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임금체계 개편 않고 정년연장하라는 勞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올해 임금 및 단체협상(임단협)에서 난데없이 정년 연장을 들고나오면서 노사 간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다.

현대차 노조는 지난 18일 17차 교섭에서 현행 60세인 회사 정년을 최장 64세로 연장해달라고 요구했다. 사측으로부터 요구안을 거부당하자 교섭 결렬을 선언하고 조만간 파업 찬반투표에 나서기로 했다. 삼성 한화 HD현대 등 다른 주요 대기업 노조도 올해 임단협 요구안에 정년 연장을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17일 법정 정년을 연장해달라는 ‘국민청원’에 나섰다.

정년 연장은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세계적 흐름이기는 하다. ‘노인 대국’ 일본은 2013년 ‘계속 고용’을 희망하는 근로자 전원을 65세까지 고용하도록 사업주에게 의무를 부과한 데 이어, 지금은 기업에 70세까지 고용 노력 의무를 부과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독일은 현행 65세인 정년을 2029년까지 67세로 늦추기로 했다.

하지만 현대차 노조 등 국내 노동계는 정년 연장의 핵심 관건인 ‘임금체계 개편’은 외면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 같은 호봉제 국가에선 임금체계 개편을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의 2021년 조사에 따르면 국내 주요 기업에서 근속연수 30년 차는 1년 차 신입 대비 2.95배의 임금을 받았다. 영국의 1.52배, 프랑스의 1.64배에 비하면 차이가 현격하다. 심지어 한국과 같이 호봉제 중심 구조인 일본(2.27배) 보다도 높다. 하지만 고도로 기계화·자동화된 생산 시스템과 ‘에이징 커브’(고령화에 따른 생산성 하락)를 감안하면 30년 차의 생산성이 1년 차의 세 배에 이를지는 의문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16일 발간한 ‘2023 국정감사 이슈 분석’ 보고서에서 추가적인 정년 연장이 성공하기 위한 조건으로 △충분한 사전 준비 △계속 고용 등 정년 연장 방식의 다양화 △직무급 임금체계와 임금피크제 도입 등을 들었다.

노동계는 정년 연장에 따른 청년층 채용 감소 우려에 대해서도 입을 닫고 있다.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전날 보도자료를 통해 “단순히 법으로 정년을 연장할 경우 취업을 원하는 청년에게 큰 장벽과 절망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노동계가 진정 정년 연장을 관철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임금체계 개편과 청년층 고용대책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기존 근로자들이 계속 돈 많이 받고 더 오래 근무하겠다’는 식의 요구를 고집한다면 건설적인 대안을 마련하기가 어렵다. 노조가 정년 연장을 위해 먼저 찬반투표에 올려야 할 것은 파업이 아니라 호봉제 폐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