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최대이자 세계 4위 경제대국인 독일의 경제 전망에 적신호가 켜졌다. 독일이 또다시 '유럽의 병자'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경고음도 계속되고 있다.

20일(현지시간) 글로벌 경제분석기관 컨센서스 이코노믹스에 의하면 올해 독일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0.35% 감소할 것으로 관측됐다. 3개월 전만 해도 소폭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지만, 역성장으로 하향 조정했다. 이 기관은 독일의 내년 경제 성장률 전망치도 연초에 예상했던 1.4%에서 0.86%로 낮췄다.

지난달 독일 연방통계청이 밝힌 올해 2분기 실질 GDP 증가율은 전 분기 대비 0%로 집계됐다. 경제가 제자리 걸음을 했다는 의미다. 독일 경제 성장률은 앞서 2개 분기 연속(작년 4분기 -0.4%, 올해 1분기 -0.1%) 마이너스 성장을 이어왔다. 국제통화기금(IMF),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등은 모두 독일이 올해 세계에서 가장 저조한 경제 성장 실적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인구 고령화, 노후화된 인프라 등 독일의 오랜 구조적 문제는 우크라이나 전쟁, 긴축(금리 상승), 글로벌 무역 침체 등으로 인해 더욱 악화되고 있다"고 전했다. 독일 경제는 제조업이 전체 GDP의 5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제조업 생산량이 미국, 프랑스, 영국 등 다른 주요 선진국들의 2배에 달하는 구조다.
경제대국 '독일' 어쩌다가…"유럽의 병자 전락할 판" 경고
이 같은 불균형적인 제조업 의존도가 에너지 비용 급등 등으로 인해 독일 경제에 더 큰 타격을 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화학, 유리, 제지 등 에너지 집약적인 산업 부문의 생산량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인 작년 초 이후 17% 가량 감소했다. 전통적인 자동차 제조업 강국인 독일이 전기자동차 부문에서 가성비를 내건 중국 경쟁업체에 시장 점유율을 잠식당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이밖에 전문가들은 "인건비 상승, 높은 세금, 관료주의, 공공 서비스의 디지털화 부족으로 인해 독일의 경쟁력이 꾸준히 약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은 최근 64개 주요국 가운데 독일의 국가 경쟁력 순위를 22로 낮췄다. 독일은 10년 전만 해도 해당 조사에서 10위권 안에 드는 국가였다. 씨티그룹의 크리스티안 슐츠 유럽 담당 부수석 경제학자는 "동독 지역의 인건비가 서독 수준으로 빠르게 수렴되면서 독일의 단위 인건비는 다른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 국가보다 급등했다"고 설명했다.

유럽경제연구센터(ZEW)는 최근 독일을 '투자에 대한 고세율 국가'로 분류했다. 지난해 기업 이익에 대한 실효세율이 28.8%로 유럽연합(EU) 평균인 18.8%를 훨씬 웃돌았기 때문이다. 이는 글로벌 기업들이 독일 투자를 꺼리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미국 반도체 기업 인텔과 대만 TSMC 등이 독일에 대규모 공장 증설 계획을 밝혔지만, "약 150억유로에 달하는 정부 보조금 때문일 뿐"이라고 FT는 꼬집었다.

독일 경제의 향후 전망은 엇갈리고 있다. 코메르츠방크의 요르그 크래머 수석 경제학자는 "독일 임금이 5% 이상 상승하고 있는 것은 소비자 지출이 반등해 경기 침체 우려를 잠재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이와 더불어 내년 물가상승률은 3%대로 현재보다 절반 수준을 줄어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카르스텐 브르제스키 ING 거시 글로벌 책임자는 "독일 경제를 구하기 위한 포괄적인 구조 개혁과 투자 계획이 보이질 않고 있다"며 비관적인 전망을 고집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