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윤찬 다큐 '크레센도', 클래식 월드배틀의 전사들을 만나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리뷰]제천국제음악영화제 화제작 '크레센도'
밴클라이번 콩쿠르 참가자들의 이야기 다룬 다큐
"임윤찬도 나온다" 소식에 예매 오픈 3분 만에 매진
임신 6개월의 참가자, 괴짜 연주자들의 삶 재조명
임윤찬 "그저 음악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워서 한다"
교황 선출하는 콘클라베 연상케 하는 콩쿠르의 비밀
잔재미 가득하지만 종합선물세트식 연출은 아쉬워
밴클라이번 콩쿠르 참가자들의 이야기 다룬 다큐
"임윤찬도 나온다" 소식에 예매 오픈 3분 만에 매진
임신 6개월의 참가자, 괴짜 연주자들의 삶 재조명
임윤찬 "그저 음악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워서 한다"
교황 선출하는 콘클라베 연상케 하는 콩쿠르의 비밀
잔재미 가득하지만 종합선물세트식 연출은 아쉬워
‘국격’을 따지는 시대다. 문화마저 선진국 대열에 올렸다며 ‘K-콘텐츠’ ‘K-컬처’의 힘을 말할 때 핏대 올리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국격보다 인격이 먼저 아닌가. 관념적인 집단의식이 명백한 개인 행복권을 침해하는 건 주객의 전도다.
제19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10일~16일)에서 12, 14일 세계 최초 상영된 작품 ‘크레센도’는 ‘임윤찬 다큐멘터리’로 주목받은 작품이다. 임윤찬이란 해시태그만으로도 최고의 화제작에 올라섰고 티켓은 오픈하자마자 동났다. 그러나 이 작품은 ‘K-클래식’이란 멋진 색안경을 벗어 던져야 진가를 드러낸다. 국가 대항전처럼 여겨지는 콩쿠르의 인간적 면모에 초점을 맞춰야 또렷하게 보인다. ‘크레센도’는 한마디로 ‘프로듀스 101’의 클래식 콩쿠르 버전이다. 임윤찬은 주인공이 아니다. 우승자이지만 출연 분량이 상당히 적다. 지난해 밴클라이번 결선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인데 참가자 30인이 저마다 주인공이다. 우승자 하나를 집중 조명해 기승전결의 영웅 서사를 쓰기보다 참가자들의 면면에 관심이 많다.
영화는 콩쿠르 측에서 참가자들에게 결선 합격 소식을 국제전화로 통보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각국 참가자는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의 배역들처럼 하나하나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로 모여든다. “금메달을 가져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특별한 경험을 하기 위해서 왔다”고 입을 모으지만 참가자들은 오리엔테이션부터 최종 결선까지 팽팽한 긴장감 속에 하루하루를 보낸다. 30명, 18명, 12명, 6명…. ‘생존자’는 데크레센도처럼 줄어들고 텐션은 크레센도가 된다. 둘째를 뱃속에 품은 임신 6개월의 안나(러시아), 스스로를 ‘게으른 사람’이라 평하는 27세의 괴짜 일리야(러시아), 여기까지 와서 렌터카 알아보는 자동차광 울라지슬라우(벨라루스) 등. 그들은 클래식 연주자이기 이전에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이다. 각국 참가자의 무지개 같은 개성과 유머 감각이 검은 정장, 그랜드피아노와 뻔뻔하게 교차한다. 따라서 관객은 스크린을 통해 ‘30명의 임윤찬’, ‘30명의 청춘’을 만나게 된다.
콩쿠르의 아이콘인 밴 클라이번의 1958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우승 장면은 자료화면으로 틈틈이 등장해 영화의 주제와 감정적 등고선을 효과적으로 덧칠한다. 미소 냉전의 상징적 장면으로 남은 미국인의 소련 콩쿠르 우승은 지난해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뉴스와 자연스레 연결된다. 고심 끝에 ‘밴클라이번 정신’으로 내린 주최 측의 결단이 러시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피아니스트를 한자리로 불러 모은다. 그들은 국가의 경계를 넘어 무대 위아래서 우정을 나눈다. 클래식을 몰라도 볼 만하다. 절제돼 끼어드는 오리지널 스코어는 록, 힙합, 일렉트로닉 뮤직을 오가며 콩쿠르의 젊음과 동시대성을 강조한다. 헤더 윌크 감독은 서로 다른 연주자가 같은 레퍼토리를 연주하는 장면을 이어달리기처럼 편집하는 데 능하다. ‘라흐 3’, 즉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연주 실황은 그렇게 영화 후반부의 꼭짓점을 만든다. 클라이번의 1958년 모스크바 연주가 흑백과 컬러,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넘어 2022년의 임윤찬, 일리야, 클레이턴(미국)의 연주와 음표와 마디를 격정적으로 주고받는다.
임윤찬은 다큐멘터리에서 “음악이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혼자 고립돼 고민하고 외로운 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청춘은 푸르다. 포트워스 시내에 나가 텍사스 로데오 체험을 하거나, 탈락 뒤 햇살 가득한 풀장에서 마가리타를 즐기는 참가자들의 모습은 영화에 색다른 재미를 더한다.
“계속 이 음악을 할 수 있는 이유는, 그저 음악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아름다움)을 이 현실 세계에서 꺼내기 위해서는 그런 어려운 일도 음악가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임윤찬)
수줍지만 단호한 임윤찬의 말은 국가나 명예를 호명하기 전에 아름다움의 가치와 그에 따르는 의무를 소환한다. 그런 면에서 아쉬운 것은 영화가 좀더 주제 의식을 명확하며 유쾌하게 표현해내지 못한 부분이다. 콩쿠르 주최 측, 심사위원, 평론가 인터뷰까지 두루 담았지만 콩쿠르 진행 과정, 참가자 개인 인터뷰 등 여러 장면과 섞이면서 비슷비슷한 메시지의 동어반복적 나열에 그친다.
