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아웃' 빠진 다이버와 그를 살린 다이버의 도전과 사랑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가장 깊은 호흡>
마지막이 될 지 모를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해수면 아래로 머리를 처박고 몸은 수직으로 기울인다. 가장 깊은 바다에 도달한 인간이 되기 위해, 다이빙 선수들은 삶과 죽음을 드나든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가장 깊은 호흡>은 산소통 없이 맨몸으로 잠수하는 프리 다이버들의 이야기다. 세계적인 프리 다이빙 선수인 알레시아 체키니가 주인공이다. 온갖 한계와 싸우며 피 땀 눈물로 써내려갈 영웅담을 예측했다면 절반은 틀렸다.
첫 장면은 2017년 바하마의 국제 대회다. 불같은 성미의 알레시아는 세계 기록을 경신하려고 몇번이고 바다 밑으로 향한다. 수면에 도달하기 직전, 의식을 잃고 ‘블랙아웃’에 빠진 알레시아. 멍하니 부릅뜬 그녀의 두 눈은 관객을 긴장으로 몰아넣는다.
그런 그녀의 고개를 잡고 숨을 불어넣는 사람이 있다. 다이빙 선수의 안전을 물 안에서 책임지는 세이프티(안전 담당) 다이버, 스티븐 키넌이다. 깊은 바다의 암흑을 두려워하던 알레시아는 그의 도움 속에 새로이 도전에 임한다.
‘운명적 만남’의 기로는 분명하다. 성공이냐 실패냐. 나아가 삶이냐 죽음이냐. 다큐멘터리는 이 극적 질문을 끝까지 가져가는 전략을 취한다. 인터뷰는 중후반까지도 주변인으로 제한된다. 이들의 말과 표정에서도 희비를 가리긴 어렵다. 계산적으로 배치된 정보들 속에서 관객은 끝까지 결말을 지켜보게 된다.
두 사람의 삶은 달랐다. 이탈리아에서 자란 알레시아는 어린 시절부터 프리 다이빙 선수가 꿈이었고, 18세 때 메달을 땄다. 스티븐은 아프리카 고릴라를 보겠다며 고국 아일랜드를 떠난 방랑자였다. 이집트 다하브에서 다이빙 코치로서 삶의 의미를 찾은 것은 30대 중반이었다.
2017년 대회에서 첫 호흡을 맞춘 둘은 신기록의 짜릿한 순간을 함께 한다. 키넌은 알레시아를 다합의 ‘블루홀’로 초청한다. 숱한 다이버들이 생명을 바친 수중 동굴. 이 위험한 여정을 준비하며 둘의 관계는 동료 이상의 것이 된다.
한계에 도전하는 초인의 이야기에 로맨스가 끼어들어도 괜찮을까. 로라 맥건 감독은 감상주의가 익스트림 스포츠의 긴박감을 무너뜨릴까봐 염려한 듯 하다. 이들의 사적인 순간들을 굳이 구구절절 묘사하지 않는다. 다합에서의 짧은 나날을 로맨틱하게 포장했다면, 마지막의 순수한 감동은 반감됐을 것이다.
스포츠 다큐에서 우리가 흔히 기대하는 ‘인간 대 인간’의 드라마는 얕게 느껴진다. 둘의 동료애가 어떤 것이었는지는 수면 아래 모호하게 남겨져있다. 홀로 수심과 싸우는 프리 다이버들에게서 구질구질한 인간사를 캐내기란 어려울지 모른다. 선수의 욕망과 추락, 떠들썩한 분쟁과 경쟁, 가려진 스태프나 주변인의 페이소스…. 이런 것들은 인간 사이 ‘갈등’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알레시아 체키니는 여러 안티를 보유할 정도로 개성 강한 선수였지만, 다큐는 이런 흥미로운 면모들을 전면에 다루지 않는다. 대신 감각적인 것들이 빈 틈을 채운다. 아름답고 아찔한 바다 풍경, 긴장 넘치는 대회 현장이 있다.
‘가장 깊은 호흡’의 의미는 마지막에야 드러나며, 그 극적 효과는 의외로 크다. 2023년 선댄스 영화제 소개작인 <가장 깊은 호흡>을 넷플릭스가 점찍은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성난 사람들> 등 미국 인디 영화와 시리즈를 이끄는 A24의 작품이다.
