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도 배터리 소재…포스코만큼 달릴까? [안재광의 대기만성'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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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아연 어떤 회산지 알아보기 이전에 우선 이 회사가 배터리 어떤 사업을 하겠다는 것인지부터 살펴 보겠습니다. 우리가 궁금한 게 이것 이니까요. 크게 세 가지가 있어요. 우선 동박인데요. 이미 울산에 공장 다 지어놨고, 동박 구매할 기업들이 시험해 보고 있는 단계입니다. 올 10월 정도면 양산에 돌입할 것이라고 해요. 매출이 당장 올해 말부터 나온다는 얘기죠. 동박은 배터리의 음극활 물질을 감싸는 역할을 해요. 배터리 소재 하면 흔히 양극재, 음극재, 분리막, 전해액 네 가지를 꼽잖아요. 여기서 음극재는 다시 음극활 물질과 음극기재로 나뉘게 됩니다. 음극활 물질은 흑연을 주된 재료로 주로 쓰는데, 음극 기재는 고려아연이 하겠다는 동박을 쓰죠.
동박은 어떻게 만들까요. 동이 구리잖아요. 구리를 정말정말 얇고 넓게 펴서 만들어요. 집에서 쓰는 쿠킹호일 떠올리면 이해가 편합니다. 물론 쿠킹호일보다 훨씬 얇고 넓습니다. 동박 시장은 전기차 배터리 시장 커지면 같이 크는데요. 세계적으로 시장 규모가 2020년 13.5만톤 밖에 안 됐는데, 올해는 48만톤을 넘길 전망이고. 2025년이면 75만톤에 육박할 것이란 예측이 나옵니다. 동박 시장은 SK 계열의 SK넥실리스가 점유율 22%로 1위고, 중국의 왓슨, 대만의 창춘, 그리고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순입니다. 롯데도 배터리 소재 후발주자인데 일진그룹에서 동박 사업을 인수해서 하고 있고, 고려아연은 직접 공장을 세워서 하고 있고. 이런 차이가 있습니다.
고려아연 동박 공장은 1년에 1만3000톤 정도 생산할수 있다고 해요. 이건 시작에 불과하고요, 5년 안에 10만톤으로 늘리겠다고 합니다. 10만톤 감이 잘 안 오시죠. 1위 SK넥실리스가 작년에 5만톤쯤 생산했거든요. 10만톤 진짜 하면 SK넥실리스 잡는거죠. 물론 다른 회사들도 공장을 팍팍 늘리고 있어서 실제로 1위는 힘들고요. 그래도 세계적으로 봐도 꽤 규모있게 하는 회사가 됩니다. 두 번째로 하려는 게 전구체. 전구체 공장도 역시 울산에 세워지게 되는데요. 동박과 다르게 이건 혼자 하는 게 아니라 LG화학과 함께 합니다. 고려아연 자회사 중에 켐코란 회사가 있는데, 켐코와 LG화학이 지분 51대 49 비율로 출자해서 전구체 공장을 짓고 있어요. 이 공장이 내년 5~6월부터 가동에 들어간다고 해요. 전구체는 아까 얘기한 배터리 4대 소재 가운데 양극재의 재료가 됩니다. 배터리 주가도 양극재 회사를 중심으로 급등했죠. 에코프로비엠, 포스코퓨처엠, 엘앤에프가 다 양극재 회사에요. 그만큼 중요하다고, 또 비싸다는 의미입니다. 이 전구체가 지금은 대부분 중국에서 오고 있어요. 특히 한국이 주력으로 하는 니켈, 코발트, 망간. NCM이라고 하죠. 혹은 니켈, 코발트, 알루미늄. NCA. 이런 화합물들은 90% 이상 중국산이에요. LG화학도 양극재 사업을 하는데 중국에 전구체를 너무 의존하고 있어서 공장을 직접 짓기로 했어요. 그리고 그 사업 파트너로 고려아연을 선택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폐배터리 사업인데요. 전기차 폐차하면 가장 비싼 게 당연히 배터리죠. 이거 어떻게든 다시 써야 할텐데요. 고려아연도 폐배터리 떼어내서 원료들 뽑아내겠다, 이런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이 사업 하기 위해서 미국의 폐 스마트폰, PC 수거 업체 이그니오홀딩스를 작년에 인수했어요. 고려아연은 이그니오를 통해서 미국에서 전기차 폐배터리까지 확보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어요.
이렇게 들으면, 계획은 그럴듯 하네. 그런데, 고려아연이 배터리 소재 사업을 정말 잘 할수 있겠냐 하는 의문이 당연히 듭니다. 포스코, 에코프로 같은 쟁쟁한 회사들이 이미 버티고 있고, 또 중국 회사들 실력도 만만치 않거든요. 그런데, 고려아연의 기존 사업을 보면 '해볼만 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기도 해요. 고려아연 사업을 한번 볼까요.
