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추덕영 기자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아이가 수학을 못 한다. 그것도 속이 터질 만큼. 이제 부모는 어찌해야 할까? 미국 부모들은 기다린다. 기다려도 또 기다려도 여전히 못 한다면? 어이없겠지만 그냥 포기한다. 타고난 탤런트(재능)가 없다고 판단한 거다. 인간은 다르게 태어나고, 타고난 탤런트는 바꿀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뭐 수학과 상관없는 직업도 많으니까. 결국 그 동네, 변호사들로 넘치게 됐다. 그래서일까, ‘뻑’ 하면 소송을 벌인다. 대신 현대사회에 긴요한 STEM(과학, 기술, 공학, 수학) 전공자가 크게 부족해져 적극 수입한다. 독특하다.

[비즈니스 인사이트] 수학포기자를 대하는 부모의 자세
한국은 좀 다르다. 아이가 수학을 못 하면 일단 학원강사부터 바꾼다. 그래도 안 되면 학원 자체를 바꿔버린다. 이래도 못 한다? 이건 못된 친구들 때문이다. 친구를 못 만나게 한다. 그래도 안 된다? 이젠 아이의 태도가 문제다. 아이를 조진다. 그래도 못 한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왔는데 담임은 뭐 하는 거야! 결국 담임에게 전화해서 조진다. 초지일관 최선을 다해 조진다. 그래야 걸음마 시절에 보였던 그 천재성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대단히 독특하다. 그리고 지속적인 조짐 끝에 키워낸 STEM 인재를 미국에 보내주고 있으니 허무하다.

이런 건 사회에 나와서도 이어진다. 일을 못 하는 부하가 있다. 미국인들은 직무가 맞지 않을 수 있으니 다른 걸 맡긴다. 그래도 못 하면 리더와의 궁합이 맞지 않을 수 있으니 팀을 바꿔준다. 그래도 못 한다? 부서가 맞지 않을 수 있으니 다른 부서로 보낸다. 여전히 못 한다? 이 친구, 회사와 맞지 않는 거다. 회사를 바꾸도록 내보낸다. 역시 합리적이다. 우리는 다르다. 부하가 일을 잘 못 한다? 이건 상사인 내 리더십의 결함을 드러내는 치명적인 증표다. 일단 조진다! 그래도 못 한다? 어쩐지 애가 좀 둔하더라니, 느낌이 오도록 강도를 높인다. 그래도 못 한다? 내 열의가 부족한 거다. 최선을 다해서 조진다! 결국 우울증에 걸리거나 그만두거나 ‘블라인드’에 글을 올리게 된다. 우리는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라 생각해서 그러는 거다.

그래서 우리는 독특하고 그들은 합리적인 걸까? 합리성, 사실 그거 매우 상대적이다. 크리스토퍼 놀런의 인터스텔라(2016)가 관객 천만을 돌파했었다. 천만? 대단히 기묘한 현상이다. 블랙홀, 웜홀이 반복되는 ‘우주과학 다큐멘터리’가 수학포기자의 미국에서 흥행할 리 만무하다. 그런데 우리는 천만이나 그걸 이해하고 즐기기까지? 결코 포기하지 않는 교육이 만들어낸 결과다. 사피엔스 역사 30만 년, 그중에 29만 년은 멧돼지 쫓아다니며 살았다. 그 시절의 수학은 멧돼지 한 마리, 두 마리, 그다음은 ‘많다’였다. 그런 인간이 무한등비급수의 합을 구하는 게 정상적 행동일까? 사실 배움이란 적당한 조짐과 압박이 있어야 가능하다. 손에 착 감기는 돌도끼를 버리고 활쏘기를 배우는 것처럼 경쟁 사회를 살아내기 위해선 억지로 배우고 익혀야 할 게 있다. 그런데도 타고난 자질이 그렇다고 돌도끼만 쓰도록 놔두면 과정은 ‘행복’할지 몰라도 결과는 ‘도태’일 수밖에.

놀런 감독의 ‘오펜하이머’가 개봉했다. 오펜하이머는 허접한 ‘하버드’를 졸업하고 탁월한 ‘케임브리지’대학원에 겨우 입학했는데 괴롭히는 지도교수가 얼마나 미웠으면 사과에 독을 넣어 ‘암살’을 시도했다. ‘합리적’이라는 서구인들이 한 짓이다. 그런 과정을 버티어 낸 오펜하이머는 핵폭탄을 만드는 맨해튼 프로젝트의 책임자가 된다. 강철은, 그렇게 단련되는 거다. 우리가 이 대목에서 오펜하이머를 괴롭히는 지도교수를 비난하거나 더 나아가 조져야 할까?

수포자를 대하는 부모의 자세? 정답은 대책 없는 받아들임과 끝없는 조짐의 중간 그 어디쯤 있을 거다. 인재관이야 어떠하든 상대적이니까 오케이. 적절한 강도라면 조짐도 오케이. 하지만 용납하기 어려운 건 그 조짐의 끝이 아이의 스승에게 미치는 현실이다. 천만이 인터스텔라를 즐기는 사회는 스승들의 공이 크다. 감사해야 한다. 박봉을 개선해주지는 못 해도 자존심은 지켜줘야 한다. 그들이 이 더운 날씨에 길바닥에 앉아서 뭔가를 요구하게 만드는 건 진짜 아닌 것 같다. 올여름 ‘오펜하이머’를 보면서 양자물리학을 대충이라도 이해하게 해준 옛 스승들을 생각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