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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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한 근로자라고 해도 적법한 절차를 거쳐 타 부서에 배치할 수 있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그간 현장에서는 근로기준법이 직장 내 괴롭힘 신고자에 대한 '부당한 처우'를 금지하고 있는 바람에, 업무상 필요에도 불구하고 신고자에 대한 일체의 인사 조치를 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신고 근로자에 대한 정당한 인사 발령은 '보복'이나 '불이익'으로 볼 수 없다는 이번 판결은 '부당한 처우'에 대한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는 게 노동법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청주지방법원 제13민사부(재판장 이지현)는 한 대기업 소속 근로자 A씨가 회사를 상대로 청구한 인사발령 무효 확인 소송에서 회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

95년 입사한 A씨는 생산담당 조직에서 근무해 왔다. 그는 지난 2022년 6월 상사인 파트장으로부터 "초등학생도 아니고 하나하나 다 알려줘야 하냐", "지금 받는 월급이 아깝다"는 폭언을 들었다며 상사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했다. 회사는 해당 파트장을 면책하고 부서 이동 조치했다.

그런데 같은 해 9월, 이번엔 A씨에 대한 익명의 제보가 들어왔다. A씨가 질병으로 정상 업무 수행이 불가능한데도, 상급자에게 인사 청탁을 해서 한직으로 이동한 후 요양하며 업무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는 취지였다.

제보 이후 회사는 A씨와 여러 차례 면담을 실시했다. 이후 "부정 청탁이나 업무태만은 확인이 안 된다"고 조사 결과를 A에 보냈다. 하지만 '업무 원활'을 이유로 A씨를 다른 팀에 배치하고 기존에 수행하던 업무 계속 맡기는 인사 발령을 냈다.

이에 A씨는 10월에 휴직을 신청하고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이유로 한 보복 발령 탓에 팀장에서 팀원으로 강등됐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근로기준법은 사용자가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신고를 이유로 피해자와 신고자에 '부당한 처우'를 할 수 없도록 정하고 있다.

A씨는 자신이 팀장을 못 하게 돼서 입은 경제적 손해 1억원과 발령 이후 불면증 등의 진단 받는 등 신체적·정신적 손해 입은 데 대한 위자료 3000만원 포함해 총 1억 3000만원 달라고 청구했다.

하지만 법원은 "인사 발령이 정당한 인사권 행사의 범위에서 벗어났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회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

먼저 법원은 해당 인사발령이 근로기준법에서 금지하는 '불리한 처우'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A씨에 대한 제보가 익명으로 이뤄졌고 △회사도 A씨의 조사 과정에서 A씨가 업무를 태만히 하지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기재한 점 △인사발령의 목표가 효율적인 인력 운영을 통한 생산성 제고로 보이는 점 △이미 2021년 A씨는 회사에 ‘팀장 직책의 수행이 부담스럽다’는 의사를 밝혀 이번 인사 발령 전부터 팀원으로 근무해 온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인사발령 자체도 부당하지 않다고 판시했다. 인사발령이 업무상 필요 없었다는 A씨의 주장에 대해 법원은 "회사 입장에선 다른 직원들의 이의제기·항의가 있을 경우 추가 분쟁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며 "A씨가 기존 업무를 계속하게 하는 등 회사 인사 재량권의 범위 내의 직무를 조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제보 등에도 불구하고 A씨에 대해서만 어떤 조치도 하지 않을 경우 회사 분위기를 해칠 수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어 회사가 5회 이상 A씨와 면담 절차를 진행하면서 성실한 협의를 거친 점도 근거로 들었다.

위자료 청구도 기각했다. 재판부는 "5회 이상 면담 절차에서 건강 상태에 대해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은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업무도 사실상 인사발령 전후가 동일한 점, 이미 팀원으로 근무해 오던 점을 보면 인사발령으로 인한 정신적 충격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한 노동법 전문가는 "괴롭힌 신고가 있는 경우, 회사는 신고한 근로자에 대해선 일체의 인사 조치를 하지 못하고 눈치만 봤던 게 현장의 분위기"라며 "직장 내 괴롭힘 법에서 규정하는 '불리한 처우'의 판단 기준을 제시한 판결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박시온/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