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영원한 이웃?
‘행패 부리는 늑대’와 ‘웃는 얼굴의 호랑이’. 시진핑 중국 주석의 핵심 외교 노선을 한 저명한 중국 전문가는 이렇게 요약했다. 정권 이익을 지키기 위해 강온 전략을 번갈아가면서 쓴다는 것이다. 중국 외교의 이중성은 익히 알려져 있다. 한국을 대할 때 “영원한 이웃”류의 발언은 단골로 사용하는 레퍼토리다. 시 주석은 지난해 3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의 통화에서도, 양국 수교 30주년 축사에서도 “이사 갈 수 없는 영원한 이웃” “좋은 이웃”이라고 했다. 지난해 5월 한·중 외교장관 통화에서도, 윤 대통령 취임 때도 중국은 이런 말을 했다. ‘떠날 수 없는 파트너’ ‘떼려야 뗄 수 없는 이웃’ ‘협력 동반자’도 수시로 동원한다.

그러나 돌아서면 ‘말 따로 행동 따로’다. 북한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상습적으로 위반해도 제재를 막고 있다. 지난해 8월 외교장관 회담에선 내정 불간섭, 원활한 공급망 수호, 중대 관심사항 배려 등을 지시 사항 내밀듯 ‘5개의 마땅함(응당·應當)’이라는 이름으로 요구했다. 내정 불간섭이라고 해놓고 우리 주권을 대놓고 무시하는 이중성을 보인 것이다.

동북공정도 모자라 시 주석은 “한반도는 중국의 일부였다”는 등 역사 왜곡을 일삼고, 툭하면 한국 방공식별구역(KADIZ)을 침범하고 서해공정까지 벌이고 있다. 사드 3불(不)에 더해 운용에 제한을 두는 1한(限)도 관철시켰다. 한한령(限韓令) 해제는 7년째 얼버무리고 있다. 중국 외교부 장관은 훈계하듯 “미국에 휩쓸리지 말라”고 했고, 주한 중국대사는 ‘중국 베팅’ 발언으로 협박했다. 이런 중국의 이중성, 압박 외교를 두고 앨러스테어 존스턴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자신은 절대선으로 여기고 상대를 탓하는 ‘중국 예외주의(Chinese Exceptionalism)’로 설명했다.

중국은 이번엔 뤼순 감옥 박물관 내에서 안중근 의사의 유품과 행적을 소개하는 전시실을 폐쇄했다. 이어 지린성 룽징에 있는 시인 윤동주 생가도 문을 닫았다. 내부 수리를 이유로 대고 있지만, 껄끄러워진 한·중 관계와 한·미·일 밀착에 대한 중국의 불편한 의중이 작용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덩치 큰 나라가 이렇게 치졸하다. ‘영원한 이웃’은 역시 편리한 수사에 불과하다.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