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사모펀드, 헤지펀드 운용사 등 대체투자업계와 전면전에 나선다. 운용사들의 펀드 정보 공개 의무화 등을 통해서다. 그간 규제 사각지대에 가려져 있던 대체투자업계를 겨냥해 대대적인 개입을 본격화하는 것이다. 이번 규제안은 미국 기관투자자들의 투자금을 유치한 해외 운용사들에도 적용될 전망이다.

SEC은 "오는 23일 사모펀드, 헤지펀드 운용사들에 관한 규제안을 최종 의결한다"고 21일(현지시간) 밝혔다. 해당 규제안은 기본적인 자료를 투자자에게 공개하는 것을 의무화하고, 이해 충돌을 방지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한다. 그간 상장기업, 뮤추얼펀드 등에 대해 가했던 규제·감독을 대체투자업계에도 적용하겠다는 구상이다. SEC은 작년 2월 처음 초안을 공개한 뒤 업계 의견 수렴 등의 절차를 거쳐 1년여 만에 최종안을 의결키로 했다.

새 규정이 시행되면 사모펀드와 헤지펀드는 투자자에게 분기마다 펀드 성과와 수수료, 비용, 보수 등의 세부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제공해야 한다. 또 SEC가 자산평가 추정치를 점검할 수 있도록 매년 감사도 받아야 한다. SEC은 "운용사들이 일부 투자자에게만 더 나은 조건을 제공하는 이면 계약을 맺는 것을 방지하고, 또한 불투명한 운영 방식을 토대로 고객들에게 비용을 전가하던 관행도 바로 잡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로펌 모건루이스의 크리스틴 롬바르드 변호사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재발을 막기 위해 2010년 도입된 도드-프랭크법(Dodd-Frank Act) 이후 금융투자업계에 역사상 가장 중요한 개혁안으로 기록될 것"이라며 "특히 사상 처음으로 기관투자 분야에서 SEC이 운용사와 투자자 간에 어떤 조건을 제공할 수 있는지, 혹은 없는지를 효과적으로 감독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전 세계 사모펀드 및 헤지펀드의 총 운용 자산은 25조달러(약 3경3000조원) 가량으로 추산된다.

대체투자업계에서는 이번 규제 개혁안에 대한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기존 계약들에 관해 면제권을 부여하지 않는다는 조항은 업계에 역대급 혼선을 빚을 것이란 지적이다. 투자자들과 맺은 수만 건의 계약을 향후 12개월 내에 파기하고 재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우려다.

또 그간 펀드 매니저들의 운용 책임에 명시돼 있던 '중과실' 조항을 '과실'로 강화한 것도 향후 운용사들의 운신의 폭을 좁히고 결국에는 수익률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영국 대체투자관리협회의 잭 잉글리스 최고경영자(CEO)는 "SEC의 월권행위"라며 "투자계약 판매자(펀드 운용사)와 구매자(기관투자자) 간의 계약의 자유에 관한 개념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