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현 오픈엣지테크놀로지 대표(오픈엣지스퀘어 대표 겸임)
이성현 오픈엣지테크놀로지 대표(오픈엣지스퀘어 대표 겸임)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투자한 영국 ARM이 기업공개(IPO)를 추진하면서 반도체 설계자산(IP) 기업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IP는 반도체의 특정 기능을 구현할 때 필요한 기본 설계도다.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 기업)'로 불리는 퀄컴, 엔비디아,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 등이 반도체 개발에 필요한 모든 IP를 보유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들 기업들은 영국 ARM 같은 외부의 IP 개발 전문 기업으로부터 IP를 구매해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그래픽프로세서(GPU) 등을 개발한다. IP기업들은 첫 계약 때 라이선스 비용을 받고, 향후 IP가 들어간 칩이 팔리면 로열티도 가져간다.

한국에도 ARM을 꿈꾸는 기업이 있다. 2017년 12월 설립돼 지난해 9월 코스닥에 상장한 '오픈엣지테크놀로지'다. 삼성종합기술원,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에서 엑시노스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개발을 담당한 이성현 대표(CEO)가 창업을 주도했고 삼성 동료, 서울대 박사과정 동문들이 합류했다. 현재 매출은 100억원, 시가총액은 4000억원에 약간 못 미치는 수준이지만 이 대표의 눈은 글로벌 시장을 향해 있다. 그는 "2030년 영국 ARM, 미국 시높시스와 어깨를 나란히하는 3대 IP업체가 될 것"이라며 "양질의 IP를 만들어 한국 생태계를 키울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4일 이 대표를 서울 역삼동 오픈엣지테크놀로지 본사에서 만나 신사업과 경영 비전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프로세서와 메모리 간 '데이터 고속 처리' IP에 강점

▶왜 삼성전자에서 나오셨습니까
"복잡한 칩 개발 때는 70~80개의 IP가 필요합니다. 내부에서 보유한 것도 있지만 외부에서 사오는 게 많죠. 라이선스, 로열티 비용이 나가는 데 상당합니다. 그리고 IP는 주로 해외업체들이 갖고 있습니다. 국내에 IP 기업이 있으면 어떨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번째로는 'IP 인력을 직접 키워서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오픈엣지테크놀로지의 주력사업은 무엇입니까
"데이터를 메모리반도체에서 읽고 쓰는 데 필요한 IP 묶음인 '메모리시스템 IP'입니다. 크게 세 개로 구성되는데 첫 번째는 메모리PHY입니다. 직접 칩 밖에 있는 메모리반도체에 접근해서 데이터를 읽고 쓰는 고속의 아날로그 IP입니다. 두번째는 D램을 읽고 쓰는 '메모리컨트롤러', 세번째는 메모리를 제어하는 '인터페이스 IP'입니다. 이 세 가지 메모리시스템IP에 기본적인 강점이 있고 이것을 AI반도체의 일종인 신경망처리장치(NPU) IP와 결합해 'AI 플랫폼 IP 솔루션'으로 판매합니다."

▶경쟁이 치열할 것 같은데, 고객사는 늘고 있나요.
"사실 굉장히 빠르게 성장 중입니다. 지난해 매출 100억원 이상 나왔고요. 매년 매출을 2배 이상 늘리는 게 목표입니다. '경기침체' 영향이 있긴한데, 고객사 과제가 없어지는 건 아닙니다. 최근 과제들이 돌아와서 계약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목표 달성은 가능하지 않을까요."

▶대표적인 고객사가 어디인가요.
"30개 이상 고객사로부터 50개 이상 과제를 수행하고 있습니다."(국내엔 텔레칩스, 넥스트칩, LX세미콘, 해외 기업 중엔 마이크론 등이 오픈엣지의 고객사 명단에 올라 있다.)

반도체 설계도(IP) 모은 '플랫폼' 사업 2026년 본격화

▶최근 'IP 플랫폼 사업'을 시작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반도체 IP를 구입하는 고객사인 팹리스 수가 중국에만 3000개가 넘을 정도로 급증하고 있습니다. 방문판매 등 전통적인 영업 방식으론 고객사를 추가로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어요. 아르테리스(Arteris) 같은 미국의 유명 IP업체들도 영업비용 부담이 크다고합니다. 플랫폼을 만들고 고객사인 팹리스들이 찾아오게하면 많은 IP회사들이 함께 이익을 볼 수 있습니다."

