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개방형 혁신과 신약 개발
세계적으로 유명한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구글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차고에서 시작해 혁신을 거듭하며 지금의 기업을 이뤘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규범에 얽매이기보다 낡은 차고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마음껏 시도하고, 유연성을 바탕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는 ‘차고(garage) 창업 문화’는 정보기술(IT) 분야에서 혁신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IT산업 특유의 창업문화와는 다르지만 제약바이오 역시 혁신과 유연함이 성공의 DNA라는 점은 같다. 제약바이오산업의 대표적 혁신은 대기업과 바이오벤처, 병원, 대학, 연구소들이 경계를 허물고 함께 협력하는 오픈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오픈이노베이션은 외부 기관이나 기업의 기술과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함께 해답을 찾아가는 것을 뜻한다.

우리 제약바이오기업 대표들과 함께 최근 미국 보스턴 바이오클러스터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이곳에는 글로벌 빅파마, 1000여 개의 바이오 벤처, 하버드대 매사추세츠공대(MIT)와 같은 명문 대학, 다나파버와 코흐를 비롯한 유명 제약바이오 연구소, 종합병원 등이 밀집해 있다.

그 중심에 있는 보스턴 켄달스퀘어는 ‘지구상에서 가장 혁신적인 1스퀘어마일(2.9㎢)’로 불린다. ‘전에 없던’ 신약 개발에 도전하는 바이오 벤처들이 쏟아져 나오고, 지난해에만 1000억달러(약 129조원) 규모의 벤처캐피털(VC) 투자가 이뤄졌다. 보스턴의 대표적 공유오피스인 케임브리지이노베이션센터(CIC) 내 카페는 물론 인근 호프집, 음식점에서 연구자와 전문가들이 자유롭게 토론하며 혁신을 고민하는 모습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국내에서도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해 글로벌 블록버스터 개발의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유한양행은 2015년 국내 신약 개발 전문기업 오스코텍의 미국 자회사인 제노스코에서 폐암 신약 후보물질을 들여왔다. 이후 연구를 진행해 그 결과를 다시 미국 대기업 얀센에 기술이전했다. 바이오텍, 국내 제약기업과 빅파마의 연계로 역량을 결집해 글로벌 혁신 신약으로서 완성도를 높여나간 사례다. 협회와 협력해 국내 18개 제약바이오기업이 보스턴 CIC에 입주, 미래를 설계해 가고 있는 점도 고무적이다.

기업 혼자의 힘으로 글로벌 신약 개발에 도전하던 방식은 분명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성공 경험이 적고, 규모도 작은 국내 기업에는 더 그렇다. 오픈이노베이션은 현실적인 생존 방식이자 지속 가능한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전략이다. 협회가 기업과 대학의 신약 개발 기술을 총망라해 공유하는 ‘K-SPACE’ 플랫폼을 구축하고, 연합학습에 기반한 AI 신약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도 이 같은 판단에서다. 협력하지 않고, 개방하지 않는 혁신에 성공의 미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