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혜 아나운서가 만난 뱀파이어 "인간들의 관심, 좀비들이 다 차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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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신지혜의 영화와 영감
# 30 days of night
배로우 마을에 긴 긴 밤이 깃들 무렵. 아메리카 대륙 최북단 마을인 이 곳에는 한 달간 해가 뜨지 않는다. 긴 밤을 견디기 힘든 사람들은 그래서 해마다 이맘때면 잠시 마을을 떠나 남쪽으로 내려간다.
부산스러운 마을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자들이 있다. 분명히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는 남자와 여자의 얼굴처럼 보이지만 이목구비의 모습이 어딘가 기괴하고 섬뜩하다. 언뜻 이들과 지나치게 된다면 큰 사고라도 당했던 사람인가 생각할 정도로 기괴하게 뒤틀려 있는 얼굴이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 중 아무도 그들에게 주목하는 사람은 없다. 마을을 떠나는 사람, 남는 사람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기에 바빴을 뿐 더러 그 수선스러움 가운데 누구 하나 고개를 들어 언덕을 쳐다볼 리가 만무하니 말이다.
이들은 뱀파이어다.
그리고 일이 벌어진다.
영화 ‘써티데이즈 오브 나이트’의 한 장면
#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Q) 당신(들)은 정확히 어떤 존재들이죠? 사실 우리 인간들과 수 세기동안 함께 있어왔지만 우린 당신(들)의 정체를 잘 모르겠단 말입니다.
A) 글쎄요. 워낙 여러 가지 모습과 성향이 있고 지역에 따라서 불려지는 이름도 다르고 민담이나 전설 속에서 뱀파이어의 시초(始初) 혹은 시원(始原)이라 여겨지는 존재들이 조금씩 차이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이런 점들을 고려해도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특징이 있긴 합니다.
일단 뱀파이어는 흡혈을 하죠. 사체를 뜯어 먹거나 살아있는 인간을 잡아먹는 여타의 것들과는 달리 뱀파이어는 인간의 피만 필요로 합니다. 또 뱀파이어의 흡혈행위는 전염이 되죠. 변신도 가능 합니다 주로 박쥐나 거미, 나방처럼 작은 몸체로 변신을 하지만 드물게 안개나 실오라기 같은 것으로도 변신합니다.
영화 ‘렛 미 인’의 경우에서 보듯이 어떤 지역에서는 집주인의 허락이 없이는 타인의 집에 들어갈 수 없기도 하고 여러 약점을 가지고 있죠.
요즘은 뱀파이어는 인간들의 관심사에서 좀 멀어진 듯 하네요. 우리의 위치를 좀비가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만…. 영화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중 한 장면
Q) 아, 그러네요. 제 생각에도 뱀파이어는 어딘가 고전적인 느낌이 들어서 이제는 주위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이 여겨집니다. 아니면 우리와 너무 친숙해졌기 때문일까요?
A) 그럼에도 불구하고 뱀파이어는 여전히 당신, 인간들 곁에 있습니다. 예전처럼 공포의 대상으로 생각지 않을 뿐이죠. ‘트와일라잇’에서처럼 뱀파이어와 사랑에 빠지는 인간들도 생겨났고 말입니다. ‘렛 미 인’에서는 인간과 친구가 되죠. 아, ‘렛 미 인’의 뱀파이어를 보고 조금 의아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더군요. 이엘리가 오스칼의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계속 허락을 구하는 장면을 이해하지 못하더라구요. 우리는 지역에 따라서 나름대로의 규칙을 가지고 있답니다. 실제로 오스칼이 집에 들어오라고 명백하게 이야기해주지 않으면 이엘리는 그의 집에 들어갈 수가 없어요.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에서도 그들의 관습을 엿볼 수 있죠. 집에 들어서서 장갑을 벗겨달라고 이야기하는 그녀들을 기억하나요?
어쩌면 수 세기 동안 공존했던 뱀파이어보다는 21세기의 인류는, 어떤 연유이건 비교적 현대적인 느낌으로 다가오는 좀비에 대한 공포를 더욱 크게 가지고 있지 않을까요?