회사 이름 처럼 아연을 주된 사업으로 합니다. 아연은 철이 녹슬지 말라고 표면에 도금할 때 주로 써요. 건설용으로 쓰이는 철강 제품, 아니면 자동차 껍데기 같은거 만들 때 아연이 많이 들어 갑니다. 고려아연은 아연 시장 글로벌 1등 회삽니다. 철 분야에 포스코가 있다면, 철 이외의 비철금속 분야에선 고려아연이 있다고 할 정도입니다.
실적을 보면 생각보다 어마어마 합니다. 작년에 매출 약 11조원, 영업이익 9000억원을 넘겼어요. 여러분이 그렇게 좋아하시는 에코프로가 작년에 매출 얼마 했나 봤더니 매출이 5조6000억원. 고려아연이 두 배 많죠. 영업이익도 50%나 더 많았어요. 아, 물론 고려아연은 에코프로 처럼 매년 두 세배씩 매출, 이익이 늘고 그러진 않습니다. 그냥 작년만 딱 놓고 봤을 때 에코프로보다 큰 회사다, 이 정도만 참고해 주시면 될 것 같고요.
그리고 이 회사 대단한 게 1974년 설립됐으니까 꼭 50년이 됐거든요. 근데 정말 아연 제련 분야 한 길만 걸었어요. 그렇게 하면서도 착실하게 매출, 이익을 정말 꾸준하게 늘린게 인상적이네요. 근데, 이런 '범생이' 같은 회사가 배터리 좀 뜬다고 트렌디하게 배터리 하냐. 혹시 늦바람 들었나? 그건 아니고요. 이 회사가 하는 사업과 배터리 소재가 엄청나게 가깝습니다. 아연을 어떻게 만드냐 하면요. 아연이 잔뜩 들어있는 돌덩이를 잘게 부숴 가루로 만든 것을 정광이라고 하는데요. 이 정광을 제련해서 최종적으로 금괴 처럼 생긴, 아연괴로 만들어 팔아요. 그런데, 정광에 아연만 있느냐. 다른 물질도 잔뜩 함유되어 있아요. 예를 들면 연, 납이라고 하죠. 납축전지에 들어가는 그 납이요. 납도 많이 나오고, 또 금, 은, 동도 잔뜩 섞여 있습니다. 잠깐! 동도 나온다고 했어요. 아까 배터리 사업 첫번째가 뭐였나요. 동박이라고 했잖아요. 동박의 재료를 고려아연은 이미 만들고 있었던 겁니다. 그럼 다른 동박 회사들이 이 동을 사서 동박 만들 때, 고려아연은 그냥 있는거 쓰면 되는거죠. 우선 한번 먹고 들어가는 거네요.
근데, 동박을 만드는 과정도 아연 제련할 때와 비슷해요. 동박은 구리를 황산에 녹여서 전기분해 한 뒤에 회전하는 티타늄 드럼 표면에 얇게 코팅하는 과정을 거치는데요. 이 과정이 아연 제련 공정과 비슷하다고 하죠. 아연 용액을 전기분해 하면 알루미늄 음극판에 아연이 죽 달라 붙게 되는데, 이 원리를 동박에 적용하 수 있다는 얘깁니다.
동박은 그렇고. 양극재 원료인 전구체는 어떨까요. 아까 LG화학과 양극재 전 단계인 전구체 공장을 짓기로 했다고 했는데요. 이 전구체에 들어가는 것 중 하나가 황산니켈입니다. 그리고 이 황산니켈을 LG화학과 합작사를 세운다는 고려아연의 자회사 켐코가 생산하고 있어요. 켐코는 국내 유일의 황산니켈 생산 기업인데, 연간 생산 가능한 규모가 4만톤쯤 된다고 해요. 여기 설비를 더 늘려서 10만톤 까지는 확장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고려아연은 원래 생산했던 황산니켈의 판로를 전구체 사업으로 확보하게 된 측면도 있어요. 황산니켈은 배터리 소재 사업을 일찍부터 시작한 포스코 조차 이제서야 공장을 짓고 있어요. 황산 니켈 분야에서 만큼은 고려아연이 먼저 한겁니다.
마지막으로, 폐배터리 사업도 연관성이 크죠. 아까 고려아연이 인수했다는 미국 회사 이그니오는 폐 스마트폰 회수는 잘 하지만, 그 부품들을 녹여서 금, 은, 동 같은 금속을 뽑아내는 노하우는 갖고 있지 못해요. 반면에 고려아연은 이 분야에선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이 있잖아요. 고려아연이 걱정하는 것은 폐 배터리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 하는 것이지, 뽑아내는 건 전혀 걱정이 없어요. 배터리만 있으면 얼마든 비금속 분야 메탈은 확보하는 게 가능합니다.
