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어지고 뜯어져 '괴물'이 된 피아노, 이걸 연주하는 김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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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9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하이라이트
피아니스트 김재훈의 감독 데뷔작 '귀신통'
한국 피아노의 역사부터 자신의 실험까지 다뤄
29개국 104편 진출…'한국 장편 경쟁 부문' 올라
임윤찬 다룬 '크레센도'는 전석 매진 기염
류이치 사카모토 특별 상영회 등 '피아노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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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라이트 피아노를 그대로 뒤집어놓고 앞판은 확 떼어버린 ‘괴물’. 외계인의 갈빗대처럼 수많은 현은 검시를 앞둔 장기(臟器)처럼 무방비로 노출돼 있었다. 하프라도 다루듯 김재훈의 오른손이 거침없이 그 현들을 훑자 이 뒤집힌 물체는 귀신 같은 불협화음을 토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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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가까이 피아노를 치면서 ‘프리페어드 피아노’ 기법은 일부러 멀리했어요. 그러나 ‘인간과 피아노의 고통을 다루기 위해서는 마침내 나도 프리페어드를 택해야겠다. 이왕 하려면 극한까지 몰아붙여 미친 방식으로 하자’고 생각했죠.”(김재훈)
영화 ‘귀신통’은 먼저 한국 피아노의 역사를 짚는다. 1900년 미국 선교사 리처드 사이드보텀이 낙동강 사문진 나루터로 처음 피아노를 들여왔을 때, 조선의 짐꾼들은 상여로 그것을 옮겼는데 덜커덩할 때마다 시커먼 통이 유령처럼 소리를 내니 두려운 마음에 ‘귀신통’이란 별명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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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리스트, 베이시스트, 보컬리스트는 넘쳐나지만 ‘저는 피아니스트입니다’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죠. 콩쿠르에서 상을 받거나 큰 관현악단과 협연을 했다거나 하다못해 귀국독주회라도 하지 않는 한 그것은 참칭처럼 여겨지거든요.”
김 감독은 한국 피아노의 기괴한 위상을 전복하고 싶었다. 다큐 ‘귀신통’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해체 악기 ‘P.N.O.’ 개발 과정은 그것을 은유한다. 한 대의 피아노를 풀어헤쳐 타악기, 현악기, 건반악기로 분화시킨다. 피아노 의자에 홈을 파 음정 타악기로 변형한 ‘터틀 체어’, 피아노 현 두 개를 뜯어내 거문고처럼 누인 뒤 활로 아쟁처럼 연주하는 현악기 ‘엘리펀트 첼로’도 그 일부다.
누구나 한 번쯤 불어본 악기인 리코더를 일부러 리드 악기로 삼은 3인조 ‘티미르호’도 꽤 전복적인 팀이었다. 피아노, 기타, 리코더의 별난 앙상블. 감성적 음표 다발이 세설(細雪)처럼 휘몰아치는 ‘폭설’은 여전히 회자되는 ‘인디 클래시컬’ 명곡이다.
“P.N.O.는 상아탑 위로 올라가 버린 피아노의 위치를 다시 기타나 드럼 같은 대중 악기로 내려놓으려는 상징적 시도입니다. 연주자도 정장을 벗어 던지고 합주 악기로 함께 뒹굴 수 있는 피아노를 상상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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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영화제에서는 29개국 104편의 음악영화가 상영된다. 예매나 세부 정보 확인은 영화제 홈페이지 방문이나 전화로 가능하다. 임희윤 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