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 신입, 팀장의 피말리는 괴롭힘에 극단 선택했는데… [곽용희의 인사노무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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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때부터 두각 나타낸 우수 신입
극단적 성향 팀장의 공개질책·언어폭력에
입사 1년 만에 20층 건물서 투신
보험사 "고의 자해, 보험금 없다"
법원 "사망 당시 온전한 정신 아냐
예외의 예외 인정해야" 유족 손 들어
극단적 성향 팀장의 공개질책·언어폭력에
입사 1년 만에 20층 건물서 투신
보험사 "고의 자해, 보험금 없다"
법원 "사망 당시 온전한 정신 아냐
예외의 예외 인정해야" 유족 손 들어
신입 직원이 입사 1년만에 직장 내 괴롭힘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했다면, 회사와 단체보험계약을 맺은 보험사가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고의 자해 사고엔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약관 조항이 있어도, 괴롭힘 탓에 정상적인 의사 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사고가 벌어졌다면 예외로 봐야 한다는 판단이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단독 안희경 판사는 사망한 A씨의 유족들이 C보험사를 상대로 청구한 보험금 청구 소송에서 이 같이 판단하고 유족 측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이게 불행의 시작이었다. 직속 선임이 육아휴직을 쓰면서 A는 곧바로 대리급 이상이 수행 가능한 경쟁사 모니터링, 고객 클레임 관리 등 신입이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이도 업무를 맡았다.
결정적인 것은 팀장의 부당한 업무관리 방식이었다. 판결문에 따르면 CRM 팀장은 극단적인 페미니즘적 성향을 가진 사람으로, 평소 A에게 히스테리적 성향에 기초한 지속적인 업무압박, 남녀 직원에 대한 차별, 공개적인 잦은 질책, 업무 미숙을 부모님과 연결 짓는 언어 폭력을 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입사 초기 밝고 적극적인 성격이었던 A는 자존감이 떨어져 갔고, 불면증, 중증 우울증세를 보이다 9월엔 심리적 불안을 보이며 사무실에서 우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견디다 못한 A는 퇴사를 결심했지만 회사는 "3개월 정도 병가를 쓰고 다음 해 인사발령 시 타부서로 발령 내주겠다"고 제안했고, A는 휴직을 결정했다. 하지만 회사가 3개월 휴직을 1개월로 변경하면서, 회사에 복귀할 될 경우 이듬해 인사발령 전까지 자신을 괴롭혔던 팀장과 재회할 상황에 놓이게 됐다.
복귀를 앞두고 우울증세가 심해진 A는 11월 어느 날, "사우나에서 자고 오겠다"고 집을 나간 다음 한 건물의 20층에서 유서를 남기고 투신했다.
B사와 C보험사가 맺은 계약엔 '1급 대리 이하 남자'가 상해로 사망한 경우 '상해사망 보험금' 7000만원을 지급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다만 약관엔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때에는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고 규정돼 있었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생명 보험은 자살에도 사망 보험금을 지급한다. 반면 이 사건처럼 '상해 보험'의 경우엔 일반 상해가 인정돼야 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데, 기본적으로 보험 수익자의 고의·중과실로 사고가 발생하면 보험금을 지급할 책임이 없다. 이 때문에 자살은 원칙적으로는 '보험금 부지급' 사유다. 다만 예외적으로 법원은 ‘자유로운 의사결정이 불가능할 경우’, 즉 스스로를 제어할 수 없는 정신상태에 있었다는 점을 입증하면 지급이 가능하다고 본다.
C보험사는 A의 사망이 '고의 자해'이므로, 보험금 지급 '면책 사유'라고 주장했다. 또 A가 사망 장소를 물색하고 유서를 작성한 것으로 볼 때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있었던' 상태라고도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유족 측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젊고 건강하고 유능했던 A가 취업 후 과중한 업무에 적응하기도 전에 팀장의 직장내 괴롭힘으로 불과 수개월 만에 중증도의 우울증 등이 발병해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투신했다"며 "A가 우발적으로 집을 나간 정황상,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 잠시 배회하다가 투신한 것만으로 장소를 물색하고 자살을 실행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유서 작성일자도 사망 일주일 전인 점을 보면, A가 일주일 뒤의 사고를 계획하고 유서를 작성했다고 볼 수 없다"며 "오히려 우울장애의 주요 증상인 ‘반복적인 죽음에 대한 생각’이 발현된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를 바탕으로 법원은 A의 사망이 "보험계약에서 정한 일반 상해사망에 해당하며, 동시에 보험계약에서 정한 보험금 지급 면책의 예외 사유"라며 보험사가 유족들에게 보험금 7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정상태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직장내괴롭힘 등으로 우울증이 발현돼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살에 이른 경우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이 연이어 나오고 있다"며 "정신으로 피폐해진 근로자들은 구호 요청 조차 제대로 하기 어려운만큼, 인사담당자들 입장에선 선제적으로 고충처리제도를 알리고, 힘든 상황에 처한 직원에게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해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실이 2019년부터 2021년까지 3년간 산업재해로 인정된 업무상 질병 판정서 161건을 분석한 결과, 근속연수가 1년 미만인 경우가 18%, 5년 이하인 경우가 50%로 나타나 근속 기간이 짧은 근로자일수록 자살 산재에 취약한 것으로 조사됐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단독 안희경 판사는 사망한 A씨의 유족들이 C보험사를 상대로 청구한 보험금 청구 소송에서 이 같이 판단하고 유족 측의 손을 들어줬다.
