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지도사 손들어준 1심 "포괄임금제 무효"…2심 판결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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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일 24시간 근무 장례지도사, 포괄임금 연봉계약 체결
“전화 응대 등도 근로시간으로 인정해 달라” 법원에 소송
서울고법 “업무 밀도 떨어지고, 대기시간 많다” 꼬집고
“근로자 주장대로라면 타사업장 연봉의 2~3배 … 비현실적”
24시간 격일제로 근무한 이들의 연봉 근로계약서에는 "임금은 연봉제로 하며, 연봉에는 약정급여, 기본급, 포괄수당, 상여금 등을 포함한다" "포괄수당에는 연장, 시간 외, 야간근로수당 등의 법정 제수당이 포함"이라는 내용의 포괄임금제 약정(정액수당제)이 담겨 있었다. 이에 대해 장례지도사들은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운 경우도 아니고, 근로자들에게 불리한 포괄임금 계약은 무효"라며 연장근로수당 및 야간근로수당을 별도로 계산해 1인당 7000~8000만원을 추가 지급하라는 소송을 냈다.
이들이 주장한 업무는 ①장례식장 예약과 문의 전화 응대 ②운구차로 시신 운구 ③시신 위생·소독 후 안치, 유족 상담 진행 ④ 빈소 현황 관리 및 조문객 등의 문의 응대 ⑤ 매점 물품 배달 등 시설 관리, 조문객 안내 ⑥ 입관 절차 및 발인 준비 ⑦ 정산 및 빈소 정리 등이었다.
이들은 기본급, 포괄수당, 상여분할금, 차량유지비, 식대 등을 합쳐 월 330만원가량의 돈을 받아 왔다. 이는 다른 사업장의 연봉 보다는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었다.
재판부는 먼저 △감시·단속적 근로 등과 같이 근로시간, 근로형태와 업무의 성질을 고려할 때 근로시간의 산정이 어렵고 △포괄임금제를 적용하더라도 근로자에게 불이익이 없고 여러 사정에 비추어 정당하다고 인정돼는 경우 포괄임금제가 유효라고 본(대법원 2014.6.26. 선고 2011도12114 판결 등) 대법원판결을 근거로 들었다.
이를 바탕으로 장례지도사 업무는 근로시간 산정이 어렵다고 봤다. 법원은 "장례지도사들의 업무 중 ①, ④, ⑤ 업무는 상시 밀도 있게 이뤄지는 업무로 보기는 어렵고, 특히 조문객의 문의에 대한 응대나 안내는 장례지도사의 업무로 보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②, ③, ⑥, ⑦ 업무는 시신 운구, 안치, 입관, 발인, 정산 등이 실제 이뤄질 때만 수행한 업무이며, 상조보험회사에서 파견된 장례지도사가 함께 업무를 수행할 경우 업무 밀도는 더욱 떨어진다"며 "이처럼 원고들이 근무했다고 주장한 24시간 내에서도, 원고들이 업무를 하지 않는 대기시간이 많다"고 꼬집었다. 근무 공간 외에 별도로 소파, 운동기구 등이 비치된 '대기 공간'이 있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
근무시간의 편차가 컸다는 점도 지적했다. 사실조회 결과에 따르면 하루 4건의 장례가 있던 날도 있었지만, 한 건의 장례 의뢰가 없는 날도 적지 않았다.
포괄임금제 약정이 근로자들에게 크게 불리하지 않다고도 판단했다.
재판부는 "유사한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장례지도사들도 연장근로수당·야간근로수당·휴일근로수당 등에 관하여는 포괄임금제 약정을 체결하고 있다"며 "이는 장례지도사들의 근로가 근로시간의 산정이 어렵다는 결론을 뒷받침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포괄임금제가 무효여서 연장근로수당 및 야간근로수당을 별도로 지급해야 한다면, 원고들이 지급받는 돈은 동종 업계에서 장례지도사들이 받는 돈의 2~3배에 이르게 된다"고 꼬집었다. 이들이 승소 시 받게 되는 추가 연장야간근로 수당이 400만원이 넘는데, 이를 합산할 경우 월급이 600만원에 육박해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지적이다.
최근 ‘장시간 근로’가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청년층을 중심으로 제기되면서, 포괄임금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취지의 법안이 4건이나 발의된 상태다.
하지만 고용부는 부정적이다. 포괄임금제 오남용 근절은 맞는 방향이지만, 실제로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운 직종, 직군, 사업장이 있기 때문에 제도가 없어질 경우 혼란을 빚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재택근무나 원격 근무의 일상화로 개별 근로시간 측정이 어려워지면서, 포괄임금제에 대한 수요가 커지는 측면도 있다. 유연근로제 활용이 쉽지 않은 한국의 근로시간제도가 이런 현상에 일조하고 있다.
김은지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포괄임금제가 문제 되는 것은 근로시간 산정이 가능함에도 실 근로시간 산정을 하지 않고 포괄 수당을 지급하는 경우"라며 "고정 OT를 이용하고 있는 사업장이라면 지급된 수당과 근로시간을 비교해서 지급된 수당이 낮지 않은지를 확인하는 등 점검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전화 응대 등도 근로시간으로 인정해 달라” 법원에 소송
서울고법 “업무 밀도 떨어지고, 대기시간 많다” 꼬집고
“근로자 주장대로라면 타사업장 연봉의 2~3배 … 비현실적”
장례지도사의 업무는 근로시간 산정이 어렵기 때문에 포괄임금제를 활용해도 유효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특히 포괄임금제가 무효라는 근로자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이들의 임금이 타 사업장에 비해 2~3배 높아지는 등 비현실적이라고 법원은 지적했다.서울고등법원 제15민사부는 최근 서울 양천구 소재 병원의 장례식장에서 일하다 2019년 6월 퇴직한 장례지도사 3명과 장례식장 조리사가 장례식장 운영자들을 상대로 청구한 임금 소송에서 이같이 판단하고 1심 판결을 뒤집었다.
