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용진의 의료와 사회] '건강'과 '복지' 통합 미래형 법체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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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행정 칸막이에 우는 중증장애인 가족
당사자 입장서 지원 창의적 방안 마련을
권용진 서울대병원 공공진료센터 교수
당사자 입장서 지원 창의적 방안 마련을
권용진 서울대병원 공공진료센터 교수
![[권용진의 의료와 사회] '건강'과 '복지' 통합 미래형 법체계가 필요하다](https://img.hankyung.com/photo/202308/07.28385102.1.jpg)
세계적으로 경제 순위가 10위권 국가이고 사회보장을 이념으로 하는 대한민국에서 2023년에 벌어지는 일이라고 하기엔 아쉬움이 큰 현실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다른 이유도 있다. 집에서 사용하는 흡인튜브가 급여대상이 되지 않는 이유를 보면 알 수 있다. ‘흡인’이라는 의료행위는 의료인만 해야 하는데, 집에서 보호자나 장애인활동보조사가 하는 의료행위에 딸린 치료 재료를 급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서 만든 면허제도가 자식을 돌보는 어머니의 행위마저 통제하고 있는 셈이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보호자들에게 집에서 발생하는 의료 사고에 대해 책임지겠다는 서약을 받고 그 보호자를 대상으로 교육을 제공한 뒤 급여하면 될 일이다. 이런 방법을 몰라서 제도 정비가 늦어지는 건 아닐 것이다. 아직까지 한국 사회가 ‘소수’의 중증장애인 문제에 깊은 관심과 애정을 쏟을 만큼 여유가 없다는 편이 옳다.
우리나라의 법 제도와 행정 관점에서 보면 흡인튜브 급여는 건강보험 정책이고, 장애인활동지원사 제도는 장애인복지 정책이다. 그러나 중증장애인을 집에서 돌봐야 하는 가족이나 당사자 입장에서는 동시간에 발생하는 일상이다. 그들에게 보건과 복지는 구분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에게 질병 없이 육체적·정신적·사회적으로 완전한 안녕 상태인 ‘건강’이나 ‘행복한 인간의 삶’인 ‘복지’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법의 칸막이를 허물어야 행정의 칸막이를 허물 수 있다. 식민지 시대에 만들어진 ‘보건’과 ‘복지’라는 근대적 프레임은 수명을 다했다. ‘건강’과 ‘복지’를 당사자 입장에서 제공할 수 있는 창의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한국식 건강복지 법체계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