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모비스의 숙원 사업 가운데 하나는 ‘홀로서기’다. 그룹사인 현대자동차와 기아에 대한 매출 의존도를 낮추고 판매처를 다변화해 글로벌 시장에서 자생력을 높이는 데 힘써왔다. 자동차 원재료인 강판부터 부품, 완성차까지 모두 생산하는 현대차그룹의 수직계열화 구조가 현대모비스에는 ‘양날의 검’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2017년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사태 당시 현대차와 기아의 중국 판매가 급감하자 현대모비스도 동반 부진에 빠졌던 게 뼈아픈 사례다.

○전기차 부품 경쟁력 ‘톱’

글로벌 명차가 먼저 찾는 모비스…"미래차 부품사 톱티어로 발돋움"
체질 개선은 느리지만 확실하게 이뤄지고 있다. 9일 현대모비스가 판매량 세계 2위 완성차업체인 폭스바겐에서 전기차 부품으로는 사상 최대 규모 수주에 성공한 것이 그 방증이다. 업계에서는 5조원대로 추정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메르세데스벤츠에 전기차 섀시 모듈을 납품한 데 이어 또 한 번 대규모 해외 수주를 따냈다.

이번에 현대모비스가 수주한 전기차 부품은 배터리시스템(BSA)이다. 배터리 성능을 측정하고 관리해주는 부품으로 전기차의 핵심으로 꼽힌다. 현대모비스는 하이브리드카와 순수전기차 등 친환경차 모두에 적용할 수 있는 BSA 생산 역량을 갖췄다. 미국 지프와 프랑스 푸조 등을 거느린 세계 4위 완성차업체 스텔란티스에도 배터리관리 시스템을 납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모비스의 홀로서기 노력은 전기차 시대를 맞아 결실을 보고 있다. 자동차 시장의 패러다임이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 재편되면서 부품산업의 구도도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 강자가 사라지고 전자·정보기술(IT) 업체가 자율주행차 부품 생산에 뛰어드는 가운데 현대모비스는 전기차 경쟁력으로 입지를 굳히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다. 2013년부터 충북 충주에 친환경차 부품 전용 공장을 가동하고 전동화 포트폴리오를 쌓아온 덕분이다.

현지화된 공격적인 마케팅도 큰 몫을 했다. 현대모비스는 몇 년 전부터 해외 영업 땐 회사 이름에서 ‘현대’를 빼고 모비스로만 활동하고 있다. 현대차와 현대모비스를 동일시한 해외 완성차업체들이 현대모비스에 부품 생산을 맡기는 것을 꺼렸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모비스 오리지널’을 외쳐온 현대모비스가 현대차·기아에 필요한 부품을 생산하는 회사에서 독립적인 글로벌 부품사로 거듭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체급도 달라졌다. 현대모비스는 글로벌 자동차 전문매체 오토모티브뉴스가 선정한 올해 100대 부품사 순위에서 6위를 차지했다. 배터리업체를 제외하면 5위로 2011년(10위) 이후 최고 순위에 올랐다. 최대 경쟁사인 일본 아이신도 처음으로 제쳤다.

○해외 현지화에도 속도

성과는 수치로 나타나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작년에만 현대차·기아를 제외한 해외 완성차업체를 대상으로 46억5200만달러(약 6조1170억원)어치의 계약을 따냈다. 1년 만에 두 배 가까이 늘었다. 해외 수주 실적으로 사상 최대였다. 현재 이 회사는 벤츠와 BMW, 제너럴모터스(GM), 스텔란티스, BYD 등에 다양한 부품을 공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목표인 53억5800만달러(약 7조500억원)도 초과 달성이 예상된다. 현대모비스 관계자는 “폭스바겐 외에도 BSA를 포함해 전동화 부품 수주를 지속적으로 추진 중”이라며 “유럽과 북미, 일본 등에서 광범위한 수주 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 생산 역량 또한 끌어올리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이번에 발표한 스페인 신규 공장 외에도 미국 앨라배마와 서배너, 인도네시아 등에 배터리시스템 공장을 짓고 있다. 정용진 신한투자증권 연구위원은 “해외 현지화는 비계열사 글로벌 수주 활동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 수주 품목인 BSA와 전기차 섀시, 중앙통합스위치(ICS), 조향 시스템 등에서 더 나아가 자율주행차, 커넥티비티 관련 부품도 적극 수주한다는 계획이다.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도 나온다. 올 상반기 기준 현대모비스의 매출에서 현대차와 기아가 차지하는 비중은 77%에 이른다. 현대모비스는 이 비중을 중장기적으로 60%대로 낮추겠다는 목표다.

빈난새/김일규/배성수 기자 bint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