적이어서 젊은 사람들이 입어도 손색이 없겠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오늘날 누구나 즐겨 입는 청바지가 옛날 서양 광부들의 작업복이었다는 걸 떠올리기 쉽지 않듯 갈옷이 제주 사람들의 노동복이었다는 사실도 10대 청소년들은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울 듯하다.
제주의 자연과 제주 선인들의 땀과 정성이 빚어낸 갈옷을 들여다본다.
◇ 뙤약볕 내리쬐는 여름, 갈옷의 계절
'凌雨枾染衣 冒雪皮爲帽'(릉우시염의 모설피위모)
'장맛비 올 때 옷에 감물 들이고, 추운 겨울에는 가죽으로 모자를 만드네'
조선 후기 문신인 윤봉조가 1728∼1729년 제주에 유배됐을 당시 남긴 한시 '도중잡영'(島中雜詠)의 일부다.
세차게 내리는 비를 뜻하는 '凌雨'(릉우)는 시(詩)에서 '장맛비'를 통해 '제주의 여름'을 비유하는 단어로 쓰였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장마가 끝나 강한 햇볕이 내리쬐는 한 여름'을 일컫는다.
장마가 물러가고 가마솥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바로 이맘때쯤이면 제주에선 옷에 감물 들이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갈옷을 만들기 위함이다.
갈옷은 목면 등의 천을 제주 토종 풋감으로 물들인 갈천으로 만든 제주의 전통의복이다.
윗옷은 남녀공통으로 갈적삼, 아래옷은 갈중이(남성), 갈굴중이(여성)라 한다.
집 텃밭마다 감나무 한두그루씩을 키웠던 옛날 7∼8월이면 제주 사람들은 감 씨가 딱딱하게 여물기 직전 푸른 빛이 감도는 '풋감'을 따다가 커다란 통에 넣고 잘게 부수고 빻아 감물(枾汁)을 냈다.
이어 옷이나 옷감을 통에 넣어 감물이 골고루 배도록 주무르고 치댄 뒤 감찌꺼기를 털어낸 다음 햇볕에 말렸다.
바짝 마르면 다시 물을 적시면서 앞과 뒤를 뒤집어 널어 말렸는데 이 과정을 여러차례 반복했다.
이 과정을 '볕을 받아 색이 변하다'는 뜻의 '바랜다'라고 표현한다.
제주 출신으로 한국의 복식사(服飾史)와 갈옷을 오랫동안 연구한 고부자 전 단국대학교 교수는 "최상의 갈옷은 '바래기'에서 결정된다"고 강조한다.
그는 "일손이 귀할 때나 밭이나 들일을 갈 때도 (감물 들인 옷을) 가지고 가서 잔디나 돌 위에서 말렸고, 물이 필요하기 때문에 반드시 물허벅을 지고 갔다"며 "바래는 과정이 더해 갈수록 흰색의 옷이 점차 발갛게 붉은 벽돌색으로 변하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바래는 과정은 보통 일주일 가량 걸리는데 이때 비가 오면 품질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돼 "갈옷 농사를 망치게 된다"고 말한다.
장마가 언제쯤 그쳐 볕이 쨍한 맑은 날씨가 이어질지를 점치는 건 감물을 들여 갈옷을 만드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고부자 전 단국대 교수는 "갈옷은 제주 풋감으로 제주의 자연기상과 사람의 땀, 지혜, 정성을 함께 모아 만들어 낸 걸작"이라며 "경제적이고 위생적일 뿐만 아니라 자연 친화적인 우수한 자원이며 제주의 자랑거리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 제주의 '만능 의복' 갈옷
'푸른색의 덜 익은 감을 부수어 만든 감물을 이용해 베잠방이(베로 지은 짧은 남자용 홑바지)에 물들이면 그 색이 검붉은데, 비록 열흘이나 한 달을 빨지 못해도 땀으로 더러워지지 않으니 농가에서 더욱 즐겨 입는다.
'(윤시동 저, 김영길 역 증보탐라지)
1765∼1766년 제주 목사로 부임했던 윤시동은 제주의 생활상에 대해 쓴 '증보탐라지'에서 갈옷의 장점을 이같이 설명했다.
갈옷은 예부터 제주의 서민층이 입었던 노동복이자 일상복이었다.
밭에서 농사를 짓거나 바다에서 고기를 잡을 때, 또는 산과 들에 풀어놓은 말과 소를 돌볼 때 언제든 갈옷을 입었다.
