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투병 중에도 작곡…모든 어머니 위한 헌정곡 만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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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음악 작곡가 류재준 인터뷰
2023 국립합창단 여름합창축제
오는 31일 '미사 솔렘니스' 세계 초연
"세상의 모든 어머니를 위한 헌정곡"
"친숙한 작곡 기법 사용…청중 공감 원해"
사회 문제 계속해서 목소리 내온 작곡가
"좋은 음악 전하는 데 끊임없이 노력하고파"
2023 국립합창단 여름합창축제
오는 31일 '미사 솔렘니스' 세계 초연
"세상의 모든 어머니를 위한 헌정곡"
"친숙한 작곡 기법 사용…청중 공감 원해"
사회 문제 계속해서 목소리 내온 작곡가
"좋은 음악 전하는 데 끊임없이 노력하고파"
류재준(53)은 한국보다 클래식의 본고장 유럽에서 더 유명한 현대음악 작곡가다. 2006년 폴란드 라보라토리움 현대음악제 위촉으로 작곡한 바이올린 협주곡 1번으로 존재감을 알렸고, 그로부터 2년 뒤 루트비히 판 베토벤 음악제에서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기리기 위한 작품 ‘진혼 교향곡’을 초연하면서 세계적인 작곡가 반열에 올라섰다.
이후 류재준의 삶은 변했다. 유럽 음악계가 경쟁하듯 류재준에게 매달리면서다. 영국 로열 필하모닉, 헬싱키 필하모닉, 폴란드 국립방송교향악단 등 해외 유수 악단들이 그의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핀란드 난탈리 음악제와 독일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페스티벌에서는 상주 작곡가로, 폴란드 고주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서는 상임 작곡가로 류재준을 임명했다. 2015년에는 폴란드 정부의 1급 훈장 ‘글로리아 아르티스’의 수훈 주인공이 됐다.
축배를 들어올리는 와중에 위기가 찾아왔다. 2017년 림프종 진단을 받게 된 것. 암에 걸려 절망에 찬 그 순간에 류재준은 작곡을 생각했다. 마지막 작품을 남길 수 있다면 무얼 쓸 수 있을까. 고심 끝에 생각한 것은 작곡가들이 평생에 딱 한 번 자신의 흔적을 남기듯 쓴다는 ‘미사 솔렘니스(장엄 미사)’였다.
그렇게 시작된 류재준의 ‘미사 솔렘니스’가 6년 만에 세상에 나온다. 오는 31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2023 국립합창단 여름합창축제에서 세계 초연된다. 윤의중 예술감독이 지휘하는 국립합창단, 시흥시립합창단과 소프라노 이명주, 알토 김정미, 테너 국윤종, 베이스 바리톤 김재일 등이 함께 무대에 오른다. 류재준은 17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라 생각했던 때 머릿속으로 수없이 구상해 온 작품을 무대에 올릴 수 있다는 데 감사하다”며 “기쁘면서도 한편으론 긴장되는 복합적인 심경”이라고 했다. 그는 “내 음악으로 고통을 겪는 누군가가 마음에 치유를 얻을 수 있다면 그걸로 더 바랄 게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류재준은 악착같은 항암치료 끝에 사자의 손길에서 일단 벗어날 수 있었다.
그에게 ‘미사 솔렘니스’는 어떤 작품이냐고 묻자 “고통받는 세상의 모든 어머니를 위한 헌정곡”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간 많은 일들이 있었잖아요. 코로나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 미얀마 사태 등 세계에서 일어나는 참혹한 비극을 보면서 ‘이 시대에 음악으로 인간을 위로할 수 있다면 누구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이 가장 필요한 일일까’를 고민했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죽어가는 자식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는 어머니보다 고통스러운 존재는 없을 것 같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들의 마음에 조금이나마 평안을 가져다주고 싶단 바람으로 한음 한음 적어나갔습니다.”
현대음악인 데다 무게감 있는 주제를 담고 있지만 그의 곡은 듣기 어렵지 않다. 종교 음악이지만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을 연상시키는 하바네라 리듬을 사용하는 등 청중이 친숙하게 느낄 만한 구간을 여럿 준비해뒀다.
“창조를 위한 음악적 실험도 물론 중요하지만, 청중이 공감할 수 없는 곡이라면 음악의 본래 목적이라 할 수 있는 ‘즐거움’ ‘위로’ 등에 결코 도달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기본적으로 난해하거나 어려운 음악은 지양합니다. 오히려 르네상스 시대부터 고전주의, 낭만주의를 거쳐 발전된 작곡 기법들을 끊임없이 공부하고 이것들을 지금의 음악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도록 하는 데 많은 시간을 쏟는 편이에요. 이번에도 역시 그랬고요.” 류재준은 사회 문제에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온 작곡가다. 2015년에는 세월호 희생자 추모곡을 썼다가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랐고, 2021년에는 한국의 주거 문제를 꼬집는 작품을 발표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전 작곡가이기 전에 이 사회를 살아가는 한 명의 시민이잖아요. 시민은 누구나 자기가 듣고 느낀 것에 대해서 자유롭게 이야기할 권리가 있죠. 전 그걸 음악으로 했을 뿐입니다. 작곡가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이 시대의 사건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감정을 기록하는 것이죠. 작곡가는 창작자 겸 기록자라고 생각해요. 전 제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온 거죠.”
