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바이오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국산화의 ‘모범사례’로 꼽힌다. 바이오 소부장 전통 강자인 써모피셔 싸토리우스 머크 등 미국과 독일 기업 틈바구니에서 자급률을 80%까지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원부자재 해외 조달이 끊기더라도 바이오의약품 생산에 지장이 없는 세계 몇 안 되는 국가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일본 바이오 소부장 대표 기업은 다카라바이오와 아사히카세이가 꼽힌다. 제약·바이오가 아닌, 다른 업종이 주력이면서도 오랫동안 적자를 감수하며 신수종 사업으로 바이오 소부장을 키워온 결실을 맺고 있는 기업들이다.

다카라바이오는 일본 시약 국산화의 주역이다. 일본 제약·바이오업계에선 ‘다카라가 만들지 않는 시약은 없다’고 할 정도다. 다카라바이오의 뿌리는 1925년 설립된 식품·주류 업체 다카라슈조다. 다카라슈조는 버섯 등의 재배를 위해 1970년 실험실을 처음으로 세우고 1980년대 후반 유전자증폭(PCR) 장비를 들여놨는데, 이는 1993년 자회사 다카라바이오 설립으로 이어졌다.

글로벌 바이오 필터(생물공정 여과막)의 강자인 아사히카세이도 비슷한 성장 과정을 거쳤다. 아사히카세이는 2차전지 주요 소재인 분리막 생산으로도 유명한 기업이다. 1920년대 화학회사로 출발한 뒤 필터를 주력 제품으로 삼으면서 바이오 필터에도 투자했다. 최근에는 연간 13만㎡ 규모의 바이오 필터 생산이 가능한 시설을 추가로 확충하기도 했다.

글로벌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시장에서 다크호스로 꼽히는 일본 후지필름은 소부장 핵심인 세포배양용 배지 사업에 오래전부터 공을 들였다. 2017년 와코준야쿠공업을 인수합병(M&A)해 배지사업에 진출했다. 세포치료제용 배지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2018년 세계 선두기술을 보유한 미국 얼바인사이언티픽을 8억달러에 인수했다. 2021년엔 네덜란드에 세포·유전자 치료제 생산에 사용되는 건조분말 배지 및 액상 배지 생산 공장을 세웠다.

연매출 60조원을 올리는 세계 1위 바이오 소부장 기업인 미국 써모피셔도 공격적인 M&A로 덩치를 불리고 있다. 2014년 세계 양대 생명공학 업체였던 경쟁사 라이프테크놀로지를 인수하면서 바이오 소부장 시장을 석권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