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K2 전차가 남한강 일대에서 도하훈련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육군 K2 전차가 남한강 일대에서 도하훈련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군이 5년간 2708억원을 투입해 사들인 방탄복과 방탄헬멧의 성능이 장병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다. 해군·해병대에 보급한 방탄복은 바닷물 방수 기능이 없었고, 육군 방탄헬멧은 성능시험 결과 보고서가 허위로 작성됐다.

감사원이 8일 공개한 ‘방탄물품 획득사업 추진실태’ 감사보고서를 보면 감사원은 육군 특수전사령부에 지난해 보급된 경량방탄헬멧의 충격 흡수력이 군 요구성능에 미달한다는 사실을 미국의 방탄성능 시험기관인 NTS에 의뢰해 측정한 결과 확인했다.

충격흡수력은 폭발 등으로 외부 충격 시 물리적 손상 없이 두부를 보호하는 성능을 뜻한다.감사원은 “육군이 요구성능이 검증되지 않은 방탄헬멧을 보급해 이를 착용한 장병들의 안전을 담보하지 못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결과가 나온 건 군이 헬멧 도입 과정에서 방탄성능시험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납품업체는 “성능시험을 하려면 헬멧에 부착된 벨크로(일명 찍찍이)를 제거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하지만 육군 군수사령부 관계자 A는 이를 묵살하고 벨크로를 그대로 둔 채 NTS에 시험을 의뢰했다. NTS는 벨크로가 부착돼있다는 이유로 충격흡수력 중 함몰깊이 항목을 측정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A는 “방탄성능은 전 항목이 요구성능을 충족한다”며 함몰깊이의 경우 구매 전 측정된 시제품의 측정값을 기재하는 등 품질검사 결과서를 허위로 작성해 보고했다.

육군이 이 같은 경량방탄헬멧 43억원어치를 구매하면서 방위사업청에 ‘선납품·후검사’를 요청했고, 방사청이 이를 승인한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육군은 국가재난이나 해외파병 지원 등 긴급 소요 요건에 해당되지 않는데도 예산 불용 방지를 이유로 이를 요청했다.

감사원은 품질검사 결과서를 허위로 작성한 A에 징계처분(정직)을 내리고, 예산 불용 방지를 위해 선납품·후검사를 추진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를 촉구하라고 육군에 요구했다.

해군과 해병대에 지급된 부력방탄복이 해상 및 상륙작전에 필요한 바닷물 방수 기능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는 사실도 새롭게 밝혀졌다. 방탄복은 해수에 3시간 노출되면 관통확률이 70%까지 증가하기 때문에 해수 방수 기능이 필수적이다.
한미 해군·해병대 장병이 지난 3월 경북 포항에서 합동훈련을 실시하는 모습. 연합뉴스
한미 해군·해병대 장병이 지난 3월 경북 포항에서 합동훈련을 실시하는 모습. 연합뉴스
하지만 감사원 점검 결과 방탄복의 해수 방수 기능은 대체로 부족한 것으로 확인됐다. 군이 방탄복 구매요구서를 작성하면서 해상작전 환경 등을 고려한 해수 방수 기준을 마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해군의 부력방탄복은 2011년 국방규격 개정으로 파편탄 방호성능 기준이 470㎧에서 560㎧ 이상으로 상향됐음에도 과거 기준을 현재까지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 결과 파편탄 방호성능은 개정된 기준을 적용한 방탄복 대비 30% 낮은 것으로 측정됐다.

국방부 역시 방탄물자를 관리하면서 일반물자를 대상으로 하는 조달청 내용연수(9~15년)를 그대로 적용하면서 방탄성능 유지 여부를 점검하지 않았다. 일부 방탄복은 보급된 지 20년이 경과하는 등 방탄성능이 의심되는 물자가 여전히 활용되고 있는 사례도 다수 발견됐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