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태 인하공대 57학번 졸업생 30년째 장학금 기부 왜? [인천은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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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김현태 현경사회복지회 회장이 모교인 인하대에 1억원의 장학금을 기부했다. 해당 대학과 지역 언론에서는 "김 회장이 또 장학금을..."이라며 놀라움과 고마움의 표현이 이어졌다.
해당 대학에서는 아예 ‘김현태 등불 장학기금’을 만들기로 했다. 지난 1994년 이후 잊혀질만하면 툭 내놓은 장학금과 발전기금이 34억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궁금했다.
“대학 등록금을 낼 수 없어서 끝내 제적 당했을 때는...”
그는 1959년 대학 3학년 진급을 못하고 학교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당시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잠시 멈칫 했다. 점심 도시락을 가져올 수 없어서 강의실에서 살며시 나와 자취방에 돌아와 머물다가 수업시간에 맞춰 학교로 되돌아 간 일, 인천앞바다가 얼었다는 뉴스가 나올 정도의 강추위에 연탄 한 장 없어 손을 호호 불며 이불 속에서 공부했던 순간이 떠올랐을까.
김현태 현경사회복지회 회장은 지난 1957년 인하공과대학(현재 인하대) 기계공학과에 입학했다. 경상남도 의령에서 올라온 가난한 집 아들이었다. 대학 1~2학년 재학하면서 일용직 공사판이나 시장에서 사과상자를 나르는 잡부 등 아르바이트도 하고, 일부 학기는 장학금을 받았지만 3학년 진급을 위한 등록금은 결국 마련할 수 없었다.
“당시 인하공대는 개교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교칙이 매우 엄격했어요. 면학 분위기를 흐리는 학생에겐 가차없이 정학이나 퇴학 조치를 내렸으며, 일정 기간 안에 등록금을 납부하지 못해도 제적 처리를 하곤 했어요." 인하공대는 1953년 6·25전쟁 정전협정 이듬해인 1954년 4월에 개교했다.
김 회장은 군 복무 3년(1959~1962년) 마치고 전역해 편입시험을 통해 같은 대학 동일 학과에 재입학했다. 나머지 학기는 집안의 도움, 교내 장학금, 동성장학재단의 장학생 선발 등으로 무사히 마쳤다. 그는 1963년 12월 졸업하고 이듬해 1월 충주비료공업에 입사해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동성장학재단은 오정섭 동방강건(현 동방노보펌) 대표(2003년 작고)가 당시 중소기업을 경영하면서 1959년에 만든 장학재단이다.
김 회장은 10여년의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1974년 서울 양남동에서 삼흥기계(현 한일루브텍)을 설립해 국내 처음으로 ‘집중윤활시스템’을 개발했다. 제조현장에서 사용하는 운반하력기기와 항만하역기기 베어링에 윤활유를 공급하는 장비다.
회사 경영이 안정을 찾기 시작한 1994년부터 드디어 평소 소망했던 장학금 기부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난한 후배들이 학업에만 열중하도록 장학금을 지원했지만 차츰 다양한 방식으로 모교 지원에 나섰다. 장학금, 대학발전기금으로 다양화하면서 지난 2011년에는 장학금 기부를 체계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우남 이승만 박사 장학회를 만들기도 했다. 장학금도 대학과 총동창회로 분리해 기부하면서 혜택의 범위도 넓혔다.
김 회장은 "인하대 설립자인 이승만 전 대통령은 1954년 3월 자신의 생일 축하금으로 들어온 돈으로 이승만 장학회를 만들었지만 계속 이어지지 못했어요. 이승만 박사 장학회를 만들어 체계적으로 후배를 돕고 싶었습니다."
지난 2007년 학교발전기금 20억원, 2008년 인하대로스쿨 장학금 1억원, 2017년 학교발전기금 1억원...한 번에 수백억원의 장학금을 기부할 여건은 못되지만 올해로 30년째 이어오고 있는 그의 장학사업이다.
그는 사용처를 묻지 않고 학교발전기금으로 1억원 이상의 몫돈을 쾌척하기도 했지만, 특정 단과대 후배를 선발해 집중 지원하기도 한다. 매년 면접을 통해 10여 명에게 200만원의 장학금을 별도로 지급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장학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김 회장은 "지금까지 총 몇 명의 후배에게 장학금을 전달했는지 기록하지 않아 알 수 없지만 작은 금액이라고 골고루 혜택이 돌아가도록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엔지니어, 중소기업 사장, 사회사업가이면서 출판인이기도 하다.
지난 2013~2020년,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이면서 인하대 설립자인 이승만 전 대통령 관련 책자를 세 권 발행했다. 2012년 가을학기 장학생 선발을 위해 면접에서 만난 후배 대부분이 자신의 모교 설립자가 누군인지 모르는 상황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2013년 3월에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시작으로 '이승만 박사의 반공정신과 대한민국 건국'(2016년 11월), '교육혁명가 이승만 대통령의 교육입국론'(2020년 8월)을 펴냈다.
공대 출신의 엔지니어, 제조업체의 사장 경험밖에 없었던 그는 한국 근현대사, 국제정세, 정치외교, 독립운동 역사를 배우면서 7년 동안 세 권의 이승만 전 대통령 전문서를 출간하는 열정을 보였다. 김 회장은 "후배들이 경제적 어려움 없이 학문을 향한 열정을 이어갈 수 있도록 장학기금을 기부하는 것은 나에게 매우 뜻깊은 일”이라고 말했다.
