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제공.
프랑스 동화 ‘푸른 수염’은 연쇄 살인마 이야기다. 부를 이용해 여러 번 결혼하지만 그의 아내들은 매번 실종된다. 새 아내와 신혼을 즐기던 어느 날, 오래 집을 비우게 된 푸른 수염은 아내에게 열쇠 꾸러미를 주며 당부한다. 다른 방들은 다 열어도 저택 구석에 있는 한 방은 열지 말라고.

호기심을 참지 못한 아내는 방문을 연다. 방 안에는 실종됐던 전 부인들이 죽어 있다. 경악한 아내는 열쇠를 떨어뜨리고, 열쇠에는 피가 묻는다. 아무리 닦아도 핏자국은 지워지지 않았다. 그때 푸른 수염이 돌아온다. 열쇠의 핏자국을 보고 돌변해 아내를 또 죽이려던 그는 때마침 들이닥친 아내의 오빠들에게 죽임을 당한다.

풀리지 않는 의문은 푸른 수염이 왜 매번 아내를 시험하고 죽였는지다. 자신의 실체를 알고도 사랑해줄 여자를 찾고 있었을까. 그렇다면 첫 번째 아내는 왜 죽였을까. 어쩌면, 애초에 해치기 위해 결혼한 건 아닐까. 그에게 사랑은 살인을 합리화하기 위한 도구였던 건 아닌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중 수작으로 꼽히는 스릴러물 <너의 모든 것(You)>은 '현대판 푸른 수염' 이야기다. 사랑을 위해 어떤 짓이든 하는 주인공 조 골드버그(펜 바드글리)의 이야기로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빠른 전개와 긴장감 있는 연출, 매회 반전으로 호평을 받으며 시즌이 발표될 때마다 영어권 TV 시청작 1위에 올랐다. 올해 상반기 시즌 4가 공개됐고 내년 마지막 시즌인 시즌 5가 방영될 예정이다.
연쇄살인마는 사랑했던 여자들을 죽인 자신에 환멸을 느꼈을까
○“당신을 위해서는 못 넘을 선이 없어요”

서점 직원인 조는 겉으로는 책을 사랑하는 조용하고 섬세한 남자다. 그러나 독백으로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그의 속내에는 범죄자의 특성은 죄다 담겨 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데 죄책감이 없고, 거짓말을 밥 먹듯 한다. 매번 자신의 행동에 이유가 있다며 범죄를 합리화하고 피해자의 소지품인 ‘전리품’도 모은다.

조는 시즌마다 새로운 사랑을 한다. 매번 온전하게 사랑하고 사랑받는 관계를 꿈꾼다. 그러나 방식은 집착과 통제다. 관심이 가는 여성과 대화를 하기 전에 그녀의 SNS를 뒤지고, 그녀를 미행하고 훔쳐보며 집안에 잠입한다. 때로 스마트폰을 훔치거나 해킹해 온갖 정보를 파악하고 성향을 추측하면서 상대가 좋아하는 말과 행동을 철저하게 계산해 마음을 산다.

그녀의 삶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면 남자친구나 전 남편, 친구와 가족을 막론하고 해친다. 이들의 죽음으로 상대가 느낄 슬픔과 상실감은 그에게 중요하지 않다. 상대가 스스로 선택하고 결과에 책임을 지도록 존중하는 방법은 모른다. 그러다 사랑하던 여성과의 관계가 끝나면, 완벽한 남자친구에서 냉혹한 살인마로 돌변한다. 인간 본연의 감정인 애정과 질투, 상대에 대한 소유욕과 거절당할 때의 원망을 그는 스스로 감내하지 않고 상대를 해치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표출한다.

범죄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지만 조가 아는 사랑 방식은 그뿐이다. 아버지의 가정폭력으로 고통받고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그는 이후 자신을 거둬준 서점 주인의 훈육을 빙자한 학대를 겪으며 자랐다. 그가 배운 사랑은 상대를 위해 나쁜 짓도 할 수 있는 것, 상대가 옳은 길을 가게 하려면 고통을 줄 수도 있는 것이다.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제공.
○그를 믿지 마세요

4개 시즌에서 셀 수도 없이 사람을 죽이지만, 연쇄 살인마라고만 정의하기에 조는 복잡하고 입체적인 캐릭터다.

그는 좋은 사람이고 싶어한다. 마음에서 우러나와서인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인지는 모른다. 어쨌건 어렸을 때의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아이들을 보호하려 애쓰고 길가에서 무거운 짐을 옮기는 어르신도 돕는다. 반면 강자와 부자들 앞에서 비굴해지지 않고 소신을 지킨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가정을 꾸리고 살기를 꿈꾼다.

그는 사랑하던 여자들을 죽인 스스로에게 점점 환멸을 느낀다. 사랑했지만 결국 죽인 전 연인들은 자꾸만 환청으로 나타나 조를 괴롭힌다. 그는 앞으로 집착도 살인도 피하겠다고, 애먼 여성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그러나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하듯, 매 회차 시청자가 안심할 법한 타이밍에 갑자기 사건은 발생하고 반전이 펼쳐진다. 그때서야 시청자들은 거짓말쟁이 범죄자 화자에게 또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조가 점점 쉽게 사람을 해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다시금 깨닫는다. 신뢰할 수 없는 화자가 이끌어가는 극에서는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의 독백 중 어느 부분이 거짓인지, 그가 짜깁기해 보여준 장면 밖에서 사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말이다.

시즌 1의 여주인공 귀네비어 벡이 살해 당하기 직전 한 말은 조의 심리를 꿰뚫어보는 것도 같다. “이건 내 삶이야. 백마 탄 사이코패스한테 사람 정리해달란 적 없어. 당신이 뭔데 나서? 당신은 여자들 인생에 몰래 들어가 마음대로 유린하는 권력이 좋을 뿐이야. 당신과 당신의 비참한 인생을 깔보는 사람을 죽일 완벽한 핑계고.”

네 번의 연애와 한 번의 결혼을 거친 조에게 이제 사랑은, 살인은 어떤 의미일까. 한 개의 시즌을 남겨둔 <너의 모든 것>의 결말이 ‘푸른 수염’과 같을지, 완전히 달라질지 여부는 그의 답에 달렸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