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벤허의 경주'가 말하는 승리방정식
어렸을 때 명화 ‘벤허’를 본 기억이 생생하다. 로마 지배 시대 예루살렘에서의 전차경주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벤허는 로마군 사령관 메살라와 전차경주를 한다. 메살라는 잔인하게 말을 채찍으로 후려갈기면서 몰아세운다.

반면 벤허는 채찍도 없이 말들과 교감하고 용기를 북돋워 가며 달린 끝에 승리한다. 자신의 백마 네 마리의 특성에 맞춰 적재적소에 배치한 것이 승패를 갈랐다. 원형 경기장의 특성을 반영해 빨리 달리는 말은 가장 바깥에, 차분하게 따라가며 전차를 내달리게 하는 말은 가장 안쪽에, 투지와 끈기가 있는 말은 중간에 배치했다. 상황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해 성과를 도모하는 것이 ‘벤허의 리더십’이다.

다양한 학문과 기술의 융합체인 제약바이오산업을 육성하는 데 이 같은 리더십은 매우 중요하다. 혁신적 신약과 양질의 후발의약품(제네릭), 개량신약과 바이오테크 기업가정신 모두 중요한 요소다. 이를테면 빠르게 달리는 말은 ‘글로벌 혁신 신약’, 상대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말은 ‘제네릭’, 투지와 끈기로 이끌어갈 동력은 ‘개량신약과 바이오테크 기업’인 셈이다.

세계 각국은 저마다 상황에 맞는 산업 전략을 취한다. 미국, 유럽 등 선발 강국은 블록버스터 신약에 과감하게 투자해 고부가가치를 창출한다. 자국의 산업 기반이 취약한 호주, 동남아시아 등은 의약품을 대부분 수입하기 때문에 가격을 낮게 책정하는 데 집중한다. 반면 완제의약품 자급률이 80%에 달하는 우리나라는 제네릭을 기반으로 연구개발에 재투자하고, 개량신약을 징검다리 삼아 신약 개발 국가의 역량을 키워나가고 있다.

제네릭은 건강보험 재정 절감에도 기여한다. 오리지널 의약품의 특허가 끝나 제네릭이 출시되면 오리지널의 53.55% 수준에서 가격이 책정된다. 제네릭의 순기능은 팬데믹, 국제 정세 변화 등 갑작스러운 위기 상황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세계 각국은 의약품 공급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우리나라도 특정 성분의 해열진통제 수요가 급증했지만 대체 가능한 제네릭 종류가 70여 종에 달해 공급 부족 사태를 겪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제네릭을 복제약이라고 평가절하한다. 그러나 양질의 제네릭이나 개량신약은 단순 복제물이 아니라 연구개발의 산물로 원개발사 제품과 동등하거나 더 좋은 성능을 인정받은 의약품이다.

글로벌 제약바이오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산업 육성 전략이 뒷받침돼야 한다. 신약 개발은 당연히 중요하지만 상당한 시간과 기술을 요한다. 지금 잘할 수 있는 것부터 살려 나가는 것도 매우 중요한 전략이다. 제네릭과 개량신약의 가치를 인식하고, 생태계 전체를 발전시켜야 제약바이오 강국의 결승점에 도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