아, 또 하나가 있네요. 이 모든걸 한국과 미국에서 한다는 것. 공장이 한국과 미국에 있으면 엄청 좋은게 있죠. 바로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세액공제 혜택을 받게 됩니다. 전기차 한 대당 세액공제액이 7500달러, 1000만원에 달해요. 동박, 전구체 같은 것은 이 법에 따르면 광물로 들어가는데요. 미국이나 한국에서 일정 규모 이상 생산 시설을 갖고 있어야 7500달러 받을수 있습니다. 현대차, 기아, 테슬라, GM, 포드 경쟁이 엄청 치열한데, 이 보조금 적용 안 되면 7500달러 날아가는 셈이니까 당연히 한국, 미국 공장에서 생산한 배터리 소재 써야해요.
아, 이렇게 보면 고려아연이 배터리 사업 하는 게 맞는 것 같은데. 문제가 하나 있어요. 요즘 본업이 안 좋다는 거죠. 고려아연 매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아연과 연인데요. 절반도 넘어요. 이 사업이 거의 최악이에요. 특히 아연이 안 좋죠.
아연 팔아 돈 많이 남길려면 우선 국제 아연 시세가 높아야 하는데요. 근데 아연 가격이 엄청 떨어졌어요. 기준이되는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아연 가격이 톤당 한 때 4500달러 넘었는데, 지금은 거의 반토막 나서 2500달러 안팎 합니다. 아연을 중국에서 가장 많이 사가는데, 중국 경제가 생각보다 안 좋아서 아연 가격이 힘을 못 받고 있어요. 이 탓에 고려아연의 실적은 영업이익 기준 2021년 정점을 찍고 계속 내려가고 있습니다. 올해는 6월까지 누적으로 영업이익이 3100억원 안팎인데요. 이게 작년 같은기간에 비해 43% 급감한 겁니다. 그나마도 금, 은 같은 부산물 가격이 좋았어서 선방한 편이고요. 주력인 아연, 연은 당분간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 전망이죠. 아연, 연 사업에서 이익을 팍팍 내 줘야 배터리 소재 사업이 힘을 받을텐데, 이렇게 되면 고려아연도 배터리 분야 투자할 때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또 하나, 경영권리스크 입니다. 고려아연은 크게 보면 영풍그룹 소속이죠. 영풍그룹은 장 씨 일가와 최 씨 일가가 동업해서 세운 회사에요. LG가 구 씨, 허 씨 일가 동업으로 세운것 처럼요. LG는 후대에 허 씨 일가를 분사시켜 GS를 세웠는데, 영풍은 아직까진 동업 형태를 유지하고 있어요. 그런데, 여기도 후대로 가면서 조금 불안불안 해지고 있습니다. 최기호 창업주의 3세인 최윤범 회장이 올 초에 회장으로 취임한 뒤에 계열 분리 가능성이 계속 제기되고 있어요.
지분만 보면 장씨 일가 쪽이 훨씬 더 많은데, 이사회는 현재 최윤범 회장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장씨 쪽에서 맘에 안 들면 이사회를 뒤엎어야 하는데, 그럼 주주총회에서 표대결을 해야 하고. 좀 복잡해져요. 최윤범 회장이 지분이 뒤쳐지니까 회사가 보유하고 있던 자사주를 다른데 넘겼어요. 전구체 사업 같이 하기로 한 LG화학, 니켈 사업을 함께 추진중인 트라피구라, 그리고 수소 에너지 분야에서 협력하기로 한 한화 같은 회삽니다. 최윤범 회장 입장에선 자신을 지지해 줄 백기사를 확보하고, 자사주 팔아서 회사에 돈 들어 오니까 투자금도 확보하고, 피를 섞어 사업 파트너십도 공고히 하고 일석삼조 효과를 노린 것 같아요. 물론, 이해관계가 잘 맞아 떨어지려면 고려아연이 배터리 사업을 제대로 안착시켜서 백기사들 주가도 올려주고, 자신의 경영 능력을 입증하는 계기로도 삼아야 할겁니다.
고려아연 처럼 오래됐고, 지배구조도 복잡하고, 사업이 소비재가 아닌 B2B(기업간) 사업인 회사들은 대체로 굉장히 보수적인데요. 고려아연은 이유는 어찌 되었든 대단히 과감하게 배터리 사업에 투자해서 변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비철금속 회사들 주가가 요즘 그렇게까지 좋진 않는데, 고려아연은 실적 꺾이는 것 감안하면 대단히 선방하고 있고요. 물론, 배터리 사업이 점점 가시화 될 수록 주가나 실적에는 훨씬 더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 같죠.
고려아연이 부디 제 2의 포스코가 되어서 한국 배터리 산업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길 기원합니다. 아연 외길 50년 갔던 고려아연, 배터리로 새로운 50년 쓸 지 눈여겨 보겠어.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