인천=강준완 기자 jeffkang@hankyung.com
해당 대학에서는 아예 ‘김현태 등불 장학기금’을 만들기로 했다. 지난 1994년 이후 잊혀질만하면 툭 내놓은 장학금과 발전기금이 34억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궁금했다.
“대학 등록금을 낼 수 없어서 끝내 제적 당했을 때는...”
그는 1959년 대학 3학년 진급을 못하고 학교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당시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잠시 멈칫 했다. 점심 도시락을 가져올 수 없어서 강의실에서 살며시 나와 자취방에 돌아와 머물다가 수업시간에 맞춰 학교로 되돌아 간 일, 인천앞바다가 얼었다는 뉴스가 나올 정도의 강추위에 연탄 한 장 없어 손을 호호 불며 이불 속에서 공부했던 순간이 떠올랐을까.
김현태 현경사회복지회 회장은 지난 1957년 인하공과대학(현재 인하대) 기계공학과에 입학했다. 경상남도 의령에서 올라온 가난한 집 아들이었다. 대학 1~2학년 재학하면서 일용직 공사판이나 시장에서 사과상자를 나르는 잡부 등 아르바이트도 하고, 일부 학기는 장학금을 받았지만 3학년 진급을 위한 등록금은 결국 마련할 수 없었다.
“당시 인하공대는 개교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교칙이 매우 엄격했어요. 면학 분위기를 흐리는 학생에겐 가차없이 정학이나 퇴학 조치를 내렸으며, 일정 기간 안에 등록금을 납부하지 못해도 제적 처리를 하곤 했어요." 인하공대는 1953년 6·25전쟁 정전협정 이듬해인 1954년 4월에 개교했다.
김 회장은 군 복무 3년(1959~1962년) 마치고 전역해 편입시험을 통해 같은 대학 동일 학과에 재입학했다. 나머지 학기는 집안의 도움, 교내 장학금, 동성장학재단의 장학생 선발 등으로 무사히 마쳤다. 그는 1963년 12월 졸업하고 이듬해 1월 충주비료공업에 입사해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동성장학재단은 오정섭 동방강건(현 동방노보펌) 대표(2003년 작고)가 당시 중소기업을 경영하면서 1959년에 만든 장학재단이다.
김 회장은 10여년의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1974년 서울 양남동에서 삼흥기계(현 한일루브텍)을 설립해 국내 처음으로 ‘집중윤활시스템’을 개발했다. 제조현장에서 사용하는 운반하력기기와 항만하역기기 베어링에 윤활유를 공급하는 장비다.
회사 경영이 안정을 찾기 시작한 1994년부터 드디어 평소 소망했던 장학금 기부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난한 후배들이 학업에만 열중하도록 장학금을 지원했지만 차츰 다양한 방식으로 모교 지원에 나섰다. 장학금, 대학발전기금으로 다양화하면서 지난 2011년에는 장학금 기부를 체계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우남 이승만 박사 장학회를 만들기도 했다. 장학금도 대학과 총동창회로 분리해 기부하면서 혜택의 범위도 넓혔다.
김 회장은 "인하대 설립자인 이승만 전 대통령은 1954년 3월 자신의 생일 축하금으로 들어온 돈으로 이승만 장학회를 만들었지만 계속 이어지지 못했어요. 이승만 박사 장학회를 만들어 체계적으로 후배를 돕고 싶었습니다."
지난 2007년 학교발전기금 20억원, 2008년 인하대로스쿨 장학금 1억원, 2017년 학교발전기금 1억원...한 번에 수백억원의 장학금을 기부할 여건은 못되지만 올해로 30년째 이어오고 있는 그의 장학사업이다.
그는 사용처를 묻지 않고 학교발전기금으로 1억원 이상의 몫돈을 쾌척하기도 했지만, 특정 단과대 후배를 선발해 집중 지원하기도 한다. 매년 면접을 통해 10여 명에게 200만원의 장학금을 별도로 지급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장학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김 회장은 "지금까지 총 몇 명의 후배에게 장학금을 전달했는지 기록하지 않아 알 수 없지만 작은 금액이라고 골고루 혜택이 돌아가도록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엔지니어, 중소기업 사장, 사회사업가이면서 출판인이기도 하다.
지난 2013~2020년,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이면서 인하대 설립자인 이승만 전 대통령 관련 책자를 세 권 발행했다. 2012년 가을학기 장학생 선발을 위해 면접에서 만난 후배 대부분이 자신의 모교 설립자가 누군인지 모르는 상황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2013년 3월에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시작으로 '이승만 박사의 반공정신과 대한민국 건국'(2016년 11월), '교육혁명가 이승만 대통령의 교육입국론'(2020년 8월)을 펴냈다.
공대 출신의 엔지니어, 제조업체의 사장 경험밖에 없었던 그는 한국 근현대사, 국제정세, 정치외교, 독립운동 역사를 배우면서 7년 동안 세 권의 이승만 전 대통령 전문서를 출간하는 열정을 보였다. 김 회장은 "후배들이 경제적 어려움 없이 학문을 향한 열정을 이어갈 수 있도록 장학기금을 기부하는 것은 나에게 매우 뜻깊은 일”이라고 말했다.
인천=강준완 기자 jeff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