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더스 돌풍' 7년… 파도가 돼 버린 미국의 신좌파 물결 [책마을]
미국 정치에서 '신좌파'의 불씨가 피어오른 것은 2016년. 버니 샌더스가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과정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아무렇게나 뻗친 백발에 싸구려 정장을 입은 고루한 인상을 풍겼지만, 고집스럽게 '미국식 사회주의'를 외치는 그의 모습에 많은 비백인, 여성, 청년들이 열광했다.

아시다시피 샌더스가 대선 후보로 나서는 일은 없었다. 2016년은 힐러리 클린턴, 2020년은 조 바이든에게 자리를 내줬으니. 샌더스 돌풍은 '이해할 수 없는 현상' 또는 '힐러리 클린턴을 겨냥한 반여성적 편견' 정도로 격하됐다. 그렇게 신좌파 운동은 한차례 소동으로 끝나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샌더스는 시작일 뿐이었다. 그의 불씨를 이어받은 젊은 신좌파 정치 세력이 몸집을 키워갔다. 무명이나 다름없던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AOC)는 2018년 하원에 입성한 뒤 지금까지 내리 3선을 하고 있다. 그가 속한 '미국 민주사회주의자들(DSA)'은 9만명이 넘는 당원을 확보했다. 70년 전 8만5000명의 당원이 활동한 '미국공산당'과 비견될 규모다.

<미국이 불타오른다>는 이처럼 샌더스 돌풍 이후 미국의 신좌파 운동이 세를 불린 과정을 추적한 책이다. 정치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는 레이나 립시츠가 다양한 기록과 인터뷰를 엮어 미국 젊은이들이 좌경화 되는 배경을 설명했다.

최근 미국 신좌파의 지향점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환경운동이나 이민자 권리, 페미니즘, 노동운동 등 각양각색의 목소리를 내는 단체가 결합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샌더스의 공약을 기반으로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소수의 권력과 부를 다수에게 나누어줄 것.' 돈이 많은 사람한테 세금을 걷어 의료보험이나 무상교육, 최저임금 인상에 쓰자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이들의 주장은 밀레니얼 세대를 중심으로 호응을 얻고 있다. 부모 세대보다 못 살고, 다음 세대만큼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없다고 보는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 출생이다. 지나치게 높은 교육 수준에 비해 불안정한 고용 환경이 시달리는 사람들, 주류 사회에서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고 겉도는 사람들이 신좌파 물결에 합류하고 있다.

이런 현상의 배경에는 시대적 맥락이 있다. 밀레니얼 세대는 9·11사태 이후 팽배해진 호전적 애국주의와 반이민적 정서에 신물이 났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빈익빈 부익부를 보고 자랐다. 이어진 총기 폭력과 기후 위기, 펜데믹 등 불안한 시대를 거쳤다. 자기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줘야 할 민주당은 기득권과 밀착해 제 기능을 못 하는 모습으로 비쳤다.

물론 신좌파의 미래가 마냥 낙관적인 것은 아니다. 클린턴이 '대침체가 낳은… 부모 집 지하실에 얹혀사는 이들'이라고 평가할 정도로 민주당 내 고위 관계자들의 반응은 시큰둥한 상태다. 권력을 잡았을 때 과연 통치할 능력이 있는지, 지나치게 선거 의존적인 공약을 남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등의 비판도 여전히 해결해야 할 숙제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