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에게 물려줄 아버지 고사성어] 의지를 품은 아이는 스스로 자란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한경닷컴 더 라이프이스트
그해 12월 31일 큰 아이가 태어났다. 사무실에서 송년회 중에 전화를 받았다. 늦장가 간 그해 아들을 얻었다고 누가 얘기하자 엄숙하던 송년회가 축하 술잔이 오가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만취해 동네 산부인과 병원에서 본 내 첫 자식은 그저 핏덩이였다. 신년 연휴라 이튿날 아버지는 바로 퇴원하라고 했다. 언덕길이 내려다보이는 마당에서 아버지는 어머니가 싸안고 온 당신 손자를 포대기를 들추고 빼꼼히 들여다봤다.
짐을 들여놓고 마당으로 나온 내게 아버지는 마침 내리는 눈을 길조(吉兆)라며 서설(瑞雪)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비와 눈을 비교하면서 눈이 더 좋다며 기분 좋아했다. 눈이 내리면 하늘이 맑아서 보기 좋다. 눈은 비보다 녹는 시간이 오래 걸려 땅에 더 오래 머문다. 둘 다 씻어내는 정화작용을 하지만, 눈은 모든 것을 덮어준다. 아버지는 “손자가 집에 오는 날 눈이 내린 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축하 선물이다. 손자가 눈의 속성을 닮아 모든 것을 감싸주며 자라기를 바라는 희망의 메시지다”라며 기쁨을 표현했다.
아버지는 “손자는 내 아들의 아들이다. 대를 이어가는 존재다. 사랑과 희망의 대상이다. 내가 다시 한번 부모가 될 수 있으므로 새로운 시작의 뜻이 있다”라면서 새 각오와 희망을 다지게 한다고도 했다. 이어 아버지는 다섯 가지 유념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해 설명했다. 이런 깨우침이다. 자식은 독립적인 인격체다. 그의 생각과 감정을 존중하라. 자식은 네 재산이 아니다.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되는, 사랑 받을 자격이 있는 존재다. 자식에게 네 희망을 얹지 마라. 아이는 네 삶에 큰 선물이다. 아버지는 “네 자식에게 아버지인 너는 가장 중요한 멘토이자 롤 모델이다. 부모의 언행이 자식의 인격 형성에 절대적이다”라며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일러줬다. 자존감을 손상하는 폭언을 절대 하지 마라. 잘못을 지적할 때도 비난하지 마라. 자신감을 떨어뜨린다. 다른 집 아이와 비교해 열등감을 심어주어서도 안 된다. 자식을 무시하면 상처를 준다. 자식과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서 신뢰를 보여주어라.
눈발이 굵어지자 방으로 들어와서 아버지가 말을 이으며 꺼낸 고사성어가 ‘영설독서(映雪讀書)’다. 눈의 빛에 비쳐서 글을 읽는다는 말이다.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에 힘쓰는 모습을 뜻한다. 중국 당나라 이한(李瀚)이 어린이 학습서로 엮은 ‘몽구(蒙求)’에 나온다. 진(晉)나라 때 손강(孫康)은 영민하고 공부를 좋아했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워 등불을 밝힐 기름을 사지 못했다. 손강은 쌓인 눈에서 발하는 빛으로 면학에 열중해 어사대부(감찰원장)에까지 벼슬이 올랐다.
아버지는 “고사가 놓친 부분이 있다. 눈 빛(雪光)으로 책을 읽은 그의 아이디어에만 초점이 맞춰졌다. 중요한 건 손강의 책을 읽으려는 의지다. 그에게 그런 의지가 없었으면 눈 빛에 책을 읽는 아이디어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라며 의지에 주목하라고 했다. 이어 “어린아이도 의지가 있다. 의지는 어떤 행동을 하기로 결심하고 실천하는 힘이다. 서투르지만, 어린이도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따라 행동을 선택한다”고 강조하며 “손강이 그런 행동을 하기로 결심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아마 목표를 정했을 것이다. 목표를 정하면 의지가 강해진다. 강한 의지는 자신의 행동에 스스로 동기를 부여한다”라고 손강의 행동을 분석했다.
아버지는 “시킨다고 공부하지 않는다. 강제하는 힘이 떨어지면 이내 잊고 만다. 그러나 스스로 책을 읽겠다는 의지가 생기면 그 의지가 힘이 되어 끝까지 공부하게 되는 거다”라며 의지는 삶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데 필요한 힘을 낸다고 했다. 아버지는 이어 “아이는 스스로 자란다. 부모의 역할은 아이를 꾸준하게 관찰해 의지가 싹트는 환경을 만들고, 의지를 잘 가꿔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하고, 굳세게 밀고 나가게 돕는 거다. 결국 아이가 하고 싶어하는 일이다. 뭐가 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작은 일이라도 자기 의지를 가지고 한 일이라야 의미있다”고 결론지으며 “엄마가 대신 그려준 그림으로 미술대회 1등상을 받은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아버지는 “인간의 삶은 언제나 목적 실현의 과정이다. 이런 활동의 근거가 의지다. 의지는 가치관, 신념, 경험, 목표 등 다양한 요인에 영향을 받는다. 의지를 키우기 위해서는 자식에게 여러 기회와 환경을 만들어주고 자식이 만든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했다. 아버지는 자식 훈육은 ‘이끄는 게 아니라 밀어주는 것’이라는 점을 두세 번 분명하게 강조했다. 손주가 말귀를 알아들을 때쯤이면 반드시 키워줘야 할 덕목이 의지력이다. 의지를 품은 아이는 스스로 자라기 때문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짐을 들여놓고 마당으로 나온 내게 아버지는 마침 내리는 눈을 길조(吉兆)라며 서설(瑞雪)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비와 눈을 비교하면서 눈이 더 좋다며 기분 좋아했다. 눈이 내리면 하늘이 맑아서 보기 좋다. 눈은 비보다 녹는 시간이 오래 걸려 땅에 더 오래 머문다. 둘 다 씻어내는 정화작용을 하지만, 눈은 모든 것을 덮어준다. 아버지는 “손자가 집에 오는 날 눈이 내린 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축하 선물이다. 손자가 눈의 속성을 닮아 모든 것을 감싸주며 자라기를 바라는 희망의 메시지다”라며 기쁨을 표현했다.
