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파업 리스크에 유럽 천연가스 가격 40% '껑충' [원자재 포커스]
호주 LNG 공장 파업 소식에
작년 3월 이후 최대 폭 상승


9일(현지시간) 유럽의 천연가스 가격이 40% 가까이 급등했다. 호주의 액화천연가스(LNG) 공장 노동자들이 파업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수급 불안감이 커진 탓이다.

이날 런던ICE선물거래소에서 유럽 천연가스의 벤치마크로 활용되는 네덜란드 TTF 선물 9월 인도분 가격은 1메가와트시(㎿h)당 39.7유로에 마감했다. 전일 종가인 1㎿h당 31.5유로 대비 27.7% 오른 수준이다. 장중에는 1㎿h당 43.5유로까지 오르며 40% 가까운 상승세를 나타내기도 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네덜란드 TTF 선물이 1㎿h당 40유로를 넘어선 건 지난 6월 이후 처음이다. 상승 폭은 지난해 3월 이후 약 1년 반 만에 최고치다.

천연가스 가격을 띄운 건 셰브론과 우드사이드 에너지 그룹이 호주에서 운영하는 공장 노동자들이 파업을 결의했다는 소식이었다. 파이낸셜리뷰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우드사이드 공장의 생산직 노동자 180명 중 약 99%가 이날 무기한 파업에 찬성표를 던졌고, 셰브론 공장 직원 수백 명도 함께할 전망이다. 이들은 임금 인상과 더 높은 고용 안전성을 보장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다만 구체적인 파업 돌입 시점은 정해지지 않았다.
호주 파업 리스크에 유럽 천연가스 가격 40% '껑충' [원자재 포커스]
RBC에 따르면 이들 공장은 전 세계로 수출되는 LNG의 11%가량을 책임지고 있다. 주요 바이어는 중국, 일본, 한국, 인도 등 아시아의 4대 수입국이며, 유럽에 직접적으로 공급되는 물량은 없다. 블룸버그는 “호주 파업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을 나라는 일본”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아시아 국가들이 현물 시장 등에서 대체 물량 확보에 나서기 시작하면 아시아 지역 LNG 가격 기준 지표인 JKM 선물뿐 아니라 네덜란드 TTF 선물 가격까지 밀어 올릴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에너지 컨설팅 업체 인스파이어드PLC의 닉 캠벨 디렉터는 “아시아 바이어들이 LNG 입찰에 뛰어들면 유럽 시장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LNG는 유럽 가스 믹스(전원별 구성 비율)의 기초이기 때문에 이런 소식은 LNG 가격을 지지하는 신호”라고 설명했다.

씨티은행의 애널리스트들은 “파업이 현실화할 경우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파급 효과가 상당할 거란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유럽발 LNG 수입 수요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자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거래되는 헨리허브 천연가스 선물도 이날 장중 MMBTU(열량 단위, 100만 파운드의 물을 화씨 1도 올리는 데 필요한 열량)당 3달러를 넘어섰다. 지난 3월 초 이후 처음이다. 미국에서 생산되는 가스의 11%가 LNG로 수출되기 때문이다.
호주 파업 리스크에 유럽 천연가스 가격 40% '껑충' [원자재 포커스]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지난해 여름 1㎿h당 340유로까지 뛰었던 유럽의 천연가스 가격은 상당히 진정된 상태지만, 조금이라도 수급 차질이 우려되면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이다. 지난해까지 세계 최대 LNG 수입국이었던 유럽연합(EU)은 수요량의 약 40%를 러시아산 가스로 충당했다. 대러 경제 제재가 시작된 이후부터는 수입량이 줄면서 해상으로 운송되는 LNG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다.

현재 유럽 내 가스 저장고는 겨울 수요를 대비해 87.7%까지 차 있어 평년 대비 양호한 수준이다. 시장에선 9월 말까지 저장고가 100% 채워질 거란 예상이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주 LNG 공장 파업과 노르웨이에서의 생산 중단 등이 맞물리면 시장에 충격이 가해질 수 있다는 우려다. 노르웨이의 LNG 공장들이 유지‧보수를 위한 가동 중단에 들어가면서 8월 15㎥, 9월 25㎥씩 생산이 줄어들 전망이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인베스텍의 콜럼 맥퍼슨 원자재 책임자는 “가스 저장고가 가득 찼다고 해서 모든 것이 괜찮다고 볼 순 없다”며 “겨울에 상황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으며, 유럽의 가스 수급에는 상당한 ‘꼬리 위험’이 있다”고 짚었다. 씨티은행은 “호주 노동자들의 파업이 겨울까지 장기화한다면 유럽의 천연가스 가격은 1㎿h당 62유로까지 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