감물을 들일 때 떫은 맛을 내는 풋감의 탄닌 성분이 섬유와 결합하면 풀을 먹인 것처럼 옷을 질기고 빳빳하게 만들어 공기가 잘 통하도록 하는데, 갈옷은 습한 제주의 무더위에 땀을 많이 흘리거나 바닷물 또는 비에 젖어도 끈적임 없이 몸에 달라붙지 않았다.
갈옷은 가시덤불에 걸려도 잘 찢기지 않고, 빛깔이 제주 흙 색깔과 비슷해 더러워져도 쉽게 눈에 띄지 않을 뿐만 아니라 더러움도 덜 타 잔 솔질이 필요 없었다.
게다가 방충, 항균 효과도 뛰어나 일을 할 때든 평상시 생활할 때든 기능적으로 매우 편리한 옷이었다.
특히 주목하는 부분은 제주 사람들이 갈옷을 재활용했던 지혜다.
감물들이기는 낡은 옷을 살리는 재생의 연금술사였다.
일을 하며 해지고 후줄근해진 갈옷이라도 다시 정성껏 감물을 들이고 바래는 과정을 거치면 새것처럼 빳빳하게 통기성 좋은 갈옷으로 다시 태어났다.
입다가 낡은 것 중 상태가 괜찮은 갈옷은 다양한 재활용거리로 재탄생했다.
입고 먹고 쓰는 모든 게 귀했던 시절 아버지가 입던 낡은 갈중이는 재활용거리로 갓난아이의 몸을 싸는 '첫 싸개'로 쓰였다고 한다.
제주에서 갓난아이의 목욕은 3일 만에 시켰는데 부드럽게 갈색으로 변한 낡은 갈옷은 목욕을 시키지 않은 핏덩이 아이를 싸두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아기의 연한 살갗에 닿았을 때 상큼하면서도 부드러운 촉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첫 싸개 뿐만 아니라 아기 포대기, 기저귀, 더 낡은 것은 끈이나 청소 걸레 등으로도 활용됐다.
그리고 더는 사용할 수 없는 것은 아궁이 불쏘시개로 그 질긴 생명력을 마감했다.
◇ 제주 전통의복 갈옷을 문화재로
제주 사람들이 언제부터 갈옷을 입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
다만, 감물염색과 갈옷에 대한 조선시대 후기 고문헌 기록 등을 통해 최소 300년 이상의 긴 역사를 갖는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제주 사람들은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를 지나 1950년대까지도 갈옷을 즐겨 입었다.
하지만 1960년대 화학섬유로 만든 옷이 대중화하면서 그 입지가 점점 줄어들면서 1980년대 들어서는 갈옷을 입는 사람들을 보기 힘들 정도가 됐다.
1990년대 다시 갈옷과 그 기능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노동복만이 아닌 패션 모자와 베갯잇, 방석, 자동차 등받이 등으로 활용도가 다양화했고 제주 전역으로 옷에 감물 들이기가 유행처럼 번졌다.
그뿐만 아니라 대도시 백화점과 지역문화 행사에도 갈옷을 전시, 판매하기 시작했다.
제주도는 2008년 3월 제주문화를 함축하는 10대 상징물로 갈옷을 선정해 발표했다.
감물을 들여 시원하면서도 질긴 노동복을 만들어 입은 옛 선인들의 삶의 지혜를 높이 평가한 것이다.
당시 10대 상징물로는 갈옷과 함께 한라산, 해녀, 제주어, 제주4·3, 돌 문화, 제주굿, 제주초가, 귤, 오름 등이 선정됐다.
최근에는 갈옷을 문화재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제주도 세계유산본부와 제주학연구센터는 '제주 갈옷 미래무형유산 발굴ㆍ육성 사업'을 통해 갈옷에 대한 도민 설문조사를 ㈔'한국지역혁신연구원'에 의뢰해 지난 4∼5월 2달간 진행했다.
조사결과 '제주 갈옷과 감물염색을 보존하고 전승하기 위해 문화재로 지정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그렇다'가 191명(41.2%), '매우 그렇다'가 138명(29.7%)으로 응답자 464명 중 329명인 70.9%가 긍정적인 답변을 했다.
이어 '보통이다' 108명(23.3%), '그렇지 않다' 23명(5.0%), '매우 그렇지 않다' 4명(0.9%) 순으로 나타났다.
