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변동림이자 김향안, 두 개의 존재로 완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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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최승연의 뮤지컬 인물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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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는 러스티의 선택을 존중하는 척 했지만, 실제로는 그녀를 옆에 두고 싶은 대니. 고민하며 밤길을 걷던 대니는 갑자기 상점의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서 다른 자아(alter ego)가 분리되는 느낌을 받는다. 그는 진심으로 러스티를 사랑한다면 보내줘야 한다고 대니를 압박하더니, 급기야 유리창 밖으로 튀어나와 대니와 함께 춤을 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제작된 뮤지컬 영화 '커버 걸'의 한 장면이다. 영화는 보수적이고 낭만적인 젠더 감수성을 갖고 있지만 '라라랜드'와 '멤피스'의 문제의식으로 발전되는 이슈를 품고 있다.
그런데 사실 우리에게 더 익숙한 것은 대니의 분리된 자아가 서로 대결하는 모습이다. 뮤지컬, 특히 한국 창작 뮤지컬은 한 인물의 자아를 둘 이상으로 나눠 그들이 갈등하고 대결하며 서로 파괴하려다 벌어지는 사건을 자주 다룬다.

변동림과 김향안은 실존인물 변동림/김향안으로부터 생애주기별로 분리된 존재들이다. 변동림은 시인 이상과 결혼한 20대의 그녀이며, 김향안은 화가 김환기와 결혼한 이후의 삶을 사는 그녀다. 이들의 분리는 다음과 같은 삶에 대한 질문과 성찰을 위한 것이다.
왜 우리는 때로 실패로 귀결되었던 과거의 선택을 다시 하게 되는 것일까. 만약 같은 선택을 한다면 현재의 나도 실패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일까. 그럼에도 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지금의 나는 실패한 존재인가. 그렇다면 과거의 나를 부정해야 현재의 내가 건강해질 수 있는 것일까. '라흐 헤스트'는 동림과 향안을 통해, 우리의 삶은 선택의 순간이 모여 구성되는 것이며 모든 선택을 내렸던 당시의 ‘나’는 그 자체로 인정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자신 안에 환기의 이름을 품고 ‘우리’로 사는 삶을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향안은 환기의 예술을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후원하는 동반자가 된다. 이런 향안의 모습에는 미쓰코시 백화점 옥상으로 이상을 데려가 그가 시를 완성하도록 도운 동림의 모습이 겹쳐있다. 희생이 아니라, 함께 하는 삶에 대한 응원과 배려가 ‘같은’ 선택으로 이들을 이끌었던 것이다.

이것은 바로 향안의 얼굴로 “나는 변동림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했던 환기와의 첫 순간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변동림/김향안의 예술적 삶이다. 내가 나를 응원하고 위로하는 예술적 순간이, 동림과 향안이라는 두 인물에게서 이처럼 펼쳐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