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화동 칼럼] 남탓만 하는 그들, 심판은 국민의 몫
지난달 청주 오송읍의 궁평지하차도가 침수돼 14명이 목숨을 잃은 참사는 명백한 인재였다. 국무조정실 감찰 결과 참사 당일 23차례나 신고가 접수됐지만 대응이 소홀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2회, 소방은 1회 신고를 접수했다. 지하차도 관리 주체인 충청북도는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행복청)에서 3회, 청주시는 미호강 임시제방공사 감리단장과 행복청, 경찰청 등에서 10회나 신고를 받았다. 그러나 그 누구도 제대로 대처하지 않았다. 국조실은 행복청·충북경찰청·충북소방본부·충청북도·청주시 등 5개 기관 공무원 34명 등에 대한 수사를 의뢰하고 징계 및 인사조치도 예고했다. 하지만 누구도 자신의 잘못을 먼저 인정하지 않았다. 특히 도지사, 시장, 청장 등 기관장의 ‘내 탓이오’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새만금의 부실 잼버리 책임자들은 더했다. 2017년 8월 새만금 잼버리 유치가 확정된 뒤 5년 가까이 국정을 책임졌던 문재인 전 대통령은 “사람의 준비가 부족하니 하늘도 돕지 않았다”며 남 이야기하듯 했다. 이낙연 전 국무총리는 정부·여당의 전 정부 책임론에 대해 “절망적일 만큼 한심하다”고 비난했다. 2017년 12월 관광·레저 용지인 잼버리 부지를 농지관리기금으로 매립하기 위해 농업용지로 용도 변경해줘야 한다고 제안하고 결정한 사람이 바로 이 전 총리였다. 기존 매립지를 놔두고 새로 갯벌을 매립하는 방안은 이때 이미 정해졌던 모양이다. 농지기금 1846억원을 들인 매립공사는 2018~2019년 기본설계·세부설계를 거쳐 2020년 1월에야 시작돼 지난해 12월 끝났다.

시간에 쫓기며 졸속으로 매립하다 보니 나무그늘, 배수시설, 수도와 전기 등 인프라 부실은 예고된 거나 다름없었다. 이 전 총리는 문재인 정부 출범 8개월 만에 치른 평창동계올림픽과 비교하며 “이번에는 시간도 넉넉했다. 혹한 속의 평창동계올림픽, 폭염 속의 2022년 카타르 월드컵만 연구했어도 국가 망신은 피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회 개막 1년을 앞둔 2017년 2월 평창 경기장의 평균 공정률은 95%였다. 새만금 잼버리는 개막 1년 전인 지난해 8월 기반시설 공정률이 37%에 불과했다. 그러고도 남 탓이라니….

새만금 사회간접자본(SOC) 확충을 위해 잼버리를 이용했다는 의혹을 “전북인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고 명예를 실추시키는 행위”라고 한 김관영 전북지사의 주장도 이해하기 어렵다. 부실 잼버리나 SOC 예산의 책임은 행정책임자나 정치인에게 있을 뿐 전북도민과 무슨 관계가 있나. “전북 정치권의 잘못된 욕심이 잼버리를 망쳤다”(한승우 전주시의원)는 이야기가 왜 나오겠나.

정부와 여당도 큰소리칠 처지가 아니다. 전 정부 책임론, 전북 책임론이 비등한 반면 현 정부의 책임은 주무 부서인 여성가족부에만 돌리는 분위기가 역력한데 억지스럽다. 전 정부 탓만 하기엔 새 정부 출범 후 1년3개월이라는 기간이 너무 길다. 아무리 부실한 준비 상태로 물려받았더라도 충분히 보완할 수 있었던 시간이다. 야영지에서 철수한 잼버리 참가자들을 위해 민관이 총동원돼 급한 불을 껐다. 이를 두고 윤석열 대통령은 “잼버리를 무난하게 마무리했다”고 평가했지만 국정의 무한책임자로서 사과든 유감 표명이든 먼저 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도 모두 책임 떠넘기기에 바쁘다. 정부·여당은 전 정권과 전북을 탓하고, 야당은 모두 현 정부 책임이라고 발을 뺀다. 경중의 차이는 있겠지만 잼버리에 발을 담근 모두에게 책임이 있지 않나. 2012년 ‘백양사 도박사건’으로 불교계가 발칵 뒤집혔을 때였다. 서울 도심에서 선원을 운영하고 있던 한 스님과 통화하며 안부를 물었더니 “낯을 들고 다닐 수가 없다”고 했다. “스님이 직접 잘못한 것도 아닌데 너무 자책하지 마시라”고 했더니 이렇게 말했다. “동업중생(同業衆生) 아닙니까. 내 잘못, 네 잘못이 따로 없지요.” 같은 시대에 함께 살아가는 공동운명체이니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얘기였다. 고(故) 김수환 추기경은 1990년 9월 자신의 승용차 뒷유리에 ‘내 탓이오’ 스티커를 직접 붙이면서 “지금은 자기를 먼저 돌아볼 때”라고 강조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동업중생과 ‘내 탓이오’ 자세다. 진영논리에 갇혀 삿대질만 하는 곳에는 미래가 없다. 남 탓만 하는 이들에겐 그에 합당한 대가가 주어져야 한다. 문 전 대통령은 “부끄러움은 국민의 몫”이라고 했지만 천만에, 심판이 국민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