갈옷에 대한 인식도와 관련해 '갈옷을 입어본 경험이 있는지'에 대해 260명(56.0%)이 입어봤다고 응답했다.
이들 260명을 대상으로 '갈옷을 얼마나 자주 입고 있는지'를 조사한 결과 '가끔 입는다'가 88명(33.8%)으로 가장 많았고, '일상적으로 매우 자주 입는다' 32명(12.3%), '자주 입는 편이다' 30명(11.5%) 등 여전히 57.6%의 도민이 가끔이라도 제주 갈옷을 입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외에도 제주 갈옷의 활성화와 대중화를 위해 도민들은 '제주 갈옷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 '갈옷 입는 날 제정 또는 갈옷 착용자에 대한 입장료·주차료 감면 시행', '학술조사와 그 결과를 활용한 포럼·워크숍 개최', '문화재청 등 기관의 적극적인 관심과 실질적인 예산 지원' 등의 의견을 제시했다.
고부자 전 단국대 교수는 "갈옷은 제주 사람의 자존심이자 긍지다.
또 건강한 삶을 추구하는 현시대 요구에 가장 알맞는 옷"이라며 "후손들에게 물려줄 소중한 유산으로 계승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이 기사는 '제주 갈옷의 전통과 계승 발전방향'(고부자 전 단국대학교 교수), '제주 갈옷의 역사와 변천 양상'(홍희숙 제주대학교 교수) 등 논문과 강연자료 등을 인용·참고해 제주의 갈옷과 감물 염색 문화를 소개한 것입니다.
]
/연합뉴스
전통·기능성 뛰어난 갈옷, 제주도민 70% 문화재 지정해야
[※ 편집자 주 = 제주에는 섬이라는 지리적 여건으로 생성된 독특한 문화가 많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 세대가 바뀌고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제주만의 독특한 문화가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할 수 있지만, 문화와 함께 제주의 정체성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안타깝고 불안합니다.
근대화 과정에서 후진적이고 변방의 문화에 불과하다며 천대받았던 제주문화. 하지만 지금 우리는 그 속에서 피폐해진 정신을 치유하고 환경과 더불어 공존하는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습니다.
제주문화가 재조명받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다시'라는 우리말은 '하던 것을 되풀이해서'란 뜻 외에 '방법이나 방향을 고쳐서 새로이' 또는 '하다가 그친 것을 계속해서'란 뜻을 담고 있습니다.
다시! 제주문화를 돌아보고 새롭게 계승해 나가야 할 때입니다.
연합뉴스는 이번 기획 연재를 통해 제주문화가 우리 삶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고 계승해 나갈 방법을 고민합니다.
] 적갈색 또는 흑갈색으로 고급스러운 빛깔을 자아내는 갈옷.
가끔 멋스럽게 디자인된 갈옷을 보면 꽤 대중적이어서 젊은 사람들이 입어도 손색이 없겠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오늘날 누구나 즐겨 입는 청바지가 옛날 서양 광부들의 작업복이었다는 걸 떠올리기 쉽지 않듯 갈옷이 제주 사람들의 노동복이었다는 사실도 10대 청소년들은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울 듯하다.
제주의 자연과 제주 선인들의 땀과 정성이 빚어낸 갈옷을 들여다본다.
◇ 뙤약볕 내리쬐는 여름, 갈옷의 계절
'凌雨枾染衣 冒雪皮爲帽'(릉우시염의 모설피위모)
'장맛비 올 때 옷에 감물 들이고, 추운 겨울에는 가죽으로 모자를 만드네'
조선 후기 문신인 윤봉조가 1728∼1729년 제주에 유배됐을 당시 남긴 한시 '도중잡영'(島中雜詠)의 일부다.
세차게 내리는 비를 뜻하는 '凌雨'(릉우)는 시(詩)에서 '장맛비'를 통해 '제주의 여름'을 비유하는 단어로 쓰였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장마가 끝나 강한 햇볕이 내리쬐는 한 여름'을 일컫는다.
장마가 물러가고 가마솥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바로 이맘때쯤이면 제주에선 옷에 감물 들이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갈옷을 만들기 위함이다.
갈옷은 목면 등의 천을 제주 토종 풋감으로 물들인 갈천으로 만든 제주의 전통의복이다.
윗옷은 남녀공통으로 갈적삼, 아래옷은 갈중이(남성), 갈굴중이(여성)라 한다.
