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투자 42% 줄었는데…중기부 낙관하는 이유 [긱스플러스]
올해 상반기 국내 벤처 투자 42% 감소…펀드 조성 규모도 줄어
미국 등 해외 벤처 투자금도 급감…유니콘 증가 폭도 감소
중기부, "올해 전체 투자 금액은 장기 추세를 상회하는 수준 가능"
국내 벤처·스타트업 투자 감소세가 여전합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집계한 올 상반기 벤처 투자액이 1년 전보다 40% 이상 줄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여러 가지 근거로 국내 투자 감소를 무조건 부정적으로 볼 것은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이번에 정부가 국내 투자 상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정말 국내 스타트업 투자 환경이 알려진 것보다 암울한 것은 아닌지 살펴봤습니다.

길어지는 벤처·스타트업 투자 혹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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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기부는 올 상반기 벤처투자액은 4조4447억원이라고 10일 발표했다. 1년 전(7조6442억원)보다 41.9% 감소한 규모다. 1분기보다는 감소 폭이 줄었다. 올 1분기 벤처투자액은 전년 동기보다 60.3% 줄어든 8815억원을 기록했다. 올 상반기 투자 건 수는 2927건으로 전년(4191건)보다 30.2% 감소했다. 같은 기간 건당 투자액은 18억2000만원에서 15억2000만원으로 줄었다.

중기부는 이번 벤처 투자 동향을 발표하면서 이례적으로 투자 감소 이유를 자세히 설명했다. ‘감소는 했지만 그렇게 나쁜 상황은 아니다’라는 것이 골자다. 중기부는 “2023년 상반기 벤처 투자는 유동성 확대 등에 따라 이례적으로 실적이 급증했던 2021년~2022년 상반기보다는 비록 낮았으나 2019년~2020년 상반기 수준을 크게 상회했다."고 밝혔다.

투자 동향은 보통 1년 전과 비교하는데 작년과 재작년은 이례적으로 투자금이 급증해 단순 비교하는 것은 정확한 분석이 아니라는 해명이다. 중기부는 이번 동향을 발표하면서 올 상반기 투자액이 2019년과 2020년보다 각각 25%와 40% 증가했다고 강조했다. 그다음에 전년 동기보다 감소했다고 덧붙였다. 보기 드문 설명 방식이다.
중기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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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기부, "한국만 상황이 나쁜 건 아니다…회복 추세”

중기부는 이어서 "2008년부터 2022년까지 최근 15년간의 벤처 투자 추세를 함께 분석한 결과 2023년 상반기 실적은 장기 추세를 회복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2021~2022년의 경우 이례적으로 급증한 투자액이 비대면·바이오 등 관련 일부 분야에 통상적 수준 이상으로 집중되었으나 2023년 들어 업종별 투자 편중은 완화되었다. 이에 따라 2023년 전체 투자액도 장기 추세를 소폭 상회하는 수준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중기부는 2021~2022년 투자액의 통상적 수준 대비 증가분의 80% 이상이 일부 업종에 편중된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2021~2022년 투자액(14.4조원)은 통상적 수준(8.6조원)보다 5.9조원 늘었는데 그 중 81%인 4.8조원이 비대면·바이오 관련 업종에 투자였다고 설명했다.
중기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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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 투자 감소는 한국만의 상황도 아니라고 강조했다. 중기부는 "미국, 일본, 이스라엘 등 주요 선진국의 지난 5년간 벤처투자 실적도 병행 분석하였는데 코로나19 이후 2021년과 2022년에 모두 투자액이 급증했다. 해당 시점 전후로 국가별 벤처투자 실적이 서로 동조화되고 있는 점도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중기부는 올 하반기 벤처 시장을 낙관했다. 중기부는 "창업투자회사 등 실적의 상세 분석 결과 업종별 투자 규모가 조정되면서 전체 실적도 통상적 수준에 근접해 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창업투자회사 등의 올해 2분기 투자실적(1.3조원)이 1분기(0.9조원)보다 43% 증가하는 등 일부 회복세가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중기부는 "고금리 및 안전자산 선호 등이 지속되고 있고 벤처투자 시장의 방향성을 단언하기는 조심스러우나 연초보다는 나아지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이영 중기부 장관은 “벤처·스타트업이 직면한 자금난을 해소할 수 있도록 양(중기부, 금융위원회) 부처 차원에서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2021~2022년 유동성 확대 등으로 이례적으로 급증했던 투자액이 일부 업종에 편중되었는데 2023년 들어 업종별 투자비중이 이전보다 완화되면서 전체 투자시장의 연착륙 가능성이 한층 커진 만큼 향후에도 민간 벤처모펀드 결성 지원, 스타트업코리아 종합대책 등을 차질없이 추진하여 회복 모멘텀을 유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먼저 해명에 나선 이유

