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비 공짜로 줄게"…계약 물량까지 뺏는 외국계 바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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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바이오 대해부
(16) 갈길 먼 소부장 국산화
간신히 장비 개발 성공해도
외국계 물량 공세에 못당해
배지·필터 시장 美·獨이 장악
CMO로 번 돈 절반 해외로
(16) 갈길 먼 소부장 국산화
간신히 장비 개발 성공해도
외국계 물량 공세에 못당해
배지·필터 시장 美·獨이 장악
CMO로 번 돈 절반 해외로
바이오 핵심 장비 국산화에 성공한 코스닥 상장사 A업체는 최근 국내 기업에 제품을 납품하기로 했다가 막판에 외국계 업체에 일감을 뺏겼다. 턴키로 100억원 규모의 장비 50대를 공짜로 깔아줄 테니 장비 소모품만 5~10년간 구매해달라는 조건에 발주처가 마음을 바꿔서다. A사 대표는 “물량 공세를 펼치는 외국계 기업의 백화점식 영업을 당해낼 수 없다”고 한탄했다.
국산 바이오 소부장(소재·부품·장비)은 시장에서 아직 ‘찬밥’ 신세다. 수십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글로벌 ‘공룡’에 비해 규모 면에서 턱없이 열세인 데다 시장에서 기술력을 인정받기도 수월하지 않아서다. 자동차와 스마트폰 시장에선 막강한 구매력을 지닌 현대자동차와 삼성전자가 협력업체를 키울 능력이 있었지만 위탁개발생산(CDMO)업체인 삼성바이오로직스엔 그럴 재량조차 없다는 점이 한계다.
한 CDMO 업체 관계자는 “국산 소부장을 쓰고 싶어도 해외 발주처와 미국 식품의약국(FDA) 등을 설득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며 “소부장이 글로벌 수준을 따라잡기엔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내 배지 시장은 독일 머크, 미국 써모피셔·싸이티바(옛 GE헬스케어) 등 글로벌 3대 업체가 장악하고 있다. 레진 역시 싸이티바가 거의 독점하고 있다. 바이오 필터도 독일 싸토리우스·머크, 싸이티바 등 3대 업체가 국내 시장을 점령했다. 국내 바이오의약품 제조원가에서 배지와 레진, 필터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60%다. 외국계 기업의 이 제품 매출 대비 영업이익률은 20~30%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운송시스템도 외국계가 점령한 상태다. 바이오의약품은 살아 있는 세포가 담겨 있기 때문에 ‘콜드체인시스템’으로 온도, 습도, 진동 등을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 국내 시장에선 마켄, 월드쿠리어, 페덱스, DHL 등 미국계 회사가 대부분 이 업무를 맡고 있다. 업계에선 바이오의약품 매출의 15%가량이 콜드체인 운송비용에 소요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이 한국바이오협회와 업계를 상대로 한 조사에서 국내 바이오기업들이 해외 기업에 지급하는 배지와 레진, 필터 관련 비용은 연간 1조3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배지 4000억원, 레진 3000억원, 필터 6000억원 등으로 9000여 종 바이오 소부장 품목 전체적으로 2조원이 넘었다.
일회용 세균배양용 백이나 품질 검사용 마이코플라즈마 키트 등 일부 분야에선 마이크로디지탈과 셀세이프 등이 국산화에 성공해 10%가량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기도 했다. 바이알 공급(동신관유리공업)과 패지징 분야(흥아기연, 세일기연) 등에서도 국내 업체들이 선전하고 있다. 하지만 고가 장비인 바이오리액터(세포배양장비)와 자동화충진시스템(의약품을 바이알, 주사기 등에 넣는 자동화 장비) 등은 여전히 외국산이 장악하고 있다.
바이오의약품 시장의 성장으로 해외로 유출되는 돈은 더 커질 전망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셀트리온, 롯데바이오로직스 등의 생산시설 투자가 몰리고 있는 인천 송도는 글로벌 바이오 소부장의 ‘메카’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 싸이티바, 독일 싸토리우스 등 해외 소부장업체들이 이 곳에 잇따라 공장 가동을 준비하는 이유다.
한국바이오협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글로벌 바이오 CDMO 시장 규모는 전년 대비 14.1% 성장한 202억 8000만 달러(한화 25조7799억원)다. 2028년에는 477억 달러로, 연평균 15.3%의 성장율을 보일 전망이다. 바이오 소부장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세포 배양 배지 시장은 2019년 6조7000억원에서 2024년 10조원대로 급증할 전망이다.