집 텃밭마다 감나무 한두그루씩을 키웠던 옛날 7∼8월이면 제주 사람들은 감 씨가 딱딱하게 여물기 직전 푸른 빛이 감도는 '풋감'을 따다가 커다란 통에 넣고 잘게 부수고 빻아 감물(枾汁)을 냈다.
이어 옷이나 옷감을 통에 넣어 감물이 골고루 배도록 주무르고 치댄 뒤 감찌꺼기를 털어낸 다음 햇볕에 말렸다.
바짝 마르면 다시 물을 적시면서 앞과 뒤를 뒤집어 널어 말렸는데 이 과정을 여러차례 반복했다.
이 과정을 '볕을 받아 색이 변하다'는 뜻의 '바랜다'라고 표현한다.
제주 출신으로 한국의 복식사(服飾史)와 갈옷을 오랫동안 연구한 고부자 전 단국대학교 교수는 "최상의 갈옷은 '바래기'에서 결정된다"고 강조한다.
그는 "일손이 귀할 때나 밭이나 들일을 갈 때도 (감물 들인 옷을) 가지고 가서 잔디나 돌 위에서 말렸고, 물이 필요하기 때문에 반드시 물허벅을 지고 갔다"며 "바래는 과정이 더해 갈수록 흰색의 옷이 점차 발갛게 붉은 벽돌색으로 변하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바래는 과정은 보통 일주일 가량 걸리는데 이때 비가 오면 품질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돼 "갈옷 농사를 망치게 된다"고 말한다.
장마가 언제쯤 그쳐 볕이 쨍한 맑은 날씨가 이어질지를 점치는 건 감물을 들여 갈옷을 만드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고부자 전 단국대 교수는 "갈옷은 제주 풋감으로 제주의 자연기상과 사람의 땀, 지혜, 정성을 함께 모아 만들어 낸 걸작"이라며 "경제적이고 위생적일 뿐만 아니라 자연 친화적인 우수한 자원이며 제주의 자랑거리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 제주의 '만능 의복' 갈옷
'푸른색의 덜 익은 감을 부수어 만든 감물을 이용해 베잠방이(베로 지은 짧은 남자용 홑바지)에 물들이면 그 색이 검붉은데, 비록 열흘이나 한 달을 빨지 못해도 땀으로 더러워지지 않으니 농가에서 더욱 즐겨 입는다.
'(윤시동 저, 김영길 역 증보탐라지)
1765∼1766년 제주 목사로 부임했던 윤시동은 제주의 생활상에 대해 쓴 '증보탐라지'에서 갈옷의 장점을 이같이 설명했다.
갈옷은 예부터 제주의 서민층이 입었던 노동복이자 일상복이었다.
밭에서 농사를 짓거나 바다에서 고기를 잡을 때, 또는 산과 들에 풀어놓은 말과 소를 돌볼 때 언제든 갈옷을 입었다.
감물을 들일 때 떫은 맛을 내는 풋감의 탄닌 성분이 섬유와 결합하면 풀을 먹인 것처럼 옷을 질기고 빳빳하게 만들어 공기가 잘 통하도록 하는데, 갈옷은 습한 제주의 무더위에 땀을 많이 흘리거나 바닷물 또는 비에 젖어도 끈적임 없이 몸에 달라붙지 않았다.
갈옷은 가시덤불에 걸려도 잘 찢기지 않고, 빛깔이 제주 흙 색깔과 비슷해 더러워져도 쉽게 눈에 띄지 않을 뿐만 아니라 더러움도 덜 타 잔 솔질이 필요 없었다.
게다가 방충, 항균 효과도 뛰어나 일을 할 때든 평상시 생활할 때든 기능적으로 매우 편리한 옷이었다.
특히 주목하는 부분은 제주 사람들이 갈옷을 재활용했던 지혜다.
감물들이기는 낡은 옷을 살리는 재생의 연금술사였다.
일을 하며 해지고 후줄근해진 갈옷이라도 다시 정성껏 감물을 들이고 바래는 과정을 거치면 새것처럼 빳빳하게 통기성 좋은 갈옷으로 다시 태어났다.
입다가 낡은 것 중 상태가 괜찮은 갈옷은 다양한 재활용거리로 재탄생했다.
입고 먹고 쓰는 모든 게 귀했던 시절 아버지가 입던 낡은 갈중이는 재활용거리로 갓난아이의 몸을 싸는 '첫 싸개'로 쓰였다고 한다.
