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무용단 초청 신작 '여자야 여자야'…24∼27일 국립극장서 공연
'모던걸'의 치열한 몸짓…안은미 "여성의 힘은 '언리미티드'죠"
유관순 열사처럼 흰 저고리에 검은색 치마를 입은 무용수들이 어지럽게 뛰어다니며 부지런히 몸을 움직인다.

음악 중간중간 총성이 들리면 순간 멈춰서 기다란 플라스틱 파이프가 마치 총이라도 되는 것처럼 서로를 향해 쏜다.

이내 음악이 잦아들자 무용수들은 흰 저고리를 벗어 던지고, 빨강, 초록, 파랑, 노랑 색색의 치마를 덧입는다.

빠른 템포의 춤을 계속 추던 무용수들은 이 색색의 옷들마저 벗어 하늘 높이 또는 관객을 향해 있는 힘껏 집어 던진다.

곧이어 무용수들은 70∼80년대 유행했던 카바레에 온 것처럼 몸을 살랑살랑 흔든다.

무표정하던 얼굴에는 익살맞은 웃음이 번진다.

이들의 움직임은 남녀가 짝지어 추는 사교춤으로 이어진다.

지난 8일 서울 서초구 국립현대무용단 연습실에서는 오는 24∼27일 국립극장에서 초연을 앞둔 안무가 안은미의 신작 '여자야 여자야'의 연습이 한창이었다.

안은미가 국립현대무용단의 초청으로 처음 함께 작업한 작품이다.

공개된 20분가량의 연습 장면에서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나선 여성, 개화의 바람을 타고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는 여성, 유교적인 관습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는 여성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모던걸'의 치열한 몸짓…안은미 "여성의 힘은 '언리미티드'죠"
연습을 마친 뒤 만난 안은미는 '모던걸'이라고 불리던 근현대사 속 신여성이 작품의 키워드라고 했다.

그는 "신여성이란 새로운 문명의 문을 연 사람들"이라며 "자기 의지였든 아니었든 간에 그 문에 발을 들여놓은 이들은 세상이 확 바뀌는 격변하는 시대를 마주했다"고 말했다.

그동안 세대, 성별, 문화 등 다양한 기준으로 범주화되는 사회와 이를 구성하는 사람들을 탐구하는 작품들을 만들어 온 안은미가 근대 신여성을 무대에 올린 이유는 뭘까.

작품에는 구체적인 서사가 없지만, 과거에 머물다 급속한 사회 변화를 헤쳐 나가는 신여성의 이미지가 펼쳐진다.

어린 나이에 시집가고, 노동에 시달리고, 학교에 가고, 어디론가 끌려가고, 머리를 단발로 자르고, 짧은 치마를 입고, 댄스홀에서 춤을 추는 여성들의 모습이다.

안은미는 "'근대'는 멀리 있는 듯하지만, 바로 얼마 전의 이야기"라며 "이 시대 여성들은 지금보다도 훨씬 처절한 상황에서 살았다.

이분들의 치열한 삶을 보며 우리가 이어갈 치열함이 무엇일지에 대한 질문을 관객들에게 던지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여성이 사회에 발을 디딜 때는 남성으로부터 많은 질투와 비난을 받기도 했고, 두려움도 있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상에 혁명이 일어나 바뀔 때는 여성운동이 그 시작점에 있다"며 "그렇다고 (남녀로 나뉜) 이분법적인 접근은 아니다.

여성 인권만큼 남성 인권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초의 여의사, 여성 비행사 같은 분들이 없었다면 여성의 새로운 움직임은 더뎠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모던걸'의 치열한 몸짓…안은미 "여성의 힘은 '언리미티드'죠"
안무 가운데 무용수들이 옷을 벗어 던지는 장면은 이처럼 기존의 한계를 뛰어넘는 여성 해방을 상징한다.

이 안무는 원래 없었던 것인데, 리허설 도중 무용수들이 옷을 벗는 모습을 본 순간 가슴이 쿵쾅거릴 정도로 해방감을 느껴 넣게 됐다고 했다.

안은미는 "이번 작품은 이름을 모두 열거할 수 없는 이런 다수의 위대한 여성에게 바치는 헌정 댄스"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들의 시대정신을 고민했다.

바로 '절대 꺾이지 않는 정신'"이라며 "좀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멈춤이 없어야 한다.

공연에는 남성 무용수 6명과 여성 무용수 6명이 나오는데, 여성 무용수들은 무대에서 떠나질 않는다"고 말했다.

"어머니, 할머니, 여성의 힘은 '언리미티드'죠. 제약 없이 확장될 수 있는 에너지를 보여주는 게 이번 공연의 주제에요.

여성들이여 화이팅!"
'모던걸'의 치열한 몸짓…안은미 "여성의 힘은 '언리미티드'죠"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