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공방(漢詩工房)] 七夕(칠석), 晏幾道(안기도)
[한시공방(漢詩工房)] 七夕(칠석), 晏幾道(안기도)
[원시]
七夕(칠석)

晏幾道(안기도)

雲幙無多斗柄移(운막무다두병이)
鵲慵烏慢得橋遲(작용오만득교지)
若敎精衛塡河漢(약교정위전하한)
一水還應有盡時(일수환응유진시)

[주석]
* 七夕(칠석) : 전설 속의 견우(牽牛)와 직녀(織女)가 오작교(烏鵲橋)에서 만나는 날인 명절 음력 77일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 이날에 행해지는 세시풍속을 가리키기도 한다.
* 晏幾道(안기도) : 북송(北宋)의 무주(撫州) 임천(臨川) 사람으로 자는 숙원(叔原)이고, 호는 소산(小山)이다. 원풍(元豊) 5(1082)에 영창(潁昌)의 허전진(許田鎭)을 감독하다 퇴직하고 당시 수도였던 개봉(開封)에서 살았다. 문장에 능하고 사()도 잘 지었는데, 감상(感傷)을 드러낸 작품이 많은 것으로 평가된다.
* 雲幙(운막) : 구름 장막. / 無多(무다) : 많지 않다, 두텁지 않다. / 斗柄(두병) : 북두칠성(北斗七星)을 국자 모양으로 보았을 때, 그 자루 부분이 되는 자리에 있는 세 개의 별을 가리킨다. 간단히 북두성 자루로 이해하면 된다. / () : 옮기다, 자리를 옮겨가다.
* 鵲慵(작용) : 까치가 게으르다. / 烏慢(오만) : 까마귀가 태만하다. / 得橋遲(득교지) : 다리를 짓는 게 더디다, 다리를 놓는 게 더디다.
* () : 만약, 만일. / () : ~로 하여금, ~를 시켜 ~을 하게 하다. / 精衛(정위) : 중국의 신화에 나오는 상상 속의 새이다. 전설에 따르면, 염제(炎帝)의 딸인 여와(女娃)가 동해에 놀러갔다가 빠져 죽은 뒤에 정위라는 새로 변했는데, 그 원한을 갚으려고 늘 서산(西山)의 나무와 돌을 입에다 물고서 동해에 빠뜨려서 바다를 메우려 했다고 한다. / () : ~을 메우다. / 河漢(하한) : 은하(銀河), 은하수(銀河水).
* 一水(일수) : 하나의 물, 한 줄기 물. / 還應(환응) : 도리어 응당, 문득 응당. / () : ~이 있다. / 盡時(진시) : 다하는 때.

[번역]
칠석

구름 장막 두텁지 않고
북두성 자루는 자리를 옮겼는데
까치 게으르고 까마귀 태만하여
은하에 다리 놓는 게 더디구나
만일 정위를 시켜
은하수 메우게 한다면
한 줄기 물이니 문득
다하는 때가 응당 있으리

[번역노트]
오늘은 음력으로 77, 칠석(七夕)이다. 칠석은 해마다 한 차례씩 돌아오는 명절이지만, 역자가 생각하기에도 정말 이상하리만큼 비가 내린 날이 그렇지 않은 날보다 훨씬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분명히 더러는 비가 내리지 않기도 하였기 때문에, 견우와 직녀가 눈물도 흘리지 않고 무덤덤하게 만나는 때도 제법 있었을 것으로 여겨보는 군더더기 생각이 이따금 자리하기 마련이었다. 하기야 영겁의 세월을 두고 해마다 한 번씩 만나고 있는 견우와 직녀의 이별이, 지상에서 잠깐 함께하다가 영 이별을 하게 되는 우리네 인간들보다야 훨씬 덜 안타까울 터여서, 만남 자체가 무덤덤한 때도 전혀 없지는 않았을 듯하다. 지상(地上)에서의 1년이 천상(天上)에서의 하루라고 했던 이옥봉(李玉峰)의 시구(詩句)를 차치하고라도, 지상의 세월로 1년에 한 번씩 상봉한다는 견우와 직녀의 숙명(宿命)조차 오히려 부러워할 사람들이 없지 않을 것이다.

역자가 언제부턴가 칠석이 되면 오늘 소개한 이 시를 찾아 읽어보는 것이 거의 버릇이 되다시피 한 까닭은, 지상의 이별이든 천상의 이별이든 이별은 어쨌거나 슬픈 것이고, 드문 만남 역시 어쨌거나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간단(間斷)없는 만남이 바로 애정의 강도(剛度)를 담보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도, 너무나 드문 만남보다는 당연히 더 낫지 않을까고 여기게 되는 범속(凡俗)한 믿음 한 자락을 앞세우며 올해도 이 시를 찾아보게 되었다.