중기부가 투자 감소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구체적으로 설명한 건 이례적이다. 벤처 투자의 증감은 국내외 경제 환경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정부에서 쓸 수 있는 정책이 별로 없다. 규제 개선 등 정부가 투자 환경을 개선해도 지금 같은 글로벌 고금리 상황에서는 벤처 투자가 늘기 어렵다. 벤처 투자 감소를 정부 탓으로 돌리기 어렵다는 얘기다. 그래서 정부의 해명에 가까운 벤처 투자 동향 분석이 눈길을 끈다.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정부의 모태펀드 예산 감소가 중기부의 투자 동향 상세 분석의 이유라는 얘기가 나온다. 정부가 올해 모태펀드 예산 규모를 줄였는데, 이런 영향으로 국내 스타트업 투자가 감소했다는 지적이 계속 나오고 있다. 정부는 올해 모태펀드 예산을 3135억원 규모로 편성했다. 지난해(5200억원)보다 39.7% 감소한 수준이다. 2021년과 비교하면 70% 이상 급감했다. 모태펀드는 민간의 벤처 투자 활성화를 위한 재원이다. 벤처캐피탈(VC) 등에 출자하면 VC는 이를 종잣돈 삼아 벤처 펀드를 만들어 스타트업에 투자한다.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 성장에 큰 역할을 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오른쪽)과 김주현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4월 '혁신 벤처‧스타트업 자금지원 및 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중기부 제공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오른쪽)과 김주현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4월 '혁신 벤처‧스타트업 자금지원 및 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중기부 제공
정부는 민간 자본을 확대하는 방법으로 국내 스타트업 투자 시장을 활성화하려고 한다. 중기부는 지난 4월 ‘혁신 벤처·스타트업 자금 지원 및 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민간 부문 투자를 끌어내기 위한 규제 완화 대책도 내놨다. 은행의 벤처펀드 출자 한도를 두 배(자기자본의 0.5%→1%)로 확대했다.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이 국내 벤처기업의 해외 자회사에 투자할 경우 규제 강도를 국내 기업 투자 수준으로 낮추기도 했다. 또 M&A 목적 펀드의 신주 투자 의무(현재 40% 이상)는 폐지하고, 상장사 투자 규제(현재 최대 20%)도 없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모태펀드 역할이 아직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대표는 “정부와 민간 지원이 끊기기 시작한 3~4년 차 스타트업이 최근 자금난을 많이 겪고 있다”며 “유망 기업들이 쓰러지지 않도록 모태펀드가 제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부는 내년 모태펀드 예산은 올해보다 증액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투자가 증가한 분야는 어디?

중기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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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별로 보면 여전히 ICT서비스 분야가 가장 많다. 올 상반기에 8776억원으로 1년 전보다 61.0% 감소했다. 바이오·의료는 5961억원으로 전년보다 54.7% 줄었다. 하드웨어 투자만 전년 대비 늘었다. 전기·기계·장비는 6672억원으로 1년 전보다 9.8% 증가했다. 같은 기간 ICT제조는 4820억원에서 5156억원으로 7.0% 늘었다.
업력별로 보면 7년 초과의 후기 벤처의 상반기 투자액이 2조2929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하지만 작년보다 29.3%감소했다. 3년 이하의 초기와 중기(3~7년) 벤처 투자액은 각각 1조2067억원과 1조2088억원으로 1년 전보다 38.5%와 57.0% 줄었다.

향후 벤처 투자 동향을 예상할 수 있는 지표인 벤처 펀드 조성액도 감소했다. 올 상반기는 4조5917억원으로 작년(8조6961억원)의 절반 수준이다. 출자자를 보면 모태 펀드가 상반기에 2337억원으로 1년 전보다 34.4% 감소했다. 민간에서 비중이 가장 큰 금융기관(산업은행 제외)의 출자액은 같은 기간 1조4227억원으로 전년보다 46.9% 감소했다. VC도 9122억원에서 5484억원으로 39.9% 감소했다.

돈이 가장 많이 몰리는 미국은 어떨까

세계에서 벤처 투자 규모가 가장 큰 미국의 동향은 어떨까. KOTRA의 '2023년 1분기 미국 스타트업 투자 동향 분석' 보고서에서 스타트업 정보업체 크런치베이스에 따르면 1분기 미국 스타트업 투자 금액은 463억달러로 1년 전보다 46% 감소했다.

해당 투자 금액에는 마이크로소프트(MS)가 오픈AI에 투자한 100억달러와 핀테크 기업 스트라이프의 투자 유치 금액 65억달러가 포함돼 있다. 2개의 대형 투자를 제외하면 1분기 미국 스타트업 투자 금액은 전년 동기보다 60% 이상 감소한다. 북미 스타트업 투자 건수(2370건)도 전 분기(2022년 4분기) 대비 13%, 전년 동기(2022년 1분기) 대비 48%가 줄었다.
KOTRA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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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회수 기간이 길어 상대적으로 투자 환경 변화의 영향을 덜 받는 시드 단계 투자도 줄었다. 올 1분기 미국 스타트업 시드 단계 투자는 30억 달러였다. 1년 전보다 48% 줄었다. 초기 단계 스타트업 투자(133억 달러)도 전년 동기 대비 53% 감소했다.

후기 단계인 시리즈 D 단계의 스타트업 투자 하락 폭은 더 컸다. 올 1분기 시리즈 D 단계 투자는 전년보다 86%가 하락했다. 정점이었던 2021년 4분기(5분기 전)과 비교하면 92% 감소했다. 1억 달러 이상 투자를 부르는 '메가딜'도 줄었다. 올 1분기 메가딜은 90건으로 1년 전(378건)보다 76% 감소했다.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 10억 달러 이상의 비상장사) 증가 폭도 줄었다. 1분기 미국 신규 유니콘 기업은 13개였다. 전년 동기 대비 90% 감소한 규모다. 미국에서도 스타트업 투자가 감소한 이유가 국내와 비슷하다. KOTRA는 미국 이자율 상승에 따른 자금 조달의 어려움, 거시 경제의 불확실성으로 인한 투자가의 조심스러운 행보, 지난 몇 년간 주식 시장에 상장된 스타트업들의 주식 가격 하락 등을 스타트업 투자 시장 위축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