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밀어주기는커녕…'찬밥 신세' 된 K바이오 소부장
“외국계 기업은 공장 설립을 신청하면 수개월 만에 허가를 내주는데, 국내 기업은 4~5년을 기다려도 허가가 나지 않습니다.”

국내 한 바이오 소재·부품·장비업체 대표는 “공장을 지을 때부터 외국계 기업에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며 이같이 하소연했다. 그는 인천 송도에 공장을 지으려고 4~5년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문을 두드려봤지만 허가가 나지 않아 결국 포기했다.

인천 송도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 등의 생산기지가 있는 세계적인 바이오의약품 제조 클러스터다. 바이오의약품은 운송 중 온도 습도 진동 등의 변화를 주면 안되고 수출 시 비행기로 운반하기 때문에 송도는 최적의 공장 입지다. 하지만 공장 설립을 타진 중인 국내 수십여 개 바이오 기업에 송도는 넘을 수 없는 벽이 됐다. 정부와 인천시가 외국인투자기업에 공장 부지를 우선 분양해주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오업계에선 “외투기업에만 혜택을 주는 것은 1980년대 사고방식”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바이오 소부장기업이 겪는 어려움은 이뿐만이 아니다. 미국과 독일 기업이 한국 바이오 소부장 시장을 꽉 잡고 있어 기술을 추격하더라도 판로를 뚫기가 쉽지 않다. 한 외국계 업체는 “턴키로 100억원 규모의 장비 50대를 공짜로 깔아줄 테니 장비 소모품만 5~10년간 구매해달라”고 영업하며 ‘한국 소부장 고사작전’에 나서기도 했다.

기술집약적 산업인 바이오는 영업이익률이 20~50%로 6% 안팎인 기존 제조업 대비 월등히 높아 대표적인 미래 신수종산업으로 꼽힌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약 2600조원에 달하는 세계 바이오헬스 시장에서 제대로 겨뤄볼 수도 없는 상황이다. 바이오의약품 제조의 필수인 배지와 필터 등 9000여 종의 소부장 품목에서 국산화율이 6%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국내 바이오업계가 매년 바이오 소부장 구매 비용으로 2조원을 외국 기업에 쓰는 배경이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2024년 연구개발(R&D) 예산을 대폭 삭감하면서 바이오 R&D 분야에서도 과제별로 20~30%씩, 일부 과제는 80%까지 깎는다는 소식이 들려 바이오업계의 사기가 크게 떨어져 있다. 바이오업계에선 정부가 비 올 때 우산을 뺏기보다는 성장을 위한 마중물 역할을 해주길 기대하고 있다. 아울러 국내 바이오 소부장 산업 육성을 위해 더욱 적극적인 인센티브 제도와 세제·금융 정책이 나오길 바라고 있다. ‘소부장 독립’ 없이는 자동차 반도체 같은 성공 스토리가 바이오에서 나오기 어렵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