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상온·상압 초전도체를 개발했다는 논문을 공개해 국내외 과학자들이 검증 작업에 나섰다. 사진은 국내 연구진이 개발했다고 주장하는 상온 초전도체 추정물질 LK-99. /연합뉴스
국내 연구진이 상온·상압 초전도체를 개발했다는 논문을 공개해 국내외 과학자들이 검증 작업에 나섰다. 사진은 국내 연구진이 개발했다고 주장하는 상온 초전도체 추정물질 LK-99. /연합뉴스
상온과 대기압에서 전기저항이 0이 되는 초전도체(superconductor)를 한국 기업이 개발했다고 주장하면서 세계적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초전도체는 극저온 또는 초고압의 특수한 환경에서만 존재할 수 있었는데, 이것을 우리가 살아가는 일반 온도와 기압에서 구현해 냈다는 것이다. 국내 벤처기업 퀀텀에너지연구소는 지난달 22일 ‘LK-99’라는 이름의 상온·상압 초전도체에 관한 논문을 인터넷에 공개했다. 증시는 ‘초전도체 테마주’를 찾는 투자자로 북적였고, 깜짝 놀란 국내외 과학계가 검증에 나섰다.

112년 전 첫 발견 … ‘가짜 논문’ 들통난 적도

초전도체는 물질의 전기저항이 0이 되는 ‘완전도체’와 주변 자기장을 밀쳐 내는 ‘완전반자성’의 특성을 동시에 지닌 물질이다. 1911년 네덜란드 물리학자 헤이커 오너스가 수은을 액체헬륨으로 영하 269℃까지 낮추자 전기저항이 사라지는 현상을 처음 관측했다. 1980년대 들어서는 좀 더 높은 온도에서 초전도 현상을 보이는 물질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1986년 스위스의 카를 뮐러와 독일의 요하네스 베드노르츠는 란타넘, 바륨, 산화구리 등을 결합한 물질이 영하 238℃에서 초전도 현상을 보인다는 것을 알아냈다. 두 물리학자는 1년 만인 1987년 이례적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학계에서 초전도체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는 점을 방증하는 사례다.

이후 초전도체의 온도는 점차 높아졌지만, 대신 엄청난 압력을 가해야 해 실제 활용과는 거리가 멀었다. 2015년 독일의 미하일 에레메츠는 황화수소를 영하 70℃에서 대기압의 150만 배 압력으로 압축하면 초전도 현상이 나타난다고 발표했다. 최근에는 상온 초전도체를 자처하는 물질도 나오지만 검증의 벽을 넘지 못했다. 2020년 미국 로체스터대 랭거 디아스 교수팀은 수소, 탄소, 황을 이용한 물질이 영상 15℃, 대기압 100만 배 압력에서 초전도 현상을 보였다는 논문을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실었다. 하지만 데이터 조작이 드러나 논문 게재가 철회됐다.

제대로 된 샘플을 공개하지 못한 LK-99에도 의심의 눈초리가 꽂히는 배경이다. “사실이면 노벨상감”이라는 기대도 있지만 “특이한 신물질일 뿐 상온 초전도체는 아니다”는 지적도 벌써 쏟아지고 있다.

상온에서 만들면 뭐가 달라지나?

임현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임현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초전도체를 상온에서 구현하면 전력을 이용하는 모든 설비의 성능을 높일 수 있다. 자기부상열차, 자기공명영상장치(MRI), 핵융합로, 양자 컴퓨터 등에 이르기까지 활용도가 무궁무진하다. 블룸버그통신은 “LK-99는 한 세대에 한 번 나올 법한 과학적 돌파구일 수 있지만, 큰 실망거리에 그칠지도 모른다”며 “최근의 소란스러움은 세상을 바꿀 새 과학적 발견을 우리가 얼마나 갈망해 왔는지를 보여 준다”고 짚었다. 다만 사실이라 해도 상용화까지는 보다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최경달 초전도저온학회장은 “상온 초전도체가 학술적 검증을 거치지 않고 공개돼 경제·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끼치는 점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