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로펌에 대한 수사기관의 압수수색이 잇따르면서 ‘변호사·의뢰인 비밀유지권(Attorney-Client Privilege·ACP)’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법조계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은 최근 SM엔터테인먼트 주식 시세조종 의혹과 관련해 법무법인 율촌을 참고인 신분으로 압수수색했다. 올해 초 카카오와 하이브가 SM엔터 인수전을 벌일 당시 율촌은 카카오 측 법률자문을 맡았다. 금감원은 하이브가 지난 2월 SM엔터 주식 공개매수에 나섰을 때 카카오 측이 하이브의 SM엔터 지분 획득을 저지하기 위해 시세조종을 통해 SM엔터 주가가 공개매수 가격(주당 12만원) 이상으로 오르도록 했다는 의혹을 조사하고 있다.

검찰과 경찰의 대형로펌 압수수색은 최근 몇 년간 꾸준히 벌어지고 있다. 김앤장은 2018년 사법농단 사건, 2019년 가습기 살균제 사건으로 압수수색을 받았다. 태평양도 경기 성남시 분당구 대장동 개발비리 의혹 수사 과정에서 지난해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이 로펌은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인 김만배 씨를 대리했다.

로펌업계에선 연이은 압수수색으로 의뢰인의 헌법상 기본권이 침해되는 것을 막으려면 ACP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ACP란 변호인과 의뢰인 간 주고받은 대화 내용 및 자료를 제삼자에게 공개하지 않을 권리를 말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36개국 중 ACP를 도입하지 않은 곳은 한국뿐이다. 현재 국내 변호사법에는 ‘전·현직 변호사는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있지만 수사기관이 강제수사에 나섰을 때 자료 제출 요구를 거절하는 근거로는 쓰이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ACP가 범죄자 측의 수사 저지 수단이 되는 부작용을 차단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ACP는 변호인 조력을 받을 권리가 보장된다는 측면에선 긍정적이지만 수사를 위한 증거 확보를 어렵게 할 수 있다”며 “얼마나 빈틈없이 제도를 마련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시온/민경진 기자 ushire90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