그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일까. “음악가로서 이루고 싶은 거창한 꿈 같은 건 없어요. 그저 조금이나마 더 좋은 음악을 많은 분께 들려드리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음악가로서 이보다 더 필요할 게 있을까요.”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
이후 류재준의 삶은 변했다. 유럽 음악계가 경쟁하듯 류재준에게 매달리면서다. 영국 로열 필하모닉, 헬싱키 필하모닉, 폴란드 국립방송교향악단 등 해외 유수 악단들이 그의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핀란드 난탈리 음악제와 독일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페스티벌에서는 상주 작곡가로, 폴란드 고주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서는 상임 작곡가로 류재준을 임명했다. 2015년에는 폴란드 정부의 1급 훈장 ‘글로리아 아르티스’의 수훈 주인공이 됐다.
축배를 들어올리는 와중에 위기가 찾아왔다. 2017년 림프종 진단을 받게 된 것. 암에 걸려 절망에 찬 그 순간에 류재준은 작곡을 생각했다. 마지막 작품을 남길 수 있다면 무얼 쓸 수 있을까. 고심 끝에 생각한 것은 작곡가들이 평생에 딱 한 번 자신의 흔적을 남기듯 쓴다는 ‘미사 솔렘니스(장엄 미사)’였다.
그렇게 시작된 류재준의 ‘미사 솔렘니스’가 6년 만에 세상에 나온다. 오는 31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2023 국립합창단 여름합창축제에서 세계 초연된다. 윤의중 예술감독이 지휘하는 국립합창단, 시흥시립합창단과 소프라노 이명주, 알토 김정미, 테너 국윤종, 베이스 바리톤 김재일 등이 함께 무대에 오른다. 류재준은 17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라 생각했던 때 머릿속으로 수없이 구상해 온 작품을 무대에 올릴 수 있다는 데 감사하다”며 “기쁘면서도 한편으론 긴장되는 복합적인 심경”이라고 했다. 그는 “내 음악으로 고통을 겪는 누군가가 마음에 치유를 얻을 수 있다면 그걸로 더 바랄 게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류재준은 악착같은 항암치료 끝에 사자의 손길에서 일단 벗어날 수 있었다.
그에게 ‘미사 솔렘니스’는 어떤 작품이냐고 묻자 “고통받는 세상의 모든 어머니를 위한 헌정곡”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간 많은 일들이 있었잖아요. 코로나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 미얀마 사태 등 세계에서 일어나는 참혹한 비극을 보면서 ‘이 시대에 음악으로 인간을 위로할 수 있다면 누구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이 가장 필요한 일일까’를 고민했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죽어가는 자식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는 어머니보다 고통스러운 존재는 없을 것 같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들의 마음에 조금이나마 평안을 가져다주고 싶단 바람으로 한음 한음 적어나갔습니다.”
현대음악인 데다 무게감 있는 주제를 담고 있지만 그의 곡은 듣기 어렵지 않다. 종교 음악이지만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을 연상시키는 하바네라 리듬을 사용하는 등 청중이 친숙하게 느낄 만한 구간을 여럿 준비해뒀다.
“창조를 위한 음악적 실험도 물론 중요하지만, 청중이 공감할 수 없는 곡이라면 음악의 본래 목적이라 할 수 있는 ‘즐거움’ ‘위로’ 등에 결코 도달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기본적으로 난해하거나 어려운 음악은 지양합니다. 오히려 르네상스 시대부터 고전주의, 낭만주의를 거쳐 발전된 작곡 기법들을 끊임없이 공부하고 이것들을 지금의 음악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도록 하는 데 많은 시간을 쏟는 편이에요. 이번에도 역시 그랬고요.” 류재준은 사회 문제에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온 작곡가다. 2015년에는 세월호 희생자 추모곡을 썼다가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랐고, 2021년에는 한국의 주거 문제를 꼬집는 작품을 발표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전 작곡가이기 전에 이 사회를 살아가는 한 명의 시민이잖아요. 시민은 누구나 자기가 듣고 느낀 것에 대해서 자유롭게 이야기할 권리가 있죠. 전 그걸 음악으로 했을 뿐입니다. 작곡가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이 시대의 사건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감정을 기록하는 것이죠. 작곡가는 창작자 겸 기록자라고 생각해요. 전 제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온 거죠.”
그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일까. “음악가로서 이루고 싶은 거창한 꿈 같은 건 없어요. 그저 조금이나마 더 좋은 음악을 많은 분께 들려드리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음악가로서 이보다 더 필요할 게 있을까요.”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