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 아들을 끌어안은 어머니, 이토록 파격적인 동양화라니
벌거벗은 채 축 늘어져 있는 남자, 그를 포근하게 안고 있는 어머니. 서울 청담동 송은 3층에 올라가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미켈란젤로 불멸의 명작 ‘피에타’ 속 모습이 펼쳐진다. 구도부터 디테일까지 영락없는 ‘피에타’다. 단 한 가지, 이 그림이 ‘불화(佛)’라는 것만 빼면.

송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파노라마’를 위해 불교화가 박그림 작가(36)가 선보인 작품이다. 파노라마는 다음달 초 열리는 국내 미술계 최대 행사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프리즈 서울’에 발맞춰 송은이 준비한 중견·신진 작가 그룹전이다. 16명 작가의 작품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건 박 작가의 그림이다. 불화를 전공한 박 작가는 전통 고려 불화의 방식을 따라 비단 위에 그림을 그린다. 실이 촘촘하게 엮인 비단을 여러 번 염색한 뒤 그 위에 세밀한 붓으로 그림을 그린다. 마지막으로 금박을 얹어 섬세하고 화려한 탱화를 완성한다.

사실 이 그림은 ‘퀴어’(성소수자)인 박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다. 호랑이와 벌거벗은 남자는 작가 자신이고, 그림 속 여성은 그의 어머니다. 박 작가는 쑥과 마늘을 먹지 못해 인간이 되지 못한 호랑이에게 소수자인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고, 그 호랑이가 점차 인간으로 변해 어머니의 품에 안기는 모습을 통해 가족 간 포용과 화해를 나타냈다. 전시장에서 만난 박 작가는 “최근 대중매체에서 성소수자가 스스럼없이 등장할 만큼 열린 분위기가 됐지만, 여전히 성소수자의 가족 이야기는 다뤄지지 않는다”며 “성소수자의 가족이 겪는 갈등과 포용을 전통 불화를 통해 색다르게 나타내고 싶었다”고 했다.

3층 전시장 가장 안쪽에 걸린 이진주 작가(42)의 작품 역시 눈길을 사로잡는다. 홍익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그는 길이 4.5m에 달하는 병풍에 자신의 삶을 파노라마처럼 그려냈다. 처음엔 결혼식 화환을 이고 올라가다가 점차 그 화환이 장례식 화환으로 바뀌는 모습을 통해 행복과 불행이 공존하는 삶을 한 폭의 그림에 담아낸 것.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 작품은 이번 전시를 위해 청담동으로 옮겨졌다. 정사각형 캔버스의 틀을 깬 것도 이 작품의 매력이다. ‘삶은 마치 오르막길 같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전체 배경인 나무 틀을 사선의 오르막길 모양으로 잘라냈다. “동양화는 지루하고 고리타분하다”고 말하는 이들의 고정관념을 단번에 뒤집는 작품들이다. 전시는 오는 10월 28일까지.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