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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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조사받는 대기업이 기소되지 않은 사례가 최근 연이어 나오면서 로펌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안전관리체계를 구축해놨다면 사고가 나더라도 중대재해법 위반이 아님을 적극 다퉈볼 여지가 생겼다는 평가다. 최고경영자(CEO) 기소와 유죄 판결이 반복된 중소·중견기업 사건과는 다른 양상이다. 이 같은 분위기 변화에 로펌들은 검찰이 무혐의로 종결한 사건을 분석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에쓰오일·LG 무혐의’ 정밀 분석

국내 10대 로펌 중 한 곳인 A사는 최근 검찰이 에쓰오일을 중대재해법 위반으로 기소하지 않은 사례를 집중 분석하고 있다. CEO가 아니라 안전보건관리책임자(CSO)가 경영책임자로 지목된 데다 CSO도 중대재해법을 위반하지 않았다는 결론이 나와서다.

검찰은 후세인 알카타니 당시 에쓰오일 CEO에 대해 “대주주인 사우디아라비아 기업 아람코가 선임한 외국인인 데다 안전보건 관련 사항은 CSO에게 모두 위임했기 때문에 경영책임자로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CSO를 무혐의로 판단한 것을 두고는 “위험성 평가 절차와 중대재해 위험에 대비한 매뉴얼을 마련하는 등 법에서 요구한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모두 이행했고, 중대재해법이 시행된 지 6개월도 안 돼 일어난 사고였기 때문에 반기 점검 의무 대상에도 해당하지 않았다”고 했다.
대기업 기소 '0'…중대재해 무혐의 열공하는 로펌들
이 로펌의 산업재해 담당 변호사는 “처음으로 CSO가 경영책임자로 지목됐고 위험성 평가가 미진했다는 이유만으로 중대재해법 위반이라고 판단할 수 없음을 보여준 사례”라며 “검찰이 간략하게 공개한 내용 이상의 판단 논리와 근거, 에쓰오일을 자문한 김앤장의 대응 전략을 파악하기 위해 정보망을 총동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기 LG전자 자회사인 하이엠솔루텍의 에어컨 수리기사가 추락사한 사건이 불기소로 종결된 것도 로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초기 진상조사를 맡은 고용노동부는 이 사건을 기소의견으로 송치했지만 서울동부지방검찰청은 수리기사의 과실이 사고 원인이라고 결론 내렸다. 이 수리기사가 즉흥적으로 예약일보다 하루 앞당겨 수리에 나서면서 고층부 작업용 차량을 동원하지 않고 혼자 건물 밖으로 나가 실외기를 점검한 사실에 주목했다. 이를 근거로 산안법 위반 혐의 자체가 없기 때문에 중대재해법 역시 위반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또 다른 로펌 관계자는 “‘중대재해법 위반→산안법 위반→사고 발생’이란 두 단계에 걸친 인과관계가 입증돼야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가 성립된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고 평가했다.

법리싸움 가열 예고

로펌들이 이처럼 중대재해 위반 혐의가 없다고 결론이 난 사례들을 정밀 분석하는 것은 다른 기업의 중대재해 사건에도 적용할 만한 논리가 충분하다고 판단해서다. 특히 중대재해법 도입 전부터 큰 비용을 투입해 안전사고 예방체계를 구축한 대기업은 법리 싸움을 해볼 만해졌다는 의견이 나온다. 검찰이 이날까지 중대재해법 위반으로 기소한 22개 기업은 모두 중견·중소기업이다. 사고는 계속 일어나지만 대기업이 재판을 받은 사례는 나오지 않았다.

법조계에선 로펌들이 검찰의 ‘불기소 방정식’을 참고해 보강한 대응 전략을 앞세워 중대재해 사건 수임 확대를 노릴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중대재해법상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사고가 일어났다는 ‘인과관계 입증’을 적극적으로 공략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