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석·지오반나 부부 강릉 호텔 복구 도와 "조금이라도 돕고 싶었다"
태풍 때 침수된 숙소 떠날 수 없었던 한·이탈리아 관광객 부부
"묵었던 호텔이 침수되는 걸 보고 그냥 갈 수 없었어요."

태풍 카눈이 한반도를 통과하면서 강릉을 비롯한 강원 동해안에 엄청난 양의 비를 퍼부어 강릉시 경포 진안상가 일원이 물에 잠긴 지난 10일.

이곳에 있는 한 호텔에서 이틀을 묵었던 한 관광객 부부는 이날 강릉에서의 관광 겸 피서를 끝내고 서울로 떠나기로 했던 애초 계획을 바꿔 지하 주차장 등이 침수된 호텔의 응급 복구를 도왔다.

강명석·지오반나(이탈리아) 부부는 호텔 측이 '폭우가 쏟아지니 빨리 나가는 게 좋겠다'고 했지만, 침수된 호텔을 보고 발길을 돌릴 수 없었다.

이탈리아에 거주하는 부부는 지난 5월 중순 국내에 들어와 피서도 즐기고 바다도 볼 겸 강릉을 찾았다가 태풍을 만난 것이다.

오전 10시께부터 조금씩 시작된 침수 상황은 곧 발목 이상으로 빠르게 물이 차올랐고, 물이 역류하면서 급속히 불어나 양수기로 물을 퍼내도 좀처럼 물이 줄어들지 않는 상황이 계속됐다.
태풍 때 침수된 숙소 떠날 수 없었던 한·이탈리아 관광객 부부
태풍 때 침수된 숙소 떠날 수 없었던 한·이탈리아 관광객 부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쏟아붓는 빗줄기로 물이 계속 차올라 삽으로 흙을 걷어내고 양동이로 물을 퍼내는 작업은 저녁까지 이어졌다.

부부는 물을 빼내느라 점심도 거른 채 호텔 측이 제공한 빵과 컵라면으로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는 등 자기 일처럼 물을 퍼내고 삽질했다.

부부가 발길을 돌리지 않고 머물며 봉사하게 된 데는 이탈리아 출신 아내의 따뜻한 마음씨가 매우 컸다.

남편 강씨는 16일 "아내가 상황을 보더니 '긴급한 상황 같으니 조금이라도 도와주고 싶다'고 했다"며 "좀 도움이 됐으면 해서 시작한 게 비가 계속 퍼부으면서 저녁때까지 복구작업을 도왔다"고 말했다.

부부의 따뜻한 도움의 손길은 침수됐던 호텔이 정상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됐고 이런 사실은 뒤늦게 알려지게 됐다.
태풍 때 침수된 숙소 떠날 수 없었던 한·이탈리아 관광객 부부
10월 이탈리아로 출국한다는 부부는 "태풍으로 많은 분이 피해를 겪고 많은 분이 도움을 준 것으로 안다"며 "우리는 아주 작은 도움이어서 굳이 알리고 싶지 않다"고 몇차례 고사하다 거듭된 요청에 작은 소리로 이름을 밝혔다.

상습 침수지역인 이곳 일대는 이날 허리춤까지 올 정도로 물이 들이 차 주변 상가와 숙박업소 등이 대부분 물에 잠겼다.

호텔 측은 이 부부에게 저녁 식사를 대접하고 하룻밤 더 묵고 갈 것을 권했고 부부는 물이 다 빠지고 어느 정도 정상을 되찾은 다음 날 강릉을 떠났다.

호텔 주인 박주국(59)씨는 "많은 비가 내려 호텔 일원의 침수가 우려돼 부부에게 빨리 가라고 권했는데도 안 가고 저녁때까지 함께 물을 퍼주고 삽질까지 해주며 도움을 줬다"며 "그 고마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말했다.
태풍 때 침수된 숙소 떠날 수 없었던 한·이탈리아 관광객 부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