다만, 참가자들이 자신이 연주할 피아노를 고르는 절차, 토너먼트 과정, 추첨 등 콩쿠르의 이면을 생생하게 지켜보는 재미는 마치 비밀스러운 콘클라베(교황 선출 절차)에 동행한 듯 흥미롭다. 잔재미가 가득하지만 ‘종합선물세트’의 한계는 있다. 연출이 좀 더 재밌었어도, 좀 더 파격적이었어도 좋았겠다. 제천=임희윤 음악칼럼니스트
제19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10일~16일)에서 12, 14일 세계 최초 상영된 작품 ‘크레센도’는 ‘임윤찬 다큐멘터리’로 주목받은 작품이다. 임윤찬이란 해시태그만으로도 최고의 화제작에 올라섰고 티켓은 오픈하자마자 동났다. 그러나 이 작품은 ‘K-클래식’이란 멋진 색안경을 벗어 던져야 진가를 드러낸다. 국가 대항전처럼 여겨지는 콩쿠르의 인간적 면모에 초점을 맞춰야 또렷하게 보인다. ‘크레센도’는 한마디로 ‘프로듀스 101’의 클래식 콩쿠르 버전이다. 임윤찬은 주인공이 아니다. 우승자이지만 출연 분량이 상당히 적다. 지난해 밴클라이번 결선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인데 참가자 30인이 저마다 주인공이다. 우승자 하나를 집중 조명해 기승전결의 영웅 서사를 쓰기보다 참가자들의 면면에 관심이 많다.
영화는 콩쿠르 측에서 참가자들에게 결선 합격 소식을 국제전화로 통보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각국 참가자는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의 배역들처럼 하나하나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로 모여든다. “금메달을 가져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특별한 경험을 하기 위해서 왔다”고 입을 모으지만 참가자들은 오리엔테이션부터 최종 결선까지 팽팽한 긴장감 속에 하루하루를 보낸다. 30명, 18명, 12명, 6명…. ‘생존자’는 데크레센도처럼 줄어들고 텐션은 크레센도가 된다. 둘째를 뱃속에 품은 임신 6개월의 안나(러시아), 스스로를 ‘게으른 사람’이라 평하는 27세의 괴짜 일리야(러시아), 여기까지 와서 렌터카 알아보는 자동차광 울라지슬라우(벨라루스) 등. 그들은 클래식 연주자이기 이전에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이다. 각국 참가자의 무지개 같은 개성과 유머 감각이 검은 정장, 그랜드피아노와 뻔뻔하게 교차한다. 따라서 관객은 스크린을 통해 ‘30명의 임윤찬’, ‘30명의 청춘’을 만나게 된다.
콩쿠르의 아이콘인 밴 클라이번의 1958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우승 장면은 자료화면으로 틈틈이 등장해 영화의 주제와 감정적 등고선을 효과적으로 덧칠한다. 미소 냉전의 상징적 장면으로 남은 미국인의 소련 콩쿠르 우승은 지난해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뉴스와 자연스레 연결된다. 고심 끝에 ‘밴클라이번 정신’으로 내린 주최 측의 결단이 러시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피아니스트를 한자리로 불러 모은다. 그들은 국가의 경계를 넘어 무대 위아래서 우정을 나눈다. 클래식을 몰라도 볼 만하다. 절제돼 끼어드는 오리지널 스코어는 록, 힙합, 일렉트로닉 뮤직을 오가며 콩쿠르의 젊음과 동시대성을 강조한다. 헤더 윌크 감독은 서로 다른 연주자가 같은 레퍼토리를 연주하는 장면을 이어달리기처럼 편집하는 데 능하다. ‘라흐 3’, 즉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연주 실황은 그렇게 영화 후반부의 꼭짓점을 만든다. 클라이번의 1958년 모스크바 연주가 흑백과 컬러,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넘어 2022년의 임윤찬, 일리야, 클레이턴(미국)의 연주와 음표와 마디를 격정적으로 주고받는다.
임윤찬은 다큐멘터리에서 “음악이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혼자 고립돼 고민하고 외로운 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청춘은 푸르다. 포트워스 시내에 나가 텍사스 로데오 체험을 하거나, 탈락 뒤 햇살 가득한 풀장에서 마가리타를 즐기는 참가자들의 모습은 영화에 색다른 재미를 더한다.
“계속 이 음악을 할 수 있는 이유는, 그저 음악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아름다움)을 이 현실 세계에서 꺼내기 위해서는 그런 어려운 일도 음악가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임윤찬)
수줍지만 단호한 임윤찬의 말은 국가나 명예를 호명하기 전에 아름다움의 가치와 그에 따르는 의무를 소환한다. 그런 면에서 아쉬운 것은 영화가 좀더 주제 의식을 명확하며 유쾌하게 표현해내지 못한 부분이다. 콩쿠르 주최 측, 심사위원, 평론가 인터뷰까지 두루 담았지만 콩쿠르 진행 과정, 참가자 개인 인터뷰 등 여러 장면과 섞이면서 비슷비슷한 메시지의 동어반복적 나열에 그친다.
다만, 참가자들이 자신이 연주할 피아노를 고르는 절차, 토너먼트 과정, 추첨 등 콩쿠르의 이면을 생생하게 지켜보는 재미는 마치 비밀스러운 콘클라베(교황 선출 절차)에 동행한 듯 흥미롭다. 잔재미가 가득하지만 ‘종합선물세트’의 한계는 있다. 연출이 좀 더 재밌었어도, 좀 더 파격적이었어도 좋았겠다. 제천=임희윤 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