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반쪽 혁신 된 규제샌드박스
정부가 ‘혁신경제 실험장’으로 홍보해 온 규제샌드박스가 올해로 시행 5년차를 맞았다. 문재인 정부가 2019년 1월 도입하고 현 정부가 이어받은 국내 대표적인 신사업 규제 개선 정책이다. 기업이 신기술을 활용한 새 제품과 서비스를 출시할 때 일정 기간 규제를 면제하거나 유예해주는 제도다. 아이들이 모래판에서 다칠 걱정 없이 뛰어노는 것처럼 기업들이 일정한 조건에서 자유롭게 사업할 수 있게 해주자는 취지에서 이름이 유래됐다. 영국에서 처음 시작돼 현재 일본 싱가포르 등 세계 10여 개국이 비슷한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사업화 성공은 절반에 불과

지난 4년 성과는 어땠을까. 지난달 정부는 규제샌드박스 도입 이후 누적 사업 승인 건수가 1000건을 돌파했다고 발표했다. 연평균 200건 안팎의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가 심사를 통과해 싹을 틔웠다는 의미다. 규제 및 관련 법령 미비에 가로막힐 뻔한 신사업에 기회의 문이 열렸다는 점에선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승인 건수가 아니라 최종 사업화 성공률로 기준을 바꾸면 얘기는 달라진다. 규제샌드박스 사업 승인은 긴 사업화 여정의 첫걸음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규제샌드박스 사업은 실증특례(테스트)로 진행되는데, 이는 현행법 등으로 금지된 규제를 면제해 최대 4년(2+2)간 임시로 사업을 허용해주는 방식이다. 이 기간에 사업성을 증명하지 못하거나 관련 규제 정비가 이뤄지지 않으면 사업은 중단된다.

한국경제신문이 분석한 결과 규제샌드박스 도입 첫해인 2019년 사업 승인을 받은 195건 중 96건(49.2%)은 현재 서비스를 접었거나 사업 지속이 불투명하다. 이 해 승인받은 업체 중 상당수는 올해 또는 내년 상반기 실증특례 기간이 끝난다. 4년 시한의 산소마스크를 곧 벗어야 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어렵게 승인받은 신사업의 성공률이 절반에 그친 이유는 뭘까. 업계는 정부의 까다로운 사업 승인 조건을 꼽는다. 규제샌드박스 승인을 내주면서 내거는 조건이 현실과 동떨어진 사례가 많다는 지적이다.

혁신의 퇴화 경계해야

예컨대 도심형 숙박공유 서비스 업체에 지하철역 1㎞ 반경에서만 사업해보라는 식의 엄격한 제한을 두는 것이다. 판을 깔아주겠다는 규제샌드박스가 사업의 발목을 잡는 모래주머니로 변질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스타트업과 같은 초기 혁신 기업에 스피드는 생명이다. 자금력과 사업 노하우가 부족한 스타트업에 실증특례 4년은 희망 고문의 시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관련 규제가 풀릴 것이란 확실한 기약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취지의 제도도 시간이 흐를수록 곪고 퇴화하기 마련이다. 규제샌드박스 역시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 등 5개 산업 관련 부처의 보여주기식 실적 경쟁의 장이 돼버렸다는 비판이 제기된 지 오래다. 4년으로 묶인 실증특례 기간을 아예 8년으로 확 늘려주는 건 어떤가. 반대로 6개월~1년짜리 단기 특례를 도입해 신생기업 사업에 속도를 붙여주는 건 또 어떤가. 실증특례 기간에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면 자동으로 관련 규제를 없애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규제혁신의 혁신, 더 늦기 전에 서둘러야 한다.