아버지는 “손자는 내 아들의 아들이다. 대를 이어가는 존재다. 사랑과 희망의 대상이다. 내가 다시 한번 부모가 될 수 있으므로 새로운 시작의 뜻이 있다”라면서 새 각오와 희망을 다지게 한다고도 했다. 이어 아버지는 다섯 가지 유념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해 설명했다. 이런 깨우침이다. 자식은 독립적인 인격체다. 그의 생각과 감정을 존중하라. 자식은 네 재산이 아니다.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되는, 사랑 받을 자격이 있는 존재다. 자식에게 네 희망을 얹지 마라. 아이는 네 삶에 큰 선물이다. 아버지는 “네 자식에게 아버지인 너는 가장 중요한 멘토이자 롤 모델이다. 부모의 언행이 자식의 인격 형성에 절대적이다”라며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일러줬다. 자존감을 손상하는 폭언을 절대 하지 마라. 잘못을 지적할 때도 비난하지 마라. 자신감을 떨어뜨린다. 다른 집 아이와 비교해 열등감을 심어주어서도 안 된다. 자식을 무시하면 상처를 준다. 자식과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서 신뢰를 보여주어라.
눈발이 굵어지자 방으로 들어와서 아버지가 말을 이으며 꺼낸 고사성어가 ‘영설독서(映雪讀書)’다. 눈의 빛에 비쳐서 글을 읽는다는 말이다.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에 힘쓰는 모습을 뜻한다. 중국 당나라 이한(李瀚)이 어린이 학습서로 엮은 ‘몽구(蒙求)’에 나온다. 진(晉)나라 때 손강(孫康)은 영민하고 공부를 좋아했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워 등불을 밝힐 기름을 사지 못했다. 손강은 쌓인 눈에서 발하는 빛으로 면학에 열중해 어사대부(감찰원장)에까지 벼슬이 올랐다.
아버지는 “고사가 놓친 부분이 있다. 눈 빛(雪光)으로 책을 읽은 그의 아이디어에만 초점이 맞춰졌다. 중요한 건 손강의 책을 읽으려는 의지다. 그에게 그런 의지가 없었으면 눈 빛에 책을 읽는 아이디어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라며 의지에 주목하라고 했다. 이어 “어린아이도 의지가 있다. 의지는 어떤 행동을 하기로 결심하고 실천하는 힘이다. 서투르지만, 어린이도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따라 행동을 선택한다”고 강조하며 “손강이 그런 행동을 하기로 결심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아마 목표를 정했을 것이다. 목표를 정하면 의지가 강해진다. 강한 의지는 자신의 행동에 스스로 동기를 부여한다”라고 손강의 행동을 분석했다.
아버지는 “시킨다고 공부하지 않는다. 강제하는 힘이 떨어지면 이내 잊고 만다. 그러나 스스로 책을 읽겠다는 의지가 생기면 그 의지가 힘이 되어 끝까지 공부하게 되는 거다”라며 의지는 삶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데 필요한 힘을 낸다고 했다. 아버지는 이어 “아이는 스스로 자란다. 부모의 역할은 아이를 꾸준하게 관찰해 의지가 싹트는 환경을 만들고, 의지를 잘 가꿔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하고, 굳세게 밀고 나가게 돕는 거다. 결국 아이가 하고 싶어하는 일이다. 뭐가 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작은 일이라도 자기 의지를 가지고 한 일이라야 의미있다”고 결론지으며 “엄마가 대신 그려준 그림으로 미술대회 1등상을 받은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아버지는 “인간의 삶은 언제나 목적 실현의 과정이다. 이런 활동의 근거가 의지다. 의지는 가치관, 신념, 경험, 목표 등 다양한 요인에 영향을 받는다. 의지를 키우기 위해서는 자식에게 여러 기회와 환경을 만들어주고 자식이 만든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했다. 아버지는 자식 훈육은 ‘이끄는 게 아니라 밀어주는 것’이라는 점을 두세 번 분명하게 강조했다. 손주가 말귀를 알아들을 때쯤이면 반드시 키워줘야 할 덕목이 의지력이다. 의지를 품은 아이는 스스로 자라기 때문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