이 시의 제1구는 비가 내릴 기미가 보이지 않은 지 이미 오래 되었음을 말한 것이다. 구름 장막이 많거나 두터워야 비가 올 개연성이 높아지는 법인데, 북두성 자루가 자리를 옮겨갈 만큼 시간이 흘러도 아직 비가 내리지 않는다. 칠석날 내리는 비는 견우와 직녀가 상봉하여 부둥켜안고 쏟아내는 반가움 혹은 서러움의 눈물이므로, 아직 비가 내리지 않는다는 것은 견우와 직녀가 서로 만나지 못했다는 뜻이 된다. 만남이 허여된 칠석날 저녁이 되었음에도 두 사람이 아직 만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시인은 이 원인을 두 사람이 만날 다리를 놓아야 할 까마귀와 까치의 나태(懶怠)에서 찾았다. 2구의 뜻이 바로 이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이 시의 시상(詩想) 전개는 충분히 훌륭하다고 할 수 있지만, 사실 이 시의 하이라이트(Hilight)는 제3구와 제4구에서 구현된 시상이다.

이미 주석에서 소상히 밝혀둔 바이지만, 정위(精衛)는 중국 신화에 나오는 상상 속의 새이다. 염제(炎帝)의 딸인 여와(女娃)가 동해에 빠져 죽어 변한 것으로 알려진 이 새가, 늘 서산(西山)의 나무와 돌을 입으로 물어다가 동해를 메우려고 하였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시인의 시상은 바로 이 비극성(悲劇性)의 연장선 위에서 빛을 발하였다. 동해가 너무나 넓고 깊어 정위가 끝내 메우지 못했다 하더라도, 은하는 그저 한 줄기 강물[一水]일 뿐이므로, 메우고 또 메운다면 언젠가는 다하는 날이 반드시 있으리라는 것이다. 이렇게 원시의 一水라는 시어에 시인이 실어둔 뜻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된다. 훌륭한 시인은 시를 지을 때 단 한 글자도 결코 가볍게 다루지 않는다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두고 시를 대한다면, 시인이 의도한 시상의 깊이와 넓이는 물론 그 지향(指向)을 어느 정도 헤아려볼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소개한 이 시는, 은하수가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이 되고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하여, 강물을 메우는 것을 그 해결책으로 제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역자는 한참 오래전에 이 기발한 해결책에 무릎을 치며 좋아하다가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들어 아래와 같은, 희시(戱詩)에 가까운 시 하나를 지어보게 되었다.

致牽牛與織女(치견우여직녀) 견우와 직녀에게

牽牛與織女(견우여직녀) 견우와 직녀여!
莫恨天無槎(막한천무사) 하늘에 뗏목 없다 한하지 말고
忍待銀河凍(인대은하동) 은하가 얼길 참고 기다렸다가
隨時搭氷車(수시탑빙차) 수시로 썰매를 타 보시게나.

칠석 고사를 원인(遠因)으로 삼고 거기에 좀은 튀는(?) 아이디어 하나를 더하여 지은 역자의 이 시는, 강을 메우는 방식이 아니라 강이 얼기를 기다리는 방식으로 해결책을 제시한 것이다. 은하 역시 하나의 강이므로 날이 추우면 언젠가는 반드시 얼 것으로 여긴 역자의 이 시 또한 독자들에게 얼마간의 재미는 제공하겠지만, 결단코 재미의 궁극(窮極:끝판왕)은 되지 못한다. 역자가 지금껏 만난 칠석관련 시 가운데 아래에 소개할 시보다 더 재미있었던 시는 없었던 듯하다. 그러므로 아래의 시보다 더 재미있는 칠석 시를 역자에게 소개하거나 지어서 보내주는 분에게는, 시원한 냉커피 한 잔과 약간의 다과 정도를 대접할 용의는 충분히 있다는 사실을 여기에 밝혀둔다.

칠석날 밤

김용화

견우직녀 만난다는 칠석날 밤
감나무 아래
모깃불 올리고
떠꺼머리총각들 모여앉아
말미 받아 돌아온
머슴살이 성배 형 연애담을 듣노라면
별자리 돌아 밤은 깊어 -
산골짝 옹달샘
마을 처녀들 목욕하며 쪼잘대는 소리
꺼벙이 노총각을 앞세워
조심조심
오리걸음으로 다가갈 때
자발없는 어떤 놈, 킬킬대어
판을 깨면
앙칼진 처녀들 목청은
밤하늘로 날아가 별이 되어 박히고

자발없다는 말은 행동이 가볍고 참을성이 없다는 뜻이다. 오늘 소개한 북송(北宋) 안기도(晏幾道)의 시는 칠언절구(七言絶句)로 압운자가 ()’, ‘()’, ‘()’이다.

2023. 8. 22.

<한경닷컴 The Lifeist> 강성위(hansh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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