제주에서 갓난아이의 목욕은 3일 만에 시켰는데 부드럽게 갈색으로 변한 낡은 갈옷은 목욕을 시키지 않은 핏덩이 아이를 싸두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아기의 연한 살갗에 닿았을 때 상큼하면서도 부드러운 촉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첫 싸개 뿐만 아니라 아기 포대기, 기저귀, 더 낡은 것은 끈이나 청소 걸레 등으로도 활용됐다.
그리고 더는 사용할 수 없는 것은 아궁이 불쏘시개로 그 질긴 생명력을 마감했다.
◇ 제주 전통의복 갈옷을 문화재로
제주 사람들이 언제부터 갈옷을 입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
다만, 감물염색과 갈옷에 대한 조선시대 후기 고문헌 기록 등을 통해 최소 300년 이상의 긴 역사를 갖는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제주 사람들은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를 지나 1950년대까지도 갈옷을 즐겨 입었다.
하지만 1960년대 화학섬유로 만든 옷이 대중화하면서 그 입지가 점점 줄어들면서 1980년대 들어서는 갈옷을 입는 사람들을 보기 힘들 정도가 됐다.
1990년대 다시 갈옷과 그 기능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노동복만이 아닌 패션 모자와 베갯잇, 방석, 자동차 등받이 등으로 활용도가 다양화했고 제주 전역으로 옷에 감물 들이기가 유행처럼 번졌다.
그뿐만 아니라 대도시 백화점과 지역문화 행사에도 갈옷을 전시, 판매하기 시작했다.
제주도는 2008년 3월 제주문화를 함축하는 10대 상징물로 갈옷을 선정해 발표했다.
감물을 들여 시원하면서도 질긴 노동복을 만들어 입은 옛 선인들의 삶의 지혜를 높이 평가한 것이다.
당시 10대 상징물로는 갈옷과 함께 한라산, 해녀, 제주어, 제주4·3, 돌 문화, 제주굿, 제주초가, 귤, 오름 등이 선정됐다.
최근에는 갈옷을 문화재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제주도 세계유산본부와 제주학연구센터는 '제주 갈옷 미래무형유산 발굴ㆍ육성 사업'을 통해 갈옷에 대한 도민 설문조사를 ㈔'한국지역혁신연구원'에 의뢰해 지난 4∼5월 2달간 진행했다.
조사결과 '제주 갈옷과 감물염색을 보존하고 전승하기 위해 문화재로 지정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그렇다'가 191명(41.2%), '매우 그렇다'가 138명(29.7%)으로 응답자 464명 중 329명인 70.9%가 긍정적인 답변을 했다.
이어 '보통이다' 108명(23.3%), '그렇지 않다' 23명(5.0%), '매우 그렇지 않다' 4명(0.9%) 순으로 나타났다.
갈옷에 대한 인식도와 관련해 '갈옷을 입어본 경험이 있는지'에 대해 260명(56.0%)이 입어봤다고 응답했다.
이들 260명을 대상으로 '갈옷을 얼마나 자주 입고 있는지'를 조사한 결과 '가끔 입는다'가 88명(33.8%)으로 가장 많았고, '일상적으로 매우 자주 입는다' 32명(12.3%), '자주 입는 편이다' 30명(11.5%) 등 여전히 57.6%의 도민이 가끔이라도 제주 갈옷을 입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외에도 제주 갈옷의 활성화와 대중화를 위해 도민들은 '제주 갈옷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 '갈옷 입는 날 제정 또는 갈옷 착용자에 대한 입장료·주차료 감면 시행', '학술조사와 그 결과를 활용한 포럼·워크숍 개최', '문화재청 등 기관의 적극적인 관심과 실질적인 예산 지원' 등의 의견을 제시했다.
고부자 전 단국대 교수는 "갈옷은 제주 사람의 자존심이자 긍지다.
또 건강한 삶을 추구하는 현시대 요구에 가장 알맞는 옷"이라며 "후손들에게 물려줄 소중한 유산으로 계승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이 기사는 '제주 갈옷의 전통과 계승 발전방향'(고부자 전 단국대학교 교수), '제주 갈옷의 역사와 변천 양상'(홍희숙 제주대학교 교수) 등 논문과 강연자료 등을 인용·참고해 제주의 갈옷과 감물 염색 문화를 소개한 것입니다.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