최근 수 년 간 지속된 팬데믹 때문에 바이러스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보다 많은 정보를 공유하다보니 어딘가 바이러스와 공통점이 많은 좀비는 (비록 허구 속에 존재하는 대상으로 여기지만) 보다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공포의 대상이 되어 버린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Q) 직접적으로 물어보죠. 당신은 드라큘라 백작인가요?
A) 나도 내가 누군지 단정 지어서 말할 수 없군요. 말했다시피 인간들은 이미 수 세기 동안 뱀파이어들을 상상해 왔으니까요.
그래서 나는 루마니아의 드라큘라 백작일 수도 있고 헝가리의 에르제베트 바토리 부인일수도 있습니다. 노스페라투이기도 하고 반피르라고 표기되기도 했습니다.
Q) 혹시 당신의 조상에 대해 물어봐도 될까요?
A) 2000년 전 메소포타미아의 인큐버스와 서큐비스. 이들은 흡혈은 한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생기를 쇠진시켰다는 점에서 흡혈과 비슷한 행동을 했습니다.
또 바빌로니아의 릴리투를 얘기해야 하겠군요. 피에 굶주린 밤의 신 릴리투. 아담의 첫 번째 아내 릴리트의 유래가 되었는데 릴리트는 아담에게 버림받고 아이들의 피를 빨았다고 하죠.
아, 이 부분은 당신 인간들의 여러 설화 중에 떠도는 이야기이니 종교적인 교리에 대입하지는 마십시오. 이 질문에는 이 정도 답하면 되겠군요.
Q)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 더 하죠. 21세기의 뱀파이어는 이전 시대에 비해 좋게 말해 덜 무서워졌고 (조금은 친근해지기도 했죠) 있는 그대로 말하면 아우라가 사라졌다고 보입니다.
A) 사실 그렇습니다. 흡혈이라는 것 때문에 여전히 공포의 대상이긴 합니다만 우리는 이미 대도시의 군중 속에 섞여 있고 인간에게 어느 정도 익숙한 존재가 되었으니까요. 그래서 우리의 자리에 좀비가 앉은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어쨌거나 인간에게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타자성을 가진, 그래서 공포의 대상이 되는 누군가가 필요하니까 말이예요.
아벨 페라라 감독의 영화 ‘어딕션 addiction’을 아십니까?
도시의 밤거리를 천천히 걷던 매력적인 뱀파이어 카사노바는 역시 밤거리를 배회하던 캐서린의 목을 물죠. 캐서린은 혼란과 고통에 빠지지만 결국 그녀가 찾아간 곳은 카사노바와 동료들이 모여 흡혈 파티를 벌이는 장소입니다. 이 영화를 본 당신에게 오래도록 남는 장면이 있나요?
Q) 꽤 오래 전에 본 영화라 자세한 장면들은 기억나지 않지만 흑백의 영상에 관객을 유혹하는 듯 묘한 표정을 짓던 아름다운 뱀파이어 카사노바의 얼굴이 생각나는군요.
A) 그래요. 21세기 인간들에게 뱀파이어는 바로 그 정도의 존재가 되어 있는 겁니다. 당신들 속에 스며들어 있는 우리. 우리 중에도 인간과 공존해야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무리가 있습니다. 컬렌가의 구성원들이 그렇고 상현이라는 이름의 신부도 그렇지 않습니까. 게다가 우리와 당신들의 혼혈인 헌터들도 있죠. ‘블레이드’나 ‘뱀파이어 헌터 D’에 나오는 ... 실제가 아니라구요? 그럼 당신과 이야기하고 있는 나는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렛 미 인’, ‘박쥐’, ‘트와일라잇’
# 뱀파이어의 매혹
매혹이라는 단어는 왠지 뱀파이어와 잘 어울린다.
섬뜩하고 무섭지만 역겹고 끔찍하지만 꼼짝할 수 없는 강렬함이 그들에게는 서려 있다.
* 참고문헌
장 마리니 <뱀파이어의 매혹> (문학동네. 2012)
* 참조 영화
<써티 데이즈 오브 나이트>,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 , <렛 미 인>, <트와일라잇>,
<박쥐>,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어딕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