팀장의 피말리는 괴롭힘…최우수 신입, 입사 1년만에 투신
A는 2018년 8월 경 B사에 신입으로 입사했다. 이 회사는 신입 사원 교육 후 6개월의 지사 파견과정을 거쳐 현업에 배치하는 관행이 있었지만, A가 교육 과정서 리더를 맡는 등 뛰어난 능력을 보이자 지사 파견 과정 없이 2019년 2월경부터 본사 CRM(고객관리)팀에 배치했다.하지만 이게 불행의 시작이었다. 직속 선임이 육아휴직을 쓰면서 A는 곧바로 대리급 이상이 수행 가능한 경쟁사 모니터링, 고객 클레임 관리 등 신입이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이도 업무를 맡았다.
결정적인 것은 팀장의 부당한 업무관리 방식이었다. 판결문에 따르면 CRM 팀장은 극단적인 페미니즘적 성향을 가진 사람으로, 평소 A에게 히스테리적 성향에 기초한 지속적인 업무압박, 남녀 직원에 대한 차별, 공개적인 잦은 질책, 업무 미숙을 부모님과 연결 짓는 언어 폭력을 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입사 초기 밝고 적극적인 성격이었던 A는 자존감이 떨어져 갔고, 불면증, 중증 우울증세를 보이다 9월엔 심리적 불안을 보이며 사무실에서 우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견디다 못한 A는 퇴사를 결심했지만 회사는 "3개월 정도 병가를 쓰고 다음 해 인사발령 시 타부서로 발령 내주겠다"고 제안했고, A는 휴직을 결정했다. 하지만 회사가 3개월 휴직을 1개월로 변경하면서, 회사에 복귀할 될 경우 이듬해 인사발령 전까지 자신을 괴롭혔던 팀장과 재회할 상황에 놓이게 됐다.
복귀를 앞두고 우울증세가 심해진 A는 11월 어느 날, "사우나에서 자고 오겠다"고 집을 나간 다음 한 건물의 20층에서 유서를 남기고 투신했다.
보험사 "고의 자해, 보험금 지급 안돼"
A의 유족은 B사와 '단체안심 상해보험 계약'을 맺은 C보험사에 보험금을 지급하라고 청구했다.B사와 C보험사가 맺은 계약엔 '1급 대리 이하 남자'가 상해로 사망한 경우 '상해사망 보험금' 7000만원을 지급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다만 약관엔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때에는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고 규정돼 있었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생명 보험은 자살에도 사망 보험금을 지급한다. 반면 이 사건처럼 '상해 보험'의 경우엔 일반 상해가 인정돼야 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데, 기본적으로 보험 수익자의 고의·중과실로 사고가 발생하면 보험금을 지급할 책임이 없다. 이 때문에 자살은 원칙적으로는 '보험금 부지급' 사유다. 다만 예외적으로 법원은 ‘자유로운 의사결정이 불가능할 경우’, 즉 스스로를 제어할 수 없는 정신상태에 있었다는 점을 입증하면 지급이 가능하다고 본다.
C보험사는 A의 사망이 '고의 자해'이므로, 보험금 지급 '면책 사유'라고 주장했다. 또 A가 사망 장소를 물색하고 유서를 작성한 것으로 볼 때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있었던' 상태라고도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유족 측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젊고 건강하고 유능했던 A가 취업 후 과중한 업무에 적응하기도 전에 팀장의 직장내 괴롭힘으로 불과 수개월 만에 중증도의 우울증 등이 발병해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투신했다"며 "A가 우발적으로 집을 나간 정황상,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 잠시 배회하다가 투신한 것만으로 장소를 물색하고 자살을 실행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유서 작성일자도 사망 일주일 전인 점을 보면, A가 일주일 뒤의 사고를 계획하고 유서를 작성했다고 볼 수 없다"며 "오히려 우울장애의 주요 증상인 ‘반복적인 죽음에 대한 생각’이 발현된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를 바탕으로 법원은 A의 사망이 "보험계약에서 정한 일반 상해사망에 해당하며, 동시에 보험계약에서 정한 보험금 지급 면책의 예외 사유"라며 보험사가 유족들에게 보험금 7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정상태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직장내괴롭힘 등으로 우울증이 발현돼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살에 이른 경우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이 연이어 나오고 있다"며 "정신으로 피폐해진 근로자들은 구호 요청 조차 제대로 하기 어려운만큼, 인사담당자들 입장에선 선제적으로 고충처리제도를 알리고, 힘든 상황에 처한 직원에게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해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실이 2019년부터 2021년까지 3년간 산업재해로 인정된 업무상 질병 판정서 161건을 분석한 결과, 근속연수가 1년 미만인 경우가 18%, 5년 이하인 경우가 50%로 나타나 근속 기간이 짧은 근로자일수록 자살 산재에 취약한 것으로 조사됐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