안대규/남정민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국산 바이오 소부장(소재·부품·장비)은 시장에서 아직 ‘찬밥’ 신세다. 수십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글로벌 ‘공룡’에 비해 규모 면에서 턱없이 열세인 데다 시장에서 기술력을 인정받기도 수월하지 않아서다. 자동차와 스마트폰 시장에선 막강한 구매력을 지닌 현대자동차와 삼성전자가 협력업체를 키울 능력이 있었지만 위탁개발생산(CDMO)업체인 삼성바이오로직스엔 그럴 재량조차 없다는 점이 한계다.
한 CDMO 업체 관계자는 “국산 소부장을 쓰고 싶어도 해외 발주처와 미국 식품의약국(FDA) 등을 설득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며 “소부장이 글로벌 수준을 따라잡기엔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배지 레진 등 연간 2조원 해외로
각종 주사제형 백신·치료제로 쓰이는 바이오의약품 생산공정은 목표 세포주의 배양·회수·정제·완제공정으로 진행된다. 해외 의존도가 100%에 가까운 핵심 소부장 품목은 세포주가 먹는 영양분인 ‘배지’, 이 세포주에서 단백질을 정제할 때 쓰는 ‘레진’, 세균 바이러스 등을 걸러내는 ‘바이오 필터’ 등이다. 이들 소부장은 바이오의약품 품질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분류된다.국내 배지 시장은 독일 머크, 미국 써모피셔·싸이티바(옛 GE헬스케어) 등 글로벌 3대 업체가 장악하고 있다. 레진 역시 싸이티바가 거의 독점하고 있다. 바이오 필터도 독일 싸토리우스·머크, 싸이티바 등 3대 업체가 국내 시장을 점령했다. 국내 바이오의약품 제조원가에서 배지와 레진, 필터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60%다. 외국계 기업의 이 제품 매출 대비 영업이익률은 20~30%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운송시스템도 외국계가 점령한 상태다. 바이오의약품은 살아 있는 세포가 담겨 있기 때문에 ‘콜드체인시스템’으로 온도, 습도, 진동 등을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 국내 시장에선 마켄, 월드쿠리어, 페덱스, DHL 등 미국계 회사가 대부분 이 업무를 맡고 있다. 업계에선 바이오의약품 매출의 15%가량이 콜드체인 운송비용에 소요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이 한국바이오협회와 업계를 상대로 한 조사에서 국내 바이오기업들이 해외 기업에 지급하는 배지와 레진, 필터 관련 비용은 연간 1조3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배지 4000억원, 레진 3000억원, 필터 6000억원 등으로 9000여 종 바이오 소부장 품목 전체적으로 2조원이 넘었다.
세계 소부장 ‘큰손’ 된 한국
한국의 소재·나노 기술과 생명·보건의료 기술은 미국의 75~78% 수준으로 3년~3년6개월 정도 뒤처져 있다. 국내에선 아미코젠이 유일하게 항체의약품용 배지와 레진의 대량 생산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연말께 관련 공장이 완공될 예정이어서 상용화는 내년에 가능할 전망이다. 세포·유전자치료제용 배지와 레진 시장에선 셀라토즈테라퓨틱스와 엑셀세라퓨틱스가 최근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일회용 세균배양용 백이나 품질 검사용 마이코플라즈마 키트 등 일부 분야에선 마이크로디지탈과 셀세이프 등이 국산화에 성공해 10%가량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기도 했다. 바이알 공급(동신관유리공업)과 패지징 분야(흥아기연, 세일기연) 등에서도 국내 업체들이 선전하고 있다. 하지만 고가 장비인 바이오리액터(세포배양장비)와 자동화충진시스템(의약품을 바이알, 주사기 등에 넣는 자동화 장비) 등은 여전히 외국산이 장악하고 있다.
바이오의약품 시장의 성장으로 해외로 유출되는 돈은 더 커질 전망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셀트리온, 롯데바이오로직스 등의 생산시설 투자가 몰리고 있는 인천 송도는 글로벌 바이오 소부장의 ‘메카’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 싸이티바, 독일 싸토리우스 등 해외 소부장업체들이 이 곳에 잇따라 공장 가동을 준비하는 이유다.
한국바이오협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글로벌 바이오 CDMO 시장 규모는 전년 대비 14.1% 성장한 202억 8000만 달러(한화 25조7799억원)다. 2028년에는 477억 달러로, 연평균 15.3%의 성장율을 보일 전망이다. 바이오 소부장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세포 배양 배지 시장은 2019년 6조7000억원에서 2024년 10조원대로 급증할 전망이다.
안대규/남정민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