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등 사회적 난제 푸는 데 수학자들이 앞장서야"
“수학자들은 사회적 영향을 주는 연구에 눈을 떠야 합니다. 순수 수학도 그러지 말란 법은 없어요.”

김민형 영국 에든버러대 국제수리과학연구소(ICMS) 소장(사진)은 9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김 교수는 대수기하학 난제를 위상수학으로 푸는 방법을 세계 최초로 제시한 석학이다. 한국계 과학자 중 처음으로 옥스퍼드대 수학과 교수를 지냈다. 한국에선 KAIST 부설 고등과학원 석학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수학 교양서 집필, 강연 등 수학 대중화에 앞장서 온 그는 올해부터 ‘인류를 위한 수학(Math for Humanity)’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팬데믹, 기후 변화, 에너지 등 세계가 직면한 난제를 수학으로 푸는 연구를 선별해 지원하는 사업이다. 2006년 필즈상 수상자 테렌스 타오 UCLA 교수, 2010년 수상자 응오바오쩌우 시카고대 교수 등 10명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김 교수는 “베트남 남부는 홍수와 가뭄, 폭염 등 기후 변화 문제가 심각한데 이런 문제 해결엔 유체역학 관련 수학자들이 도움을 줄 수 있다”며 “수학자들은 개방적 사고로 본인들이 기여할 수 있는 분야를 다양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의 업적은 양자장론과 응집물리 분야에서 많이 쓰인다. 작년 한국계 과학자 중 처음으로 필즈상을 받은 허준이 프린스턴대 교수가 대수기하학 문제를 조합론으로 푸는 데 주력한다면 김 교수는 정수론으로 푸는 데 집중하고 있다. 위상수학 방법론을 쓰는 건 동일하다. 김 교수는 “일과의 많은 부분을 이론물리학자들과 토론하는 데 쓴다”고 말했다. 양자장론은 IBM,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빅테크들이 개발 중인 양자컴퓨터의 원리다. 최근 세계적 이슈가 된 초전도체도 양자장론과 응집물리학을 기본으로 한다.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이 지난 1~3일 서울에서 연 ‘인공지능(AI)의 수학 이론’ 행사도 김 교수가 기획했다. 그는 “모두 AI를 쓸 줄은 알지만 작동 원리에 대해서는 이해가 굉장히 부족하다”며 “AI 원리를 탐구하는 수학자와 기술자들이 소통하는 자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인류를 위한 수학 프로젝트가 한국 중·고교생 ‘수포자’(수학 포기자)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수학이 산업 및 제품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알고 나면 수학에 대한 흥미를 돋울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다. 김 교수는 “수학은 인류 공통의 언어”라며 “수학이 자연과학과 공학, 나아가 사회 문제와 연결되는 지점은 한국에서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중1 때 건강 문제로 학교를 자퇴했다. 검정고시를 거쳐 고려대 철학과에 입학했다가 중퇴하고 서울대 수학과에 들어갔다. 수학과를 선택한 계기는 구체적이다. 그는 “현대사회는 정량적 학문 없이는 이해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어 “인류가 당면한 모든 문제는 지역과 국가 단위로는 풀 수 없다”며 “세계적 시각과 사고가 굉장히 중요해진 이 시대, 수학이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