▶신사업 일정이 궁금합니다.
"내년 시범서비스를 시작하고 2025년에는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할 겁니다. 자회사 '오픈엣지스퀘어'도 설립했습니다. 총 600억원 정도 들어갈 것 같고, 외부자금 180억원을 유치하기로 했습니다."

▶백화점처럼 IP들을 많이 입점시키는 게 중요할텐데, 경쟁사들이 들어올까요.
"IP사업은 부분적으로 경쟁을 하겠지만 협업 관계에 가깝습니다. 각자 기업마다 주력사업이 다르기 때문이죠. 일단 오픈엣지 자사 IP를 플랫폼에서 소개하고, 2차로 타사 IP를 중개할겁니다. 2027년말 정도면 손익분기점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회사를 통해 다른 신사업도 시작할 계획이라고 들었습니다.
"네, ‘캐시일관성네트워크솔루션Cache-coherence Network Solution)’ IP 개발입니다. 대용량 연산을 위해 CPU와 같은 프로세서가 여러 개 탑재되는 병렬 처리 멀티코어 시스템에서 여러 프로세서가 같은 메모리 위치에 접근할 때 항상 일관된 데이터를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기술입니다. 프로세서 간 데이터 불일치 문제를 방지합니다. 만약 데이터 불일치 문제가 발생하면 예컨대 자율주행차량의 경우, 도로의 상황을 인식했으나 올바른 결과를 도출하지 못하여 정지해야 하는 상황을 파악할 수 없게됩니다."

ARM 대비 강점은 '메모리시스템 통합 IP 솔루션 제공'

▶ARM, 아르테리스 같은 경쟁사와 차별성이 있을까요.
"현재까지는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해당 문제를 방지하고 있지만, 고성능 AI 반도체에 대한 수요가 많아질 미래 시장에서는 하드웨어 네트워크 온 칩(NoC) IP가 그 기능을 수행하게 될겁니다. 칩 설계 시 복잡성을 낮춰야하는 과제가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캐시일관성네트워크솔루션도 크게보면 메모리시스템IP의 일종입니다. 경쟁사보다 통합적인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신사업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면요.
"상장 때 '매년 매출을 2배씩 늘리겠다'고 말씀드렸는데, 충분히 가능할 것 같습니다. 좀 더 장기적으론 '2030년에 글로벌 톱3 IP기업'이 되는 게 목표입니다. 현재 톱3라고 하면 ARM, 시높시스 등인데 거기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국내 생태계 강화에도 관심이 많다고요.
"네. ARM 처럼 양질의 IP를 공급하는 회사로 키우고 싶습니다. 규모의 경제가 만들어져야 안정적으로 회사를 운영할 수 있습니다. 한국 반도체 업계에 인력 문제가 심각한데, 저희는 인력을 스스로 키우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회사에 4년차 정도 되는 인력들이 있는데 제 몫을 해주고 있습니다. 10년차 정도 되면 허리 역할을 할 것입니다. 더 장기적으로는 회사에 신규인력이 들어와서 성장하고, 새로운 분들 가르쳐 드리는 선순환구조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내년께 TSMC 협력사에 합류 전망

▶요즘 정부도 시스템반도체에 관심이 많은데요. 생태계는 강해지고 있나요.
"삼성파운드리가 있어서 다행입니다. 그런 면에서 좋은 기회가 있는데, 에코시스템이 삼성만 있다고 되는 건 아닙니다. 팹리스가 잘 크려면 IP업체들이 많아야하죠. 현재 국내 IP기업 중 상장사는 오픈엣지 포함 2곳 뿐입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삼성에서 일했던 후배들이 와서 창업이나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창업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생태계가 활성화됩니다. 저도 후배들을 도와주려는 노력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TSMC 로고. 연합뉴스
TSMC 로고. 연합뉴스
▶삼성 파운드리 협력사로 알고 있는데요, TSMC 협력사에는 언제 들어갈 수 있을까요.
"일정 요건, 예를 들어서 우리 IP를 쓴 칩이 TSMC 공장에서 일정 규모 이상 양산돼야하는 등의 조건이 있습니다. 이르면 내년에는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디자인하우스와 달리 IP기업들은 여러 파운드리와 협업해도 크게 상관이 없습니다. TSMC 협력사에 올라가면 회사가 성장할 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