김유미 객원기자 warmfront7@naver.com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가장 깊은 호흡>은 산소통 없이 맨몸으로 잠수하는 프리 다이버들의 이야기다. 세계적인 프리 다이빙 선수인 알레시아 체키니가 주인공이다. 온갖 한계와 싸우며 피 땀 눈물로 써내려갈 영웅담을 예측했다면 절반은 틀렸다.
첫 장면은 2017년 바하마의 국제 대회다. 불같은 성미의 알레시아는 세계 기록을 경신하려고 몇번이고 바다 밑으로 향한다. 수면에 도달하기 직전, 의식을 잃고 ‘블랙아웃’에 빠진 알레시아. 멍하니 부릅뜬 그녀의 두 눈은 관객을 긴장으로 몰아넣는다.
그런 그녀의 고개를 잡고 숨을 불어넣는 사람이 있다. 다이빙 선수의 안전을 물 안에서 책임지는 세이프티(안전 담당) 다이버, 스티븐 키넌이다. 깊은 바다의 암흑을 두려워하던 알레시아는 그의 도움 속에 새로이 도전에 임한다.
‘운명적 만남’의 기로는 분명하다. 성공이냐 실패냐. 나아가 삶이냐 죽음이냐. 다큐멘터리는 이 극적 질문을 끝까지 가져가는 전략을 취한다. 인터뷰는 중후반까지도 주변인으로 제한된다. 이들의 말과 표정에서도 희비를 가리긴 어렵다. 계산적으로 배치된 정보들 속에서 관객은 끝까지 결말을 지켜보게 된다.
두 사람의 삶은 달랐다. 이탈리아에서 자란 알레시아는 어린 시절부터 프리 다이빙 선수가 꿈이었고, 18세 때 메달을 땄다. 스티븐은 아프리카 고릴라를 보겠다며 고국 아일랜드를 떠난 방랑자였다. 이집트 다하브에서 다이빙 코치로서 삶의 의미를 찾은 것은 30대 중반이었다.
2017년 대회에서 첫 호흡을 맞춘 둘은 신기록의 짜릿한 순간을 함께 한다. 키넌은 알레시아를 다합의 ‘블루홀’로 초청한다. 숱한 다이버들이 생명을 바친 수중 동굴. 이 위험한 여정을 준비하며 둘의 관계는 동료 이상의 것이 된다.
한계에 도전하는 초인의 이야기에 로맨스가 끼어들어도 괜찮을까. 로라 맥건 감독은 감상주의가 익스트림 스포츠의 긴박감을 무너뜨릴까봐 염려한 듯 하다. 이들의 사적인 순간들을 굳이 구구절절 묘사하지 않는다. 다합에서의 짧은 나날을 로맨틱하게 포장했다면, 마지막의 순수한 감동은 반감됐을 것이다.
스포츠 다큐에서 우리가 흔히 기대하는 ‘인간 대 인간’의 드라마는 얕게 느껴진다. 둘의 동료애가 어떤 것이었는지는 수면 아래 모호하게 남겨져있다. 홀로 수심과 싸우는 프리 다이버들에게서 구질구질한 인간사를 캐내기란 어려울지 모른다. 선수의 욕망과 추락, 떠들썩한 분쟁과 경쟁, 가려진 스태프나 주변인의 페이소스…. 이런 것들은 인간 사이 ‘갈등’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알레시아 체키니는 여러 안티를 보유할 정도로 개성 강한 선수였지만, 다큐는 이런 흥미로운 면모들을 전면에 다루지 않는다. 대신 감각적인 것들이 빈 틈을 채운다. 아름답고 아찔한 바다 풍경, 긴장 넘치는 대회 현장이 있다.
‘가장 깊은 호흡’의 의미는 마지막에야 드러나며, 그 극적 효과는 의외로 크다. 2023년 선댄스 영화제 소개작인 <가장 깊은 호흡>을 넷플릭스가 점찍은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성난 사람들> 등 미국 인디 영화와 시리즈를 이끄는 A24의 작품이다.
김유미 객원기자 warmfront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