24시간 격일제로 근무한 이들의 연봉 근로계약서에는 "임금은 연봉제로 하며, 연봉에는 약정급여, 기본급, 포괄수당, 상여금 등을 포함한다" "포괄수당에는 연장, 시간 외, 야간근로수당 등의 법정 제수당이 포함"이라는 내용의 포괄임금제 약정(정액수당제)이 담겨 있었다. 이에 대해 장례지도사들은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운 경우도 아니고, 근로자들에게 불리한 포괄임금 계약은 무효"라며 연장근로수당 및 야간근로수당을 별도로 계산해 1인당 7000~8000만원을 추가 지급하라는 소송을 냈다.
이들이 주장한 업무는 ①장례식장 예약과 문의 전화 응대 ②운구차로 시신 운구 ③시신 위생·소독 후 안치, 유족 상담 진행 ④ 빈소 현황 관리 및 조문객 등의 문의 응대 ⑤ 매점 물품 배달 등 시설 관리, 조문객 안내 ⑥ 입관 절차 및 발인 준비 ⑦ 정산 및 빈소 정리 등이었다.
이들은 기본급, 포괄수당, 상여분할금, 차량유지비, 식대 등을 합쳐 월 330만원가량의 돈을 받아 왔다. 이는 다른 사업장의 연봉 보다는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었다.
법원 "장례지도사 근로시간 산정 어려워"
법원은 포괄임금제가 무효라고 판단한 1심을 뒤집고 사업주 측의 손을 들어줬다.재판부는 먼저 △감시·단속적 근로 등과 같이 근로시간, 근로형태와 업무의 성질을 고려할 때 근로시간의 산정이 어렵고 △포괄임금제를 적용하더라도 근로자에게 불이익이 없고 여러 사정에 비추어 정당하다고 인정돼는 경우 포괄임금제가 유효라고 본(대법원 2014.6.26. 선고 2011도12114 판결 등) 대법원판결을 근거로 들었다.
이를 바탕으로 장례지도사 업무는 근로시간 산정이 어렵다고 봤다. 법원은 "장례지도사들의 업무 중 ①, ④, ⑤ 업무는 상시 밀도 있게 이뤄지는 업무로 보기는 어렵고, 특히 조문객의 문의에 대한 응대나 안내는 장례지도사의 업무로 보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②, ③, ⑥, ⑦ 업무는 시신 운구, 안치, 입관, 발인, 정산 등이 실제 이뤄질 때만 수행한 업무이며, 상조보험회사에서 파견된 장례지도사가 함께 업무를 수행할 경우 업무 밀도는 더욱 떨어진다"며 "이처럼 원고들이 근무했다고 주장한 24시간 내에서도, 원고들이 업무를 하지 않는 대기시간이 많다"고 꼬집었다. 근무 공간 외에 별도로 소파, 운동기구 등이 비치된 '대기 공간'이 있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
근무시간의 편차가 컸다는 점도 지적했다. 사실조회 결과에 따르면 하루 4건의 장례가 있던 날도 있었지만, 한 건의 장례 의뢰가 없는 날도 적지 않았다.
포괄임금제 약정이 근로자들에게 크게 불리하지 않다고도 판단했다.
재판부는 "유사한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장례지도사들도 연장근로수당·야간근로수당·휴일근로수당 등에 관하여는 포괄임금제 약정을 체결하고 있다"며 "이는 장례지도사들의 근로가 근로시간의 산정이 어렵다는 결론을 뒷받침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포괄임금제가 무효여서 연장근로수당 및 야간근로수당을 별도로 지급해야 한다면, 원고들이 지급받는 돈은 동종 업계에서 장례지도사들이 받는 돈의 2~3배에 이르게 된다"고 꼬집었다. 이들이 승소 시 받게 되는 추가 연장야간근로 수당이 400만원이 넘는데, 이를 합산할 경우 월급이 600만원에 육박해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지적이다.
최근 ‘장시간 근로’가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청년층을 중심으로 제기되면서, 포괄임금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취지의 법안이 4건이나 발의된 상태다.
하지만 고용부는 부정적이다. 포괄임금제 오남용 근절은 맞는 방향이지만, 실제로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운 직종, 직군, 사업장이 있기 때문에 제도가 없어질 경우 혼란을 빚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재택근무나 원격 근무의 일상화로 개별 근로시간 측정이 어려워지면서, 포괄임금제에 대한 수요가 커지는 측면도 있다. 유연근로제 활용이 쉽지 않은 한국의 근로시간제도가 이런 현상에 일조하고 있다.
김은지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포괄임금제가 문제 되는 것은 근로시간 산정이 가능함에도 실 근로시간 산정을 하지 않고 포괄 수당을 지급하는 경우"라며 "고정 OT를 이용하고 있는 사업장이라면 지급된 수당과 근로시간을 비교해서 지급된 수당이 낮지 